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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길거리 포옹은 '혁명의 원수'…'글고'가 아니라 '그리고'라니까

북한의 청년 세대에서 남한식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확산되면서 북한이 단속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가정보원은 8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이 이른바 '사회주의 수호전'을 진행할 것을 주문하면서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는데, 남한식 문화에 물들어가는 10∽30대가 주요한 단속의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모닝스브스] 북한 MZ세대 기강잡기

'오빠'가 아니라 '여보'


국회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인 하태경 의원이 예로 든 북한의 단속 사례는 이렇습니다.

남한 영상물 등에서 남편을 '오빠'라고 지칭하는 사례를 보고 북한에서도 이런 호칭이 늘고 있는데,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면 안되고 '여보'라고 불러야 한다고 단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친구는 '남친'으로 부르면 안되고 '남동무'로 불러야 한다, '쪽팔리다'는 표현은 안 되고 '창피하다'고 써야 한다, '글고'라는 표현은 안 되고 '그리고'를 써야 한다는 것이 북한 당국의 단속 방침이라고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남한 언어를 쓰는 사람은 '혁명의 원수'라고까지 하고 있다는데, 남한식 옷차림을 집중 단속하는 한편, '길거리에서 포옹하는 것은 혁명의 원수'라는 영상물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이 이렇게 남한식 언어와 문화 단속에 나서고 있는 것은 북한판 MZ 세대인 10∽30대 때문입니다. 이들은 이전 세대들처럼 당국의 일방적 교육에 순응적이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북중 국경 등을 통해 전해지는 한류에 많이 접했기 때문에 남한식 문화에 거부감도 없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것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강조하는 북한 체제에서는 골치 아픈 신세대인 셈입니다.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이런 MZ 세대들이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 때처럼 북한 체제의 배신자로 등장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도가 낮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어떤 변화의 모습을 보일지 모른다는 우려로 보입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의 생일(태양절)인 4월 15일 불꽃놀이를 관람하는 북한 청년들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청년들 늘 교양하고 통제해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4월 세포비서대회 당시 청년들의 사상통제를 "최중대사"라고 언급하면서,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 말과 사람 관계까지 늘 교양하고 통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또, 지난해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남한 영상물을 유포할 경우 최대 사형까지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로서는 외부 문화 유입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 체제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문화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총칼이 국경을 통제해도 문화는 그 틈을 파고 들어갑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체제 유지를 원한다면 경직된 체제를 고수하며 외부 문화를 막기보다는, 외부세계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독재와 우상화의 정도를 완화시키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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