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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제 속도 감당 못 하는 국방부 수사…유족 · 군 상처 덧낼라

국방부의 검찰단, 조사본부, 감사관실, 인사복지실 등이 망라된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공군 이 모 중사 성추행 사망사건을 수사한 지 3주가 돼갑니다. 거의 매일 소환조사, 압수수색, 수사심의위가 이어졌습니다. 투입된 인력과 수사 속도가 역대급이라 군사작전을 보는듯합니다.

강제추행이 벌어진 3월 2일부터 첫 보도가 나온 5월 31일까지 이 중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들 자체가 당혹스럽긴 해도 사실 아주 복잡하진 않습니다. 국방부 합동수사단의 규모와 수사 속도라면 너끈히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가해자와 책임자들을 합당하게 처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을 만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분위기입니다. 법과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는 치밀한 수사가 아니라, 여론에 떠밀려 서두르다 보니 요란할 뿐 실속 없는 수사가 이뤄지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급기야 수사 대상에 오른 법무장교들이 수사의 공정성에 문제제기를 하며 국방부 수사에 반기를 드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자칫 유족도 납득 못 하고 벌 받는 이들도 수긍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까 걱정입니다. 이미 군 전체의 사기는 추락했는데 다시 바닥 밑으로 처박힐까 두렵습니다.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을 찾지 못하면 유족과 군에 큰 상처를 안길 수도 있습니다.

군검찰

압수수색 또 압수수색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2일 오전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피의자 장 모 중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오후 3시쯤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5시간 뒤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돼 밤 10시 반쯤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다음날 공군은 이 중사를 회유한 2차 가해 의혹을 받았던 노 모 준위와 노 모 상사를 보직 해임했습니다.

이어서 압수수색이 잇따랐습니다. 4일 국방부 검찰단은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15특수임무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압수수색했고,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에는 국방부 조사본부의 성범죄수사대를 투입했습니다. 7일에는 노 준위와 노 상사의 집과 사무실을, 8일에는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9일에는 20비행단 군검찰, 공군본부의 검찰부와 인권나래센터를 압수수색했습니다.

7일부터 11일까지 국방부 특별감사팀이 공군본부, 20비행단, 15비행단에 대한 직무감찰을 실시했습니다. 관련자들 줄소환과 노 준위·노 상사의 구속, 수사심의위 발족으로 숨을 고른 뒤, 검찰단은 15일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등을 다시 압수수색했습니다. PC 자료와 메일 등을 확보하기 위한 강제수사였습니다. 16일 공군본부 법무실과 검찰부, 17일 15비행단 피해 사실 유출 혐의 부대원의 사무실도 압수수색했습니다.
 

속도 감당 못하는 국방부 수사

국방부 검찰단은 장 중사를 불러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하지 않고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군사법원은 이를 발부했습니다. 민간 검찰과 법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사례일 것입니다. 장 중사 구속과 마찬가지로 노 준위, 노 상사도 아무 조사 없이 보직을 박탈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 중사와 노 준위, 노 상사 측이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아 반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숨 가쁘게 집행된 압수수색 중 여러 건은 형사 입건이 아니라 내사 입건 상태에서 진행된 것 같습니다. 국방부 핵심 관계자도 "내사 입건 상태의 압수수색이 종종 있던 것으로 안다"고 인정했습니다. 내사 단계의 현장 압수수색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범죄 혐의 소명이 완전치 않아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기 일쑤여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사에서 형사 입건까지 발전하지 못한 내사 단계의 압수수색들이 집행됐다는 것은 검찰단과 군사법원이 여론에 쫓기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속도를 좇느라 절차적 정당성을 놓치는 소탐대실의 우려가 아니 생길 수 없습니다. 국방부 수사의 고위 인사가 기자에게 "여론재판을 하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입니다. 국방부의 다른 관계자는 공개적 공식석상에서 '외부의 압력에 의한 급박한 수사'라고 털어놨습니다.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

법무장교들의 반발

법무장교들의 반발이 국방부의 허를 찔렀습니다. 16일 압수수색당한 공군본부 법무실의 전익수 실장과 고등검찰부장, 보통검찰부장이 국방부 수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자신들의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즉 공수처에서 수사하게 해달라고 잇따라 요청한 것입니다.

전익수 실장은 내사 단계의 압수수색을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수사"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국방부가 '고위 공직자 사건 인지 즉시 공수처 통보'라는 공수처법 24조 2항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제 전 법무실장의 공수처 수사 요청 관련 보도가 나오자 국방부는 허둥지둥 "공수처에 통보할 예정"이라는 짧은 입장문을 내놨습니다. 고위 법무장교들의 집단반발에 국방부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습니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전 실장의 요청 이전에 공수처 이첩을 검토했다"고 뒤늦게 설명했지만 자신들의 말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국회 법사위에서 서욱 국방장관과 김진욱 공수처장이 대화 나누고 있는 모습

꽉 막힌 답답한 출구

통수권자도 지시한 엄정 수사라는 명분을 앞세워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지금까지 행한 수사의 과정과 결과가 대충 이와 같습니다. 유례없는 속도에 절차가 흔들렸고, 그렇다고 사건의 실체를 덮은 장막도 시원하게 걷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건의 파장에 비해 기소와 중징계 숫자도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용두사미, 요란한 빈수레 같은 수사 결과가 나오면 유족들은 분노할 것입니다. 상처를 덧내는 꼴입니다. 군은 죄를 씻기는커녕 더 쌓게 됩니다. 국방부는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반대로 기소와 중징계가 줄을 이으면 절차적 하자가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큽니다. 시쳇말로 되치기 당하기 십상입니다. 수사 속도와 절차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결과가 어느 쪽이든 후폭풍이 간단치 않게 생겼습니다.

군 사기와 신뢰의 붕괴도 걱정입니다. 요즘 공군은 물론이고 육군, 해군, 해병대도 잠재적 피의자인 양 움츠러들었습니다. 임무에 대한 헌신을 소명으로 아는 절대 다수의 선량한 군인들도 제 신분을 당당하게 밝히기가 어려운 지경입니다. 수사 결과가 나오면 또다시 제 식구 감싸는 군이거나 파렴치한 군이라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군사력의 상당한 몫을 담당하는 군의 사기는 한번 더 크게 꺾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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