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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북한은 '들썩' 중국은 '잠잠'…우호조약 60년 '엇갈린 기류'

지난 11일은 북·중 우호조약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북·중 우호조약은 1961년 7월 11일 당시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김일성 북한 주석이 베이징에서 만나 체결한 것으로, 어느 한쪽이 침략을 받으면 다른 쪽이 즉각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도록 하는, 이른바 '자동 참전' 조항이 담겼습니다. 이 조약은 7조 '양측이 개정 또는 효력 상실에 대해 합의하지 않는 한 효력이 유지된다'는 조항에 따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1961년 북·중 우호조약 서명식에 참석한 저우언라이와 김일성(출처: 위키백과)

북한 '권력 서열 2위' 최룡해가 연회 주재…중국은 '잠잠'

북·중 우호조약 60주년을 맞는 양측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 보였습니다. 먼저, 북한은 적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59주년도 아니고 60주년이다 보니 더 기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기념일을 이틀 앞둔 지난 9일 북한의 권력 서열 2위로 꼽히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직접 연회를 주재했습니다. 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 대사를 비롯해 평양에 있는 중국대사관 직원들이 초대됐는데,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연회 개최 사실을 이튿날 곧바로 공개했습니다.

반면, 조약 체결 기념일이 나흘이나 지난 아직까지 베이징에서 기념 연회나 행사를 열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베이징에 있는 외교 소식통은 "베이징에서 개최된 행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며 "특별한 동향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북·중 관계 전문가는 "연회가 열리지 않았다"고 했고, 또 다른 전문가는 "연회 등 행사가 열렸으면 중국 매체나 북한 매체가 보도했을 것"이라면서 "아직까지 이런 보도는 없다"고 전했습니다. 연회 등 행사가 아예 열리지 않았거나, 열렸어도 중국이 이를 공개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친서 교환 소식 북한보다 6시간 늦게 '짧게' 보도

이벤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당일 친서를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대하는 양측의 태도도 달랐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친서 교환 사실을 11일 아침 6시쯤 알렸습니다. 반면 중국 신화통신은 중국 시간 오전 11시쯤, 한국 시간으로 낮 12시쯤에야 처음 보도했습니다. 북한보다 6시간 늦게 친서 교환 사실을 공개한 것입니다.

중국 신화통신은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교환 사실을 오전 11시 1분, 한국 시간 12시 1분에 처음 보도했다

친서 교환 뉴스는 중국에서 비슷한 시간에 알려진 아르헨티나 축구팀의 코파 아메리카(남미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소식보다 비중이 덜해 보였습니다. 중국 관영 CCTV는 11일 친서 교환 소식을 단신으로 짧게 8차례 보도한 반면, 아르헨티나 우승 소식은 경기 주요 장면과 리오넬 메시의 활약 등을 상세히 전하며 12차례 보도했습니다. 브라질과의 결승전 예고 뉴스까지 더하면 당일 보도량은 더 많습니다.

11일 중국 관영 CCTV의 친서 교환 보도 화면. 앵커가 관련 뉴스를 낭독하는 식으로 짧게 보도했다.

김정은 "우의 날로 두터워져"…시진핑 "행복 마련해 줄 용의"

친서 내용에서도 차이가 읽힙니다.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은 둘 다 서두에서 북·중 우호조약 60년을 축하했습니다. 조약 체결의 의미, 60년 간 양측의 관계 등을 비슷하게 서술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대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전례 없이 복잡다단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조중(북·중) 사이의 동지적 신뢰와 전투적 우의는 날로 두터워지고 있다"며 "전통적인 조중 친선은 새로운 추동력을 받아 안고 정치, 경제, 군사, 문화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전면적으로 승화, 발전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적대 세력들의 도전과 방해 책동이 보다 악랄해지고 있는 오늘 조중 우호조약이 두 나라의 사회주의 위업을 수호하고 추동하며 세계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 더욱 강한 생활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두 나라 인민의 염원에 맞게 조중 관계를 끊임없이 강화, 발전시켜 나가는 게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친서에는 "지난 60년 간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형제적인 전통적 친선을 강화해 왔으며 사회주의 위업의 발전을 추동하고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했다"고 돼 있습니다. 두 나라의 신뢰와 우의가 날로 두터워지고 있다거나 친선이 높은 단계로 승화, 발전되고 있다는 말은 없습니다. 대신에 "나는 총비서 동지(김정은 위원장)와 여러 차례 상봉을 통해 두 당, 두 나라 관계 발전 전망을 설계하고 중조(북·중) 친선의 시대적 내용을 풍부화하는 일련의 중요한 공동 인식을 이룩했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두 나라의 친선 협조 관계를 끊임없이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나가 두 나라와 두 나라 인민에게 더 큰 행복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친서의 논조에 차이가 있다"며 "북한은 대북 제재 완화와 같은 실질적 협력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반면, 중국은 양국 관계에 대한 수사(修辭)적 표현이 주를 이룬다"고 총평했습니다. 중국이 기념 연회를 개최하지 않았거나 개최했더라도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선 "미·중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물밑 접촉하는 와중에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고려"라고 분석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중국이 북한을 자기편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제스처를 취하면 오히려 미·중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북한 카드를 쓸 경우 미국이 타이완 문제를 더 강하게 들고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도 비슷한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이 소식통은 특히 시진핑 주석이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나가 두 나라 인민에게 더 큰 행복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 대목을 놓고 "중국이 북한에게 태도 변화를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등 태도를 바꾸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통은 지금 유엔 대북 제재의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꼽았습니다. 북한은 경제난을 극복하고 북·미 대화를 재개하는 데 미·중 갈등을 카드로 이용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중국은 지금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가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태도 변화를 우선 요구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시진핑 주석의 친서에 대해 북한 측 인사가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이라는 상대는 같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60년 우호' 역사 속에서도 북한과 중국이 차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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