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꼬꼬무2' 20년 만에 해결된 이태원 살인사건…피해자 母 "범인 못지않게 검사도 나빠"

'꼬꼬무2' 20년 만에 해결된 이태원 살인사건…피해자 母 "범인 못지않게 검사도 나빠"

SBS 뉴스

작성 2021.06.18 03:41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꼬꼬무2 20년 만에 해결된 이태원 살인사건…피해자 母 "범인 못지않게 검사도 나빠"
피해자의 어머니가 범인만큼 검사도 나쁘다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에서 '살인자와 목격자, 그리고 거짓말쟁이 : 이태원 살인사건'이라는 부제로 이태원 살인사건의 그날로 돌아갔다.

이날 방송에서는 시즌2 최다 출연자 주우재와 빈지노, 오마이걸의 효정이 이야기 친구로 등장해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장 트리오는 오늘의 이야기에 대해 "찾는데 20년이 걸린 거짓말쟁이의 거짓과 관련된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1997년 4월 3일 서울 이태원에서 시작됐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 중이던 22세의 대학생 조중필 씨는 여자 친구를 바래다주기 위해 이태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이 급했던 그는 큰 길가의 햄버거 가게로 여자 친구와 함께 갔고,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여자 친구는 햄버거를 주문하고 중필 씨를 기다렸다.

하지만 5분, 10분이 지나도 중필 씨는 돌아오지 않고 그때 화장실 쪽에서 어떤 남자가 새파랗게 질려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나왔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여자 친구는 화장실로 향했고 온통 피바다가 된 화장실의 안쪽 구석에 쓰러진 중필 씨를 보고 경악했다.

중필 씨의 목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가득했고, 출혈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이 사건은 바로 일명 '이태원 살인사건'. 전교 1,2등을 놓친 적 없고 속 한번 썩인 적 없는 중필 씨는 1남 3녀 중 막내, 3대 독자로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했던 것.

그리고 다음날 미군 부대로 페터슨이 남자를 찌르는 것을 봤다는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이에 패터슨은 긴급 체포됐고 사건은 순조롭게 해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패터슨은 본인이 아닌 친구 에디가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사건 당일 이태원의 클럽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배가 고파서 아래층의 햄버거 가게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한국인 남자가 화장실로 들어갔고 에디가 "멋진 걸 보여줄 테니 화장실로 들어가자"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순식간에 에디가 남자를 살해했다는 것.

이에 에디를 체포하기 위해 에디의 집으로 수사관들이 출동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 변호사를 만나고 있었고 자진 출두 후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에디의 진술은 패터슨의 진술과 정반대였다.

그는 패터슨이 뭐 보여줄 게 있다며 화장실에 가자고 했고, 손을 씻으러 가려던 본인은 그를 따라나섰다고. 손을 씻고 있는데 패터슨이 중필 씨를 계속 찔렀고 에디는 그 장면이 믿어지지 않아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엇갈린 진술에 미군 범죄 수사대는 그날 밤 함께 있던 친구들을 불러 조사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주문한 햄버거가 나왔는데 그때 패터슨이 주머니에게 잭나이프를 꺼냈다는 것. 이는 바로 범행에 사용된 칼이었다. 그리고 이때 에디가 패터슨에게 "야 패터슨 사람 찔러본 적 있어? 나가서 아무나 찔러봐"라고 부추겼다는 것. 그 순간 중필이 화장실로 들어갔고 이에 두 사람이 뒤를 따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온 두 사람의 행동은 사뭇 달랐다. 에디는 클럽으로 올라왔는데 흰 셔츠에 핏자국이 스프레이로 뿌린 듯한 모양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어떤 친구의 목을 칼로 찔렀다"라고 했고, 이에 친구들이 놀라 화장실로 갔더니 중필 씨가 누워있었다는 것. 이에 친구들은 "네가 사람을 죽였지?"라고 따져 물었더니 에디는 "내가 아니야. 그저 재미로 패터슨이 그런 일을 했다"라며 웃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반해 패터슨은 화장실에서 나와 클럽으로 돌아오지 않고 클럽의 화장실로 갔다. 머리부터 셔츠, 바지, 양손이 피투성이였던 패터슨은 화장실에서 피를 급히 지웠고 친구의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까지 빌려 쓴 후 서둘러 클럽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미군부대로 돌아가서 피 묻은 셔츠를 태웠고 범행에 사용한 칼은 하수구에 버리는 증거 인멸의 행동까지 했다.

