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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죽음 부르는 군 성폭력…군은 스스로 환부를 도려낼 수 있을까

"하룻밤만 자면 되잖아"
- "죽기 싫다"던 그녀는 결국 떠났다

상사의 성추행과 신고 이후 지속된 회유 및 협박을 죽음으로 고발한 공군 부사관 사건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군부대 성폭력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군 당국의 대책도 그때마다 제시됐다. 그런데도 군 내 성폭력이 비슷한 행태로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8년 전에 있었던 비슷한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하룻밤만 같이 자면 해결될 것을 왜 군 생활 어렵게 하느냐"
강원도 화천 15사단 사령부에 근무하던 오 모 대위에게 직속 상관인 A 소령이 한 말이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허리띠를 풀어 준다며 더듬고, 속옷에 손을 넣는 등 추행이 이어졌다. 오 대위가 성적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혹한 대가가 돌아왔다. 매일 야근을 시키고 과도한 업무를 지시한 뒤 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고서를 찢어 오 대위의 얼굴에 던졌다. 그리고 다시 성적인 요구를 했다. 그렇게 10개월간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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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위는 차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죽기 싫다" "살고 싶다"며 흐느낀 1시간 30분 분량의 음성이 블랙박스에 그대로 담겼다. 그것이 오 대위의 살아있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결혼을 앞둔 28살의 여군. 위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대신해 두 동생을 끔찍이 챙겼던 오 대위는 그렇게 삶을 던졌다.

군 차원의 강력한 처벌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회유였다. 당시 부사단장은 오 대위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A 소령이 농담으로 한 건데 오 대위를 잘 보내주는 의미에서 A 소령을 용서해 주자." 대체 그녀를 잘 보내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군사법원 재판 결과는 참담했다. 가해자 A 소령은 1심 군사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항소심에서 성범죄와 가혹행위가 사망을 초래한 이유로 인정되면서 최종적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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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사건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이 사건은 2013년 10월에 있었던 군 성폭력 사건이다. 오 대위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군은 얼마나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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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모르지 않는다

- 왜 해결이 안 되는지를
군대 내 성폭력 문제,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군도 그 답을 모르지 않는다. 국방부 의뢰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군대 내 성폭력 제한적 신고제도 도입방안 연구 논문>을 2017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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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부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죽음을 택한 이 중사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바로 상관에게 신고했다. 상관이 한 말은 "살다 보면 많이 겪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부대 내 성 고충 상담관과 20여 차례 상담했지만 계속된 회유와 2차 가해가 이어졌고 자살 충동이 심해져 외부기관 상담까지 받았다. 국선 변호인에게 관련 사건을 초기에 넘겨받은 공군 검찰은 두 달간 가해자 조사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고, 군 법무관 국선변호인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기까지 한 피해자를 사실상 방치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중사는 다른 부대로 전출을 희망해 근무지를 옮겼지만 새 부대에서도 문제를 일으킨 여군이란 낙인이 찍혀 있었다. 결국 이 중사는 전출 사흘 만에 세상을 등지는 장면을 직접 동영상으로 남기고 삶을 정리했다.

군대 내 성폭력은 '예민하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일부의 문제였을까? '2019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군인 10명 중 2명이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성범죄 피해 경험이 있는 여군의 절반가량은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고 속으로만 삭였다.

미투 운동으로 전 세계가 들끓었지만, 군대 내 미투는 더 힘들어졌다. 부대 내 성희롱과 성폭력 관련 고충이 제기됐을 때 공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군은 2012년 75.8%였지만, 2019년엔 48.9%로 오히려 줄었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는 퇴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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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발생 후 신고 의향을 묻는 질문에 '관련자와 상의하거나 보고 또는 신고하는 방안을 고민하지도 않았고 그럴 계획도 없다'는 답변 비율이 47.1%로 가장 많았다. '고민은 했지만 신고를 포기했다'는 응답은 33.2%, '고민 중'이라는 응답은 19.6%였다.
 

