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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국의 시간》에 없는 것들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의 성격을 "정치가 아니라 기록"이라고 규정했다.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벌어진 사태를 정확히 기록함과 동시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최소한의 해명과 소명을 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조국의 시간》의 내용이 역사적 진실인지 부당한 왜곡인지에 대해선 이미 여러 사람이 의견을 밝힌 만큼 이야기를 보태지 않겠다. 대신 이 글에서는 《조국의 시간》에 없는 것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자신은 물론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와 동생과 관련된 의혹뿐만 아니라 검찰의 의도에 대해서까지 317쪽에 걸쳐 자세히 설명한 이 책에서 조국 전 장관이 언급하지 않은 의혹이 있다면, 실수나 착각이 아니라 의도적 생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국, 정경심 부부 법원 동반 출석

《조국의 시간》에 없는 것 1 – 유죄가 선고된 혐의에 대한 설명

《조국의 시간》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 중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혐의들이다. 조국 전 장관은 다른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한 것과는 달리 아내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혐의들에 대해서 회고록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정경심 교수 등이 딸 조민 씨 명의의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하고, 단국대 모 교수 측과 '스펙 품앗이'를 하고, 딸의 KIST와 공주대 인턴 과정에 대해 허위 내용을 기재한 것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고등학교 학생의 인턴십에 대해 형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취지의 총론적 반박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정경심 교수가 징역 4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 거래 혐의 역시 《조국의 시간》에는 언급돼 있지 않다. 최강욱 의원이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십 증명서를 발급해줬다는 의혹에 대한 구체적 설명도 없다. 이 역시 최강욱 의원의 1심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된 혐의다.

본인이 아니라 아내가 한 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은 이 책에서 어머니와 작고한 아버지, 그리고 동생이 연루된 웅동학원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매우 자세하고 구제척으로 설명하며 반박하고 있다. 본인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경심 교수에게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혐의 대부분에 대해 침묵한 것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국 전 장관은 "항소심이 열려서 치열한 다툼이 진행"되고 있고,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자신이 공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다투고 있기 때문에 상세한 언급을 하지 않겠다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1심에서 다투고 있는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이나 이미 1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항소심에서 다투고 있는 의혹들에 대해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다.

결국, 조국 전 장관은 이 책에서 1심에서 이미 무죄가 선고됐거나 1심에서 자신이 이미 무죄를 주장하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는 의혹에 대해서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이미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거나 재판 과정에서 아직까지 자신의 입장을 밝힌 적이 없는 의혹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가 나중에 법원 판결을 통해 반박될 가능성이 있는 의혹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이 법정에서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법적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회고록을 출간했다고 말하면서 법원이 거짓말이라고 규정한 대목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조국의 시간》에 없는 것 2 – 명백한 거짓에 대한 반성

이 책에서 조국 전 장관이 말하지 않은 것은 또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공개적으로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위에 대해서 조국 전 장관은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아직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조국 전 장관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이 2019년 8월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 성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점을 법정에서 명확하게 입증한 사람이 있다. 기자도 아니고 검사도 아니다. 조국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 교수다.

조국 전 장관 측은 2019년 8월 19일 자신의 가족이 거액을 투자한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주식회사 코링크PE와 자신의 5촌 조카 조범동 씨는 관련이 없으며, 코링크PE의 실소유주가 조범동 씨라는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보도자료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발송한 문자메시지의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Web발신]
[인사청문회 준비단에서 알려드립니다(8. 19.)]
1. "블루코어밸류업 1호 펀드 실질 오너가 조 후보자의 친척 조 모"라는 의혹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
– 조 모 씨는 ㈜코링크PE 대표와 친분관계가 있어 거의 유일하게 위 펀드가 아닌 다른 펀드투자관련 중국과 mou 체결에 관여한 사실이 있을 뿐입니다(이건 mou도 사후 무산됨).
– 후보자의 배우자가 조 모 씨의 소개로 블루코어밸류업 1호 사모펀드에 투자한 것은 사실이나, 그 외에 조 모 씨가 투자 대상 선정을 포함하여 펀드 운영 일체에 관여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경심 교수 재판 과정에서 명백한 허위사실로 밝혀졌다. 정경심 교수 측은 법정에서 조범동 씨가 코링크에 실질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돈을 투자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조범동 씨와 정경심 교수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와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녹음파일도 법정에서 공개됐다. 조범동 씨가 "투자 대상 선정을 포함하여 펀드 운영 일체에 관여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조국 전 장관 측의 보도자료는 완벽한 거짓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완벽한 허위사실을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보도자료로 배포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조국 전 장관이 아내가 가족 재산의 상당 부분을 투자한 사모펀드의 운영자가 자신의 5촌 조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언론에 관련 보도가 나오자 정경심 교수나 조범동 씨가 조국 전 장관에게 '조범동은 펀드 운용사와 관계가 없다'라고 거짓말을 해서 허위사실이 포함된 보도자료가 배포되게 된 경우다. 다른 하나는 조범동 씨가 사모펀드 운용사의 실질적인 대표라는 사실을 조국 전 장관 역시 알고 있었으면서도, 논란이 되는 사모펀드 운용에 조국 전 장관의 친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경우다.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쪽이 상식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경우에 해당하든 조국 전 장관이 인사청문회 준비단이라는 공적인 조직을 활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거짓이 명백하게 드러난 이상 조국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신분으로 공개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위에 대해 해명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317쪽 분량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을 발견할 수 없었다.

조국 전 장관

《조국의 시간》에 없는 것 3 – 지켜지지 않은 약속

《조국의 시간》 없는 세 번째 것은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한 해명이다. 조국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공개적으로 몇 가지 약속을 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웅동학원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조국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 직전인 2019년 8월 23일에 "웅동학원 이사장이신 어머니(박정숙)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비롯해, 저희 가족 모두는 웅동학원과 관련된 일체의 직함과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제게 밝혀 왔다. 향후 웅동학원은 개인이 아닌 국가나 공익재단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의, 이사회 개최 등 필요한 조치를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공익재단 등으로 이전 시 저희 가족들이 출연한 재산과 관련하여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약속한 지 1년 후인 지난해에 조국 전 장관의 어머니가 여전히 웅동학원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기사가 여러 차례 보도됐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조국 전 장관의 가족이 웅동학원 이사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거나, 웅동학원이 공익재단으로 이전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이유 역시 《조국의 시간》에는 설명돼 있지 않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장관 지명 이후 벌어진 사건과 불거진 의혹에 대해 소상히 해명하겠다면서도 자신이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할까?

(조국 전 장관은 2019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군 입대를 5차례 연기한 아들이 대학원 학업을 마치는 대로 2020년에 입대할 것이라고 공언한 적이 있다. 조국 전 장관의 아들은 2020년에 입대하지 않았다. 2021년도 절반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입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조국 전 장관의 이 약속 역시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020년은 코로나19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조국 전 장관도 2020년 11월에 "아들이 대학원을 졸업하면 입대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지금 시점에서 약속을 파기했다고 단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조국의 시간》에 없는 것들의 필요성

지나간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책으로 펴내는 것은 조국 전 장관의 권리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진실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조국의 시간》을 쓴 것이라면 답하기 곤란한 의혹과 명백한 거짓말,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조국의 시간》에 없는 것들 역시 '조국의 시간'에 대한 온전한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국 전 장관이 《조국의 시간》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이야말로 사람들이 조국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던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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