또한 친구들은 패터슨이 '노르테 14'라는 갱단의 멤버였고, 이 갱단의 공격 방식은 짧은 시간에 집중 공격을 퍼붓는 중필 씨를 살해한 것과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미군 수사관은 범인이 패터슨이라 확신하고 이 같은 소견을 한국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사건은 반전을 맞았다. 살인사건만 100건 넘게 맡았던 베테랑 박검사는 미군 수사관의 수사는 믿을 수 없어 처음부터 사건을 다시 조사했고 그는 살인범이 에디라 확신했다.

그가 에디가 범인이라 생각하는 근거는 세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살인자의 기억법. 그는 당시 너무 놀라 구체적인 기억이 안 난다는 에디와 공격 부위와 범행 방법, 공격 횟수 등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는 패터슨의 차이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는 "칼로 사람을 찔러 피를 보면 이성을 잃어 그 후의 범행에 대하여 기억을 못 하는 것이 범죄심리학의 일반적 상식이다"라며 구체적인 기억을 하지 못하는 에디가 살인자라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이러한 박검사의 의견에 의아해했다. 이수정 교수는 "보통 피해자의 기억이 부정확, 목격자의 기억도 경우에 따라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검사의 주장은 범인의 기억이 부정확하다는 것인데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 연구나 상식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본인이 손가락에서 느끼는 감각 정보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진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진술을 목격자들은 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박검사는 부검을 맡았던 법의학자의 "범인은 피해자보다 키가 클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방어흔이 없어 범인은 피해자를 제압할 정도로 힘이 센 것으로 보인다"라는 소견에 주목했다. 이에 박검사는 신장 172cm, 체중 63kg의 마른 체격이었던 패터슨이 아닌 신장 180cm, 체중 105kg의 꽤 체격이 큰 에디가 범인일 것이라 여겼던 것. 이에 법의학자는 "가능성을 이야기한 거다"라고 했으나 박검사의 생각은 이미 기울어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검사가 확신할 수밖에 없던 근거는 거짓말 탐지기. 그는 패터슨과 에디에게 "조중필을 칼로 찌른 사람이 당신이냐"라는 질문을 똑같이 던졌고, 이에 두 사람은 똑같이 범행을 부인하며 상대가 범인이라 지목했다. 하지만 거짓말 탐지기의 결과는 달랐다. 동요가 심한 에디와 안정적인 패터슨, 탐지기 결과로는 에디는 거짓말을 했고 패터슨은 진실을 말했다는 것.

긴장하면 진실임에도 거짓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 소시오패스 같은 경우에는 탐지가 불가능한 거짓말 탐지기 결과는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검사는 이 결과를 100프로 믿으며 에디가 살인범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검사는 에디는 살인죄, 패터슨은 흉기 소지 및 증거 인멸 혐의로 기소했다.

법정에서도 둘의 진술은 계속 엇갈렸다. 서로가 범인이라 주장한 두 사람. 하지만 1심 판결 결과 에디는 무기징역 패터슨은 증거 인멸로 징역 1년 6개월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판결을 두고 말이 많았다. 패터슨과 에디는 만 17세인 미성년자로 법정 최고형이 20년인데 판사는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 그런데 이것이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법을 몰라서 생긴 오류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이에 2심에서는 이를 바로 잡았다. 에디는 살인죄로 징역 20년, 패터슨은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또 뒤집혔다. 대법원은 에디가 살인범이라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다시 재판을 열었고 에디는 다시 열린 재판에서 무죄 판정을 받은 것.

에디가 범인이 아니라면 범인은 패터슨. 하지만 붙잡아야 할 패터슨은 이미 형을 마치고 풀려난 상태였다. 형 집행정지를 받은 패터슨은 에디의 재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석방된 것.

