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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아이치 '서명 조작' 핵심 관계자 체포…극우 시장은 '모르쇠'

꼬리 자르기 나선 서명 주도자들

지난해 일본 아이치현을 시끄럽게 했던 오무라 지사 소환 서명운동 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아이치현 경찰이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단체 '아이치 100만인 리콜(소환) 모임'의 사무국장인 다나카 다카히로(59)를 어제(19일) 체포했습니다. 2019년 8월에 개최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위안부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했던 특별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가 일본 우익의 테러 예고와 비방 선전으로 긴급 중지됐다 재개된 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지자체장 소환 운동의 '막장' 행태는 지난 2월 취재파일( ▶'서명 조작' 의혹…모습 드러내는 일본 우익의 추악한 민낯)을 통해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 후 3개월 동안 '100만인 리콜 모임'에서 압수한 서명 자료와 관계자들을 수사한 아이치 경찰은 대규모 서명 조작 사건의 핵심에 있는 사무국장 다나카와 사무국에 유급 아르바이트로 합류한 다나카의 부인, 차남, 회계 담당 직원까지 모두 4명을 동시에 체포했습니다. 이들의 혐의는 지자체장 소환 절차를 규정한 지방자치법 위반(서명 위조)입니다.

아사히 신문 1면

현지 경찰의 체포장에 따르면 그동안 사무국 안팎에서 제기됐던 서명 조작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혹들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용의자들은 지난해 10월 하순 경, 아르바이트 피고용인들에게 지시해 아이치현 내 유권자들의 명단을 그대로 베껴서 서명을 위조했습니다. 멀리 규슈 사가현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해서 명부를 베끼게 하고 이렇게 만든 가짜 서명 명부를 다나카 용의자 일당이 다시 아이치현으로 가져와 마치 아이치현의 유권자들이 직접 서명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제출된 서명 43만 5천 명 분 가운데 83%에 달하는 36만 2천 명 분에 대해 무효 의혹이 제기된 이후 아이치현 선거관리위원회는 사건 수사를 경찰에 의뢰했고, 어제 사무국장이 체포됨으로써