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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찰 총경과 국수본 간부가 1박 120만 원 호화 골프 여행 간 이유

경찰 골프 접대 의혹 ① 청탁금지법 위반의 경계

1. 우리가 '경찰 골프 접대'에 주목한 이유

현 정부의 대표적 정책인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구체화될수록 경찰의 수사 권한 및 그 범위에 따른 수사 자율성은 대폭 확대돼 왔습니다. 올해 초 경찰 수사 권한 확대에 따라 국가수사본부라는 새로운 권력기구도 창설됐습니다.

어쩌면 저를 포함해 이 취재파일을 읽으시는 일반 시민에게는 검찰이 담당하기로 한 중요 6대 범죄(공직자, 선거, 경제 등)보다 국가수사본부를 비롯한 일선 경찰서의 경찰 직원들의 업무 범위가 현실 세계에선 더 가깝게 느껴지실 겁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범위가 줄어드는 만큼이나 비례해 우리 형사사법시스템에서 경찰의 권한과 자율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경찰 출입과 취재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살인 사건, 아동 학대, 실종 사건 등 각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상황을 지속적으로 챙기고 보도하는 한편 경찰 구성원들이 법적, 도덕적, 직업윤리적 의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SBS 사회부 사건팀은 사정기관을 통해 국가수사본부 간부급 직원과 다른 경찰 고위 간부 등이 사업가와 오랜 관계를 맺고 부적절한 모임을 가진다는 최초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장기간 취재를 거쳐 지난 4월 14일 방송 보도를 통해 사진 한 장을 공개했습니다.
 

2. 골프 라운딩을 돌던 네 명이 찍은 사진 한 장

작년 7월쯤 강원도의 한 고급 리조트에 속한 골프장에서 여성 4명이 골프 라운딩 중 나란히 서서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경찰 골프 접대 사진

사진 속 가장 왼쪽 인물은 지역 경찰청 소속 강 모 총경으로 경찰대를 졸업했습니다. 경찰대 동기중 가장 빨리 경찰서장급인 총경으로 승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가장 오른편에 서 있는 인물은 국가수사본부 소속 정 모 경정 배우자인데 정 경정은 강 모 총경과 경찰대 동기이기도 합니다. 정 경정은 지난해 1월부터 경찰청 범죄정보 담당을 시작으로 현재는 국가수사본부에서 범죄정보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자면 전국에서 수집되는 각종 범죄 첩보를 총망라하는 자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두 여성은 각각 병원장의 부인과 과거 여행 업체를 운영했던 사업가 손 모 씨의 부인입니다.

함께 라운딩을 한 부인들이 사진을 찍었던 동시간대 남편들도 모여 골프를 쳤습니다. 우선 강 총경의 남편 a 씨가 있습니다. 강 총경은 경찰대 출신으로 강 총경-a 씨-정 경정은 모두 대학 동기동창으로 우선 이 모임의 주요 연결고리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a 씨는 경찰을 나와 국내 모 대기업의 대관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a 씨와 국가수사본부 범죄정보 담당인 정 경정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 두 사람이 상당히 막역한 사이라는 건 경찰 내부에 널리 알려진 이야깁니다.

사업가 손 씨 얘기로 돌아가 봅니다. 손 씨는 과거 여행업체를 운영했다 지금은 IT 서비스 업체 간부를 맡고 있습니다. 손 씨가 운영한 여행업체 광고를 보니 주로 유럽과 아시아 국가 여행 패키지 상품을 파는 평범한 회사로 보였습니다. 손 씨 과거에 대해 여러 가지 떠도는 소문들이 있지만 취재진이 기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가 여행업체 사장이었고 이 1박 2일의 여행을 주도한 사람이란 겁니다.
 

3. 골프여행의 시작은 사업가가 들고 온 '바우처'

총 네 쌍의 부부동반 모임은 사업가 손 씨의 제안으로 시작됐습니다. "어떻게 해서 여행을 가게 됐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손 씨는 자신이 카드사 VIP 회원이라 30% 할인해주는 '바우처'가 생겨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또 손 씨에게 "어떻게 해서 간부급 경찰관들을 알고 지냈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손 씨는 "10년 전부터 정 경정을 알고 지냈고 지인 소개로 강 총경의 남편 a 씨도 알고 지냈다"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인연이다 보니 부인을 포함한 가족들과 자녀들도 서로 잘 알고 지내는 부부 동반 가족 모임이라는 설명입니다.
 