언제나 대책은 있었다
죽어야 바뀌는 사회? 죽어도 안 바뀌는 군대

자, 이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군은 대책을 쏟아냈다.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대책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만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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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대책은 있었다. 규정도 만들고, 제도도 도입했다. 2018년 육군 장성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보직해임 된 것을 계기로 국방부는 군 내 성폭력 사건처리와 피해자 지원을 맡는 성폭력 전담기구를 만들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미군과 프랑스군을 모델로 성폭력 조사와 지원 등을 한 기구에서 도맡고 피해자 법률 지원은 일반 국선변호사가 아닌 성폭력 전담 변호사가 맡는다고 밝혔다. 각 군 본부가 아니라 국방부 직속으로 보고하게 한 건 부실한 피해자 보호와 수사 지연, 부대 내 은폐를 막자는 취지였다. 당시 국방부 공무원들은 미국 시찰도 다녀오며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했지만, 흐지부지 됐다. 국방부가 밝힌 이유는 이렇다. 상당히 많은 조직 개편이 있어야 해 대신 해당과의 인원을 늘렸다는 것. 하지만 독립 기구가 생기면 기존 수사 조직이나 지휘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진짜 이유라는 지적이 많다.
 

군 스스로 자신의 환부를 도려낼 수 있나
- 사법권 위에 지휘권?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변호 해야 할 국선변호인은 법무관 장교, 군 안의 지휘체계 안에 있다. 사설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지만, 그 사설 변호사조차도 국가의 도움을 받아 여성가족부에서 선임해주는 변호사다. 신청해도 시간이 걸리고, 될지 안 될지도 불분명하다.

결국 사법권 위에 지휘권이 있는 구조를 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휘관의 의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현재 군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형사사건에서 가해자가 군인일 경우 최종심은 대법원이 맡지만 1,2심 재판은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모두 군사법원에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일반 장교가 재판관이 돼 재판에 참여하거나 일선 지휘관이 형량을 깎아주는 '군내 온정주의'가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또 군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소속 부대장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데 이 때문에 일선 부대 지휘관이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군사법원이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도 제기된다. 군사법원 설치 근거는 헌법. 헌법 110조는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해 특별법원으로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군사법원은 미 군정 시절 군사재판을 담당하던 군법회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군사법원'이라는 이름도 1987년 9차 개헌 때 만들어졌다. 군사법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의 근거는 북한과 대치 중이라는 국내 안보상황과 군의 특수성을 감안한 신속한 재판의 필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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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행 군사법원 사건을 보면 군사범죄는 8%에 불과하고, 92%는 군인이 저지른 일반 형사범죄라는 통계가 있다. 군사법원의 핵심적 문제는 법원이 행정부 아래 있다는 점이다. 수사와 재판이 지휘관의 의도에 휘둘릴 수 있어, 군 내부의 비밀 보호나 '조직 보호'를 위해 덮기로 결정하고 짜 맞춘다면 막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말이다. 이런 군 사법체계로 인해 군은 사회로부터 차단된 성역이 된다. 인권유린 행위를 막기는 더 어려워진다.

세계적으로 평시 군사법원을 유지하는 국가는 소수다. 프랑스, 일본, 대만, 터키 등은 군사법원을 운영하지 않고,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군사 범죄가 아닌 군인들의 성범죄 등 일반 형사 범죄는 민간 법원에서 재판한다.
 

지휘관 기소권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는 미국

군대 내 성폭력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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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월 군내 성폭력 대응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독립적 검토위원회는 군내 성범죄 기소 권한을 지휘관에게서 분리하는 권고안을 제시했고 군 최고수뇌부가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의회 문턱만 넘으면 되는 상황이다.

미군은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의 전투부대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실전을 치르는 군대다. 이런 미군에서도 부대 내에서 벌어진 형사 사건에 대한 지휘관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외부 민간인의 시각으로 사건을 다룰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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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평시 군인들의 범죄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지휘관의 영향권에서 떼어내려는 제도 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지휘관은 자기 휘하 부대에서 발생한 사건이 자신의 진급 평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축소·은폐 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국방부는 지난해 7월 장성급 지휘부대의 보통검찰부를 폐지하고 국방부 장관 및 각군 참모총장 소속으로 검찰단을 설치하고, 부대장이 가진 구속영장청구 승인권 폐지 등을 담은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방법은 늘 있었다. 문제는 실천이다.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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