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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野 공군 사건 '배후 권력 음모론'…맥 놓치는 국방부 수사

[취재파일] 野 공군 사건 '배후 권력 음모론'…맥 놓치는 국방부 수사
▲ 지난 17일 국민의힘 군 성범죄 특위 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과 20비행단 성추행 사건 가해자의 변호사가 같은 법대 동문이고 법무관 동기로 특수관계이다", "룰을 어기고 국선변호사에 남성 법무관을 배정했다", "전익수 법무실장의 오른팔 격의 인물과 문제의 국선변호사는 부부이다", "사건 은폐의 배후에 권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17일 국민의힘 <군 성범죄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특위>에서 나온 신원식 의원의 발언입니다. 육군 중장 출신의 군 전문가여서 그의 주장은 공군 성추행 사망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의힘의 대표 의견이 됐습니다.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도 신 의원의 말을 되풀이하며 서욱 국방장관을 압박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의힘의 배후 권력설은 기본 팩트부터 틀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정치권의 섣부른 의혹 제기야 흔한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음모론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방부 합동수사단은 언론이 중구난방 던지는 의혹들을 여과없이 받아들여 좌충우돌 수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국민의힘의 설익은 배후 권력설에도 휘둘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단적 공동 책임을 지는 군은 야당 빅마우스(big mouth)들의 질타에 진위가 밝혀질 때까지 또 파렴치한 집단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는 샛길로 빠져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유족들의 절망을 키우게 됩니다.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 유족 측의 도움 요청에 눈길도 주지 않은 신원식 의원실이 이제는 유족과 자신의 뿌리인 군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난리통에 불쑥 제기된 음모론의 실체

공군제20전투비행단

공군 20비행단 강제추행 사건의 가해자 장 모 중사는 지난 3월 초 배 모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벌써 여러 채널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장 중사가 전익수 법무실장과 한양대 법대 동문이자 군 법무관 동기인 김 모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국민의힘 의원들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장 중사가 선임한 배 변호사와 국민의힘이 지목하는 김 변호사는 같은 법무법인 소속일 뿐입니다.

장 중사 사건 수임료도 몇 백만 원에 불과합니다. 배후의 권력을 움직일 만한 규모가 아닙니다. 게다가 장 중사가 구속되고 수임료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안 맞아 배 변호사는 사임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주목하는 김 변호사는 해군 법무실장 출신이어서 공군 수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확인 방법은 간단합니다. 김 변호사와 전익수 실장의 통화내역과 통화시점, 통화내용 등을 파악해 보기를 국민의힘에 제안합니다.

숨진 이 모 중사의 국선변호사는 왜 남성이었을까. 신원식 의원은 공군 법무실이 성추행 사건 국선변호사에 여성 법무관을 배정해야 하는 룰을 어겼다고 말했습니다. 직제상 공군본부 법무실의 국선변호사는 중위 직위입니다. 여성 법무관은 장기 복무 장교들이어서 대위로 임관합니다. 즉 현재의 공군 규정으로는 여성 국선변호사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공군의 국선변호사는 중위로 임관해서 전역하는 단기 복무 남성 법무관이 맡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성 국선변호사 2명이 번갈아 사건을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제도적 허점이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선될 것입니다.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의 오른팔이라는 서 모 중령과 국선 변호사가 결혼한 점도 문제 삼았는데,  두 남녀 법무 장교가 오며가며 만나 좋은 감정 싹터 결혼한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상털기가 아니라 외과수술처럼 정확히 환부를 도려내는 수사와 대안을 강구하는 지혜입니다. 멀쩡한 데까지 폐단으로 몰아가는 무책임한 의혹 제기는 지양해야 합니다.

기본에 눈 감은 혼란 속의 합동수사단

국방부

국방부 합동수사단은 압수수색 사실을 실시간 발표하며 떠들썩하게 수사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수사 절차조차 건너뛰었습니다. 기본 절차란 이 중사의 극단적 선택, 즉 변사사건에 대한 수사입니다. 지난 1일 국방부 검찰단은 사건 전체를 넘겨받으며 공군 군사경찰의 변사사건 수사 자료도 모두 거둬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입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현장과 시점에 남아있던 유의미한 증거들은 서랍 속에 처박혔고, 핵심 관련자 조사도 물론 없었습니다. 합동수사단은 이 중사가 절망적 선택을 한 지점에서 시작해 그 원인을 추적하는 열린 결론의 까다롭지만 당연한 정공법을 단칼에 배척했습니다. 대신, 강제추행과 회유 압력이 이 중사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단순한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관련자들 혐의를 끼워 맞추는 손쉬운 수사를 택한 것 같습니다. 수사의 첫단추를 단단히 잘못 끼운 감이 없지 않습니다.

수사의 기본에 눈 감을 정도로 국방부 합동수사단의 이번 수사는 우왕좌왕입니다.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청와대의 성화에 떠밀려 정밀한 수사 계획도 없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의혹들을 수사의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급히 뭔가 보여주려니까 스텝이 꼬였다는 이야기가 국방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소환 조사 없는 영장 청구와 구속, 소명 기회 없는 보직해임, 형사입건 없는 압수수색, 공수처법 무시 등 절차와 법리에 배치되는 무리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근거 박약한 음모론이 튀어나오면 합동수사단은 하릴없이 끌려다니게 됩니다. 다음 주에는 국민의힘이 제기한 의혹들을 확인하겠다며 또 내사 단계에서 설익은 압수수색하며 실시간 발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면 수사는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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