#사업가 손 씨
"제가 봤을 때 기삿거리는 안됩니다. 다 쓰고 왔기 때문에 그 바우처가 웬만해서 디스카운트받은 거 아니에요. 그거를 뭐 제가 다른 데서 빌려와서 접대용으로 쓴 것도 아니고 저는 정확하게 할인받은 거를 그냥. 가끔 집에서도 같이 식사도 하고.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고."

기삿거리가 아니라는 사업가 손 씨. 그렇다면 비용 처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사진이 찍힌 곳은 강원도 홍천의 한 고급 리조트에 속한 골프장이었습니다. 강 총경, 정 경정 등 네 쌍의 부부는 지난해 기준 120만 원짜리 방 두 곳에서 한 곳 당 두 가족씩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골프 비용은 캐디비와 카트비 등을 포함하면 대략 1인당 26만 원가량 나왔습니다. 식사는 총 3번을 했는데 첫 째 날 저녁이 가장 많이 나와 총비용이 65만 원 정도였습니다.

취재진은 손 씨를 포함해 현직 경찰인 강 총경과 정 경정 등에 전화했습니다. 답변은 모두 같았습니다. 골프 부대 비용은 어떤 가족이 계산하고 리조트 숙박비는 어느 가족이 계산하고 밥 값은 누가 또 계산하고…. 비용을 더 내고 덜 낸 가족들이 있어 이를 계산해 N분의 1만큼 비용처리했다고 말했습니다.

숙박비용 등을 최소 30% 이상 할인해주는 '바우처'가 있기 때문에 120만 원 숙소는 90만 원에 묵었다고 합니다. 골프 비용 등도 할인을 받거나 무료인 경우도 있어서 모두 더해서 계산해도 한 가족당 130~140만 원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건 돈을 덜 낸 가족이 더 낸 가족에 어떻게 부족한 액수를 보전해줬냐는 겁니다.

각 여행에 참여한 주체들의 그날 영수증 증빙 내역을 받아 비교해봤습니다.
 

4. N분의 1로 나눠 냈다는 주장…'김영란법' 위반 소지는 없나

강 총경은 여행을 가기 전날 현금 30만 원을 뽑았고 여행 첫날 저녁 65만 2천 원과 다음날 점심으로 27만 원 카드 결제했다고 썼다고 설명했습니다. 뽑은 30만 원 외 추가로 10만 원을 사업가 손  씨에게 줬다는 겁니다. 강 총경은 132만 원가량을 지출했다고 주장합니다.

정 경정은 여행 11일 전 뽑아놓은 현금 60만 원을 손 씨에게 줬고 여행 첫날 29만 5천 원을 결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더니 취재가 시작되고 손 씨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정 경정이 여행 8일 전 손 씨 자녀를 위해 49만 5천 원 상당의 책을 사줬다"며 영수증 내역을 보내온 겁니다. 손 씨가 이 돈을 아직 정 경정에 주지 않았기 때문에 골프 여행 경비를 안 받는 걸로 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손 씨는 리조트에서 182만 원을 카드 결제한 내역을 보냈고 병원장 D 씨는 골프장에서 골프 비용 210만 3천 원을 결제했다고 보냈습니다. 일차적으로 병원장 D 씨가 결제한 내역이 제일 많은데 왜 강 총경과 정 경정은 가지고 있던 현금을 D 씨가 아닌 손 씨에게 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또한 물어보니 손 씨가 주도했기 때문에 손 씨에 현금을 건넸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은 골프 여행 당사자들의 증언이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에 저촉되지는 않는지 살펴봤습니다. 공직자들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법안으로 한 번에 100만 원 이상을 수수하면 직무연관성에 상관없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직무연관성이란 금품을 제공받은 사람이 금품을 제공한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업무적 관계가 있는지 따지는 건데, 만약 직무연관성이 있다고 판정되면 100만 원 이하를 받더라도 처벌되는 법안입니다.

국가수사본부에서 전국 범죄첩보를 다루는 정 경정의 직무연관성의 범위가 궁금해 검찰 특수부 출신 현직 법조인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출신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받았습니다.
 
