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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일기 시대 - 문보영 시인 [북적북적]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일기 시대 - 문보영 시인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299 :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일기 시대 - 문보영 시인

 
어떤 새는 둥지를 만들 때 자기 배에서 깃털을 뽑아 쓴다고 한다. 사실 책상에서 내가 하는 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배에서 깃털을 뽑아 둥지 틀기. 내가 나를 재우고, 나를 먹이는 일. 일기를 쓸 때면 매번 그런 기분이 사로잡힌다.

-『일기시대』 서문 中

일기, 모두들 언젠가 써 본 적이 있죠. 어른이 되고 나서도 쓰고 계신가요? 누군가는 짧게, 누군가는 길게, 누군가는 시처럼, 누군가는 소설처럼, 오늘도 수많은 일기가 누군가의 결심과 후회, 비밀을 담은 채 사각사각 쓰여지고 있을 겁니다.

'북적북적' 299회, 오늘은 일기를 담은, 일기에 대한 책을 소개합니다. 문보영 시인의 에세이 『일기시대 (민음사 펴냄)』입니다.
 
일기를 쓸 때 나는 나에게서 가장 멀어진다.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타인을 만나고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일기에는 늘 타인의 흔적이 묻어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을 때도 비슷하다. 책에 적은 것처럼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일기시대』 서문 中

문보영 작가는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이듬해인 2017년, 제 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입니다. 시집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준최선의 롱런』, 『오늘도 불안해서 버렸습니다』 등을 썼습니다. 손으로 쓴 일기를 복사해서 신청한 독자들에게 매주 우편으로 보내는 '일기 딜리버리'를 2018년부터 운영해오고 있고요.

이 책 『일기시대』에는 문보영 작가가 쓴 일기들 일기 같은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처음 어떻게 시를 쓰게 됐는지에 대한 '시인기', 일기를 복사해 봉투에 넣고 풀로 붙여 우체국에 가서 발송하는 일기 딜리버리 이야기, 밤에 전화로 시를 읽어주는 '콜링 포엠'과 불면증으로 잠들지 못한 여러 밤들의 쓸쓸하면서도 밝고, 엉뚱하면서도 현실적인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예전 일기장을 '과거가 응축되고 착즙돼 있는 물감'이라고 썼어요. 팔레트에 일기를 짜서 새로운 색을 만들어 낸다고요. 이렇게 새로운 색이 되고 싹을 틔워 시와 소설이 되는 일기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자가 '서문'에 썼듯이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이면 또 어떻습니까.
 
일기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사실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

-『일기시대』 서문 中

이 책은 일기에 대한 책이지만, 저자가 시인인만큼 시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 책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주변에 시를 읽는 딱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따라가면 '해리포터'의 다이애건 앨리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 세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없으면 평생 그 세계를 모르고 살 수도 있다. 낙엽 인간을, 문학회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시인이 되었을까?' 우리 옆에 손을 잡고 따라갈 시 읽는 사람은 없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문보영 작가님의 손을 잡고 시 세상으로 한 걸음 떼게 되겠죠? 문보영 시인의 시보다 『일기시대』를 먼저 만난 독자라면 이 책 속 시 얘기, 독서 얘기, 도서관 얘기, 친구 얘기를 읽으면서, '아, 이 사람의 시집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날 게 분명합니다. 오늘 북적북적이 여러분의 손을 잡고 그런 '작은 문'으로 안내해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출판사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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