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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게 낫다"…홀로 싸워 이겨도 솜방망이 처벌

<앵커>

법은 바뀌었지만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신고를 해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직장에서 보호받지도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가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박찬범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기자>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인정한 40대 직장인 박 모 씨입니다.

괴롭힘을 신고할지 망설이는 직장인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박 모 씨/직장 괴롭힘 피해자 : 저는 신고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그다음에 가해자는 2차 가해, 그 불리한 처우가 엄청나고….]

박 씨는 가해자들의 괴롭힘이 신고 뒤에 더 집요해졌다고 말합니다.

피해자인 박 씨가 되려 쫓기듯 휴직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박 모 씨/직장 괴롭힘 피해자 : 괴롭힘 때문에 제가 이제 정신적인 어떤 고통이 오고 그런 것이지 (원래) 제 질병이 아니었거든요.]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됐지만, 고용노동부가 회사에 내린 처분은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개선 지도'뿐이었습니다.

올해 초 괴롭힘을 당하다 퇴사한 박재성 씨도 같은 심정입니다.

간신히 증거를 끌어모아 제출하면서 직장 괴롭힘은 몇 달 만에 인정됐습니다.

역시나 회사에는 '개선 지도' 처분만 내려졌고, 상관인 가해자는 보직에서 물러나는 정도의 징계만 받았습니다.

[박재성/직장 괴롭힘 피해자 : 전 직장에서는 '얘랑 연락하지 마라, 너 회사생활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하면서 (저랑 연락을 막았어요.)]

현행법상 '직장 괴롭힘'만으로는 형사 처벌을 할 수 없습니다.

신고했다는 이유로 회사가 불이익을 줄 때만 사업주가 처벌받습니다.

대개 신고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시작되는데, 신고자 홀로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4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9개월 만에 사업주에 대한 징역형 사례가 처음 나왔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인사 이동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신고자를 보복했다는 것이 인정된 것입니다.

지역 노동단체의 도움을 받아 1년 넘게 싸운 결과였습니다.

[박윤준/충북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 : 교통사고랑 비슷한 거예요. 그 정도의 후유증과 계속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을만한 사건인데, 중요한 게 (피해자와) 행위자와의 분리거든요.]

하지만 역시 신고자는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김 모 씨/직장 괴롭힘 피해자 (가해 업주 징역형) : 그때는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쓰러지면 차라리 거기서 쓰러지기는 하는데, 제가 살 수가 없었어요.]

근로기준법 76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와 보완해야 할 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사용자나 근로자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관건은 이 법이 피해자를 어디까지 보호해줄 수 있느냐입니다.

제가 제 직장 SBS에서 직장 내 괴롬힘을 당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1항에 따라 제 팀장에게 신고할 수 있고, 2항에 근거해 SBS는 제 괴롭힘 신고에 대해 즉시 조사해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저를 위해 부서 이동 또는 휴가 명령을 내릴 수도 있고, 가해자에 대해서는 징계 등 조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 의무라고 규정돼 있지만 처벌 조항이 따로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안 지켜도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오직 형사 처벌은 회사가 피해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강제성이 떨어지다 보니 회사도 조치에 소극적일뿐더러 가해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형사 처벌 범위를 지금보다는 늘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조사위원회 구성 방식도 보완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내부 직원으로만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자칫 괴롭힘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SBS는 내일(25일)도 관련 보도를 이어가겠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상처를 더 크게 만드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과 직장 내 괴롭힘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문제입니다.

(영상취재 : 이승환, 영상편집 : 원형희, CG : 조수인·이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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