#검찰 특수부 출신 법조인
경찰의 경우 관내에 있다면 포괄적인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거죠. 전국 첩보를 수집하는 위치라면 직무연관성 범위를 포괄적으로 봐야 합니다. 전국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사람은 늘 수사대상 될 수 있습니다. 직무관련성이 있는 거죠. 언제든지 범죄정보 수입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니까. 사업가가 잘 봐달라는 청탁이 돼버리는 거죠. 자기 정보는 수집하지 말아 달라는 식인 거죠.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출신 법조인
직무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수사본부 범죄정보 파트면 하다못해 자신이 들은걸 사업하는 사람한테 귀띔만 해줘도 도움되는 게 너무 많아서. 범죄정보 쪽은 직무연관성을 굉장히 넓게 봐야 합니다. 이 사건이 법원가도 인정될 공산이 굉장히 크고요.
Q. (기자) 이들은 사적인 관계임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서로 안 지 10년이 됐고 가족끼리 친해져 부부동반 모임을 갔다고요.
그건 상관없어요 알게 된 사회적 상규 주장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되고. 10년 20년 전 초등학교 친구 하고도. 문제는 그 사업이 무슨 사업이고 경찰하고 무슨 관련성 있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법조인들은 전국 범죄 첩보를 다루는 자리인 만큼 정 경정의 직무연관성 범위를 폭넓게 봐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문제는 금품 수수 액수인데 정 경정이나 강 총경은 부족한 금액만큼을 현금을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ATM 출금 내역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실제로 현금을 줬는지 사실상 검증이 불가능합니다. 실제 취재진이 참고한 다른 경찰 공무원의 골프 접대 사건 사례에서 국민권익위원회는 "현금으로 줬다는 증거가 없을 경우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례를 들며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유권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담당자 (SBS 취재진 통화 中)
"현금으로 준 게 그거에 대한 증거가 부족해서 안 된다고 한 판례가 있으니 앞선 다른 경찰 공무원 사례도 마찬가지로 인정하기 힘들고"

더욱이 사업가 손 씨는 30% 할인되는 바우처로 총 여행금액이 상당히 낮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권익위원회 청탁금지제도과 해석은 다릅니다. 바우처 등 금품 공여자의 회원권 등으로 할인된 비용은 할인 비용이 아닌 원래 금액을 계산해서 김영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취재진이 자문을 받은 법조인들의 설명과도 동일합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올해 1월 자 해석
"골프비용 산정과 관련하여 비회원인 공직자가 회원권을 가진 사람과 함께 골프를 치는 등의 사정으로 회원가로 할인된 비용을 지불하였다면 비회원 가와 회원가의 차액은 회원권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음"

5. "공무원이라 현찰로 합니다"

문득 사업가 손 씨에게 왜 현금으로 건넸는지 의문이 갔습니다. 계좌이체라는 확실히 돈을 건넨 증거가 남는 방식이 있는데도 경찰 간부급 공무원들이 후환이 생길지도 있는 현금 전달을 택했는지 말입니다. 이에 대해 정 경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 경정(SBS 취재진과의 통화 中)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저희가 골프장이 자기 카드로 긁거나 뭐 이런 거 잘 안 하잖아요. 현찰로 하지. 공무원이기 때문에. 그래서 50만 원인지 60만 원인지 준 거 같은데"

취재파일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공무원의 입장에서 기록을 남기지 않아야 할 사유가 있다는 건데 선뜻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골프와 숙박 등 부대 비용을 정확히 1/N로 계산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공무원 스스로 져버리고 있다는 걸 취재진에 고백하고 있는 걸까요?

골프 의혹 보도 이후 한 경찰 간부와 면담을 나누다 물었습니다. "공무원이라 현금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는 정 경정의 답변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그 간부가 말하더군요. "골프 치는 공무원은 둘로 나뉩니다, 현금 결제하는 공무원과 그렇지 않은 공무원, 또 골프 스코어보드에 가명을 쓰는 공무원과 그렇지 않은 공무원"이라고 말입니다.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SBS 보도 이후 경찰청은 감찰에 착수했습니다. 한 달간 감찰조사 끝에 강 총경과 정 경정에 대해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국가수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본 겁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최고위급 경찰 간부가 정 경정, 사업가 손 씨와 함께 골프를 쳤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SBS 보도로 시작된 경찰청 감찰 과정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튀어나왔습니다. 2019년 가수 정준영 씨의 불법 촬영물 수사를 했던 서울지방경찰청 출신 한 경찰 총경의 이름이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②편에서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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