형 집행정지는 교도소 생활이 불가능할 때나 가능한 것으로 허가 사유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패터슨은 어디에도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에 국회에서는 법무부 장관에게 그에게 형 집행정지 처분을 내린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행형성적을 기준으로 한 것 같다"라며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함만 심해졌다. 중필 씨의 어머니는 "법원을 믿었다. 그래도 범인을 가려내겠지. 판사도 억울함을 풀어주겠지 생각했는데 이건 나라도 아니고 법도 아니다 싶었다"라며 "판사님이나 검사님들 아들이 이런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면 범인들을 그렇게 내보내겠냐. 생각을 좀 해봐라"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리고 중필 씨의 어머니는 "패터슨을 처벌해달라"는 고소장을 접수한다. 그런데 그는 이미 한국을 떠난 뒤였다. 출국 정지 상태였던 패터슨이 공항에서 당당하게 비행기를 타고 99년 8월에 출국했던 것. 이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실 출국 정지는 정해진 기한이 있어서 3개월마다 연장 신청이 필요했다. 그런데 바뀐 담당 검사가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 이유는 다름 아닌 깜빡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경고 처분만 받았을 뿐 제대로 된 징계도 받지 않았다.

검사는 연장 신청을 해야 하는 시일이 며칠 지난 후 부랴부랴 연장 신청을 했다. 하지만 패터슨은 출국한 후였다. 검사는 패터슨의 출국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특히 그는 출국한 지 3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이 사실을 검찰은 은폐했다. 심지어 언론 취재에는 거짓말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담당 검사는 "그때 거짓말을 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공개적으로 출국했다고 하기에 내 입장이 좀 그랬다"라고 말했다.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한을 풀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은 몇 번이고 나라와 법의 도움을 부탁했다. 하지만 늘 돌아오는 대답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라는 것. 이에 가족들은 미국 법원에 직접 소송 제기했다. 국가와 검찰이 해야 할 일이 피해자 가족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이런 애타는 가족들의 마음은 통하지 않았다. 미국 법원은 유가족들의 요청을 기각했다. 범죄자 송환은 국가적 차원의 일로 개인이 개입할 수 없다는 것. 이에 중필 씨 어머니는 탄원서의 서명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서명 한 장을 받기 위해 아들의 아픈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 해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는 눈물도 나지 않고 오히려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중필이 죽인 놈들 데려오는 것이 의무 같다"라는 마음 하나로 끝까지 매달렸다.

그렇게 모은 서명을 모아 검찰에 제출한 중필 씨의 어머니. 하지만 검찰은 "수사 중이다. 소재 파악 중이다. 패터슨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라고 믿어달라 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한국 검찰이 패터슨의 소재를 파악해달라고 공식 요청을 한 것은 2005년이었다. 이는 패터슨이 도주한 지 6년 후였다.

6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이에 법무부는 "사법 공조는 거기 경찰관이 가서 체포해오는 거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워싱턴주에 있다면 거기 경찰들이 워싱턴주를 다 뒤져야 하나"라며 당황스러운 답을 전했다.

2005년 공식 요청 후 미국의 답변이 오는데 걸린 시간만 3년 4개월. 그리고 미국의 답변은 "패터슨의 소재를 알 수 없다". 그렇게 중필 씨가 사망하고 12년의 시간이 허망하게 흘러갔다.

모두의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중필 씨의 사망. 그런데 2009년 9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며 이 사건은 재조명됐다. 이에 '그것이 알고 싶다'팀이 직접 미국으로 찾아가 패터슨을 찾았다. 그리고 나라가 검찰이 십여 년 동안 하지 못했던 패터슨을 취재 1주일 만에 찾아냈다.

2009년 패터슨을 직접 만난 '그알'팀. 당시 패터슨은 한국에서 자신을 도망자 취급하는 것을 불쾌해했다. 그는 "난 합법적으로 돌아왔다. 내 이름으로 된 부동산도 있고 차량 등록부에도 이름이 올라와있다. 증언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지만 검사는 연락하지 않았다"라며 한국의 사법 당국에서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방송의 파장은 컸다. 방송 이후 사법 당국의 자성을 촉구하며 재수사를 요청했고, 이에 사법 당국은 2009년 12월 미국에 정식으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그리고 1년 반 후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1년 5개월 만에 재판 결과가 나왔다. 미국 재판부는 "패터슨을 한국에 인도한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패터슨의 버티기가 시작됐다. 그는 "송환 결정이 잘못됐다. 다시 심의를 해달라"라며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송환을 거부했고 인신보호 청원까지 제기했다. 또한 패터슨은 소파 협정과 일사부재리 원칙을 거론하며 버텼다.

그렇게 또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패터슨의 한국 송환이 결정됐다. 이태원 사건이 벌어진 지 무려 18년 만에 패터슨이 한국 땅을 다시 밟게 된 것. 당당한 얼굴로 송환된 패터슨은 여전히 살인 혐의 인정하지 않았고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자신이 송환된 것에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

18년 전에 벌어진 사건, 현장 사진 몇 장과 과거의 진술을 토대로 그의 살인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새로운 검찰팀이 구성됐고 이들은 화장실 세트를 설치하고 분석을 시작했다. 증거물은 과거와 동일했지만 과거와 달리 과학수사 기법이 도입됐다.

그리고 이 과학수사 기법으로 혈흔 분석을 했고 이는 패터슨의 진술을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현장 사진 속 혈흔 분석 결과, 패터슨이 주장하는 위치에는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었고, 피의 양과 각도를 봤을 때 피해자보다 살인자에게 피가 더 많이 묻게 되기 때문에 패터슨이 피를 뒤집어썼던 것. 이에 검찰은 패터슨이 범인이라 확신했다.

다시 열린 재판. 판사는 마지막으로 중필 씨의 어머니에게 발언권을 줬다. 어머니는 "20년 전 수사를 잘못하면서 살인범들이 다 밖으로 나오고 가족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집 팔아서 변호사 비용 대고 큰 딸 전세금 딸들 퇴직금, 온 식구가 이렇게 21년째 버티고 살았다. 법이라는 것이 이렇게 억울한 사람에게 잔인할 수 있냐. 범인 놈들도 나쁘지만 검사도 우리한테는 범인 못지않게 잘못했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고통을 준 것은 범인이나 검사가 다를 것이 없다는 것.

사건 발생 20년 만에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패터슨이 피해자를 살해하였음이 의심할 여지없이 충분히 증명되었다. 패터슨에 징역 20년을 선고한다"라고 했다.

눈 앞의 살인자를 잡기 위해 20년을 돌아온 어머니. 그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은 후 "그래도 20년 후에 이렇게 진범이 밝혀져서 마음이 편하다. 아들은 죽었는데 살인범이 맨날 없어서 진범이나 밝혔으면 했는데 이렇게 밝혀져서 감사하고. 하늘에 있는 우리 중필이도 한을 풀었다"라며 "다음 생에 태어나면 돈 많은 부잣집에 태어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패터슨이 대법원의 판결을 받은 지 몇 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다시 그가 풀려날까 불안해하는 어머니. 올해로 79세가 된 중필 씨의 어머니는 "대통령 여섯을 거쳤어요. 세상에 말이 돼요? 나도 이런 일 당할지 생각도 안 했지. 착하게만 살면 되는 줄 알았지.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나라의 사람도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해 보는 이들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오늘의 이야기에 효정은 "중필 님 외에도 이런 일을 당하는 이들이 더 있을 거다. 그런 분들의 소리를 더 많이 들어줬으면, 작은 소리에 귀를 많이 기울여줬으면 좋겠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주우재는 "아들의 살인으로 고통받은 것보다 법 집행이 잘못된 것 때문에 받은 고통이 더 크지 않을까"라며 "법이 제대로 집행되어야만 정의가 실현되겠구나"라고 제대로 된 정의가 지켜지기 위해 기본이 지켜져야 함을 강조했다.

장항준은 "정의는 살아있다고 외치는데 그게 슬프게 느껴진다. 사실은 정의가 죽어있으니까 그렇게 외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빈지노는 "권력을 수동적으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갖고 그 순간 내가 해야 될 일이 뭔지 정확하게 아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라고 했다. 이에 장항준은 "국가는 어머니와 같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만큼 어머니도 우리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중필 씨 어머니는 "억울한 일을 국민이 당하면 그걸 풀어주는 게 나라고 법이다. 다 내 자식같이 여겨가며 나라에서 잘 보살펴줬으면 좋겠다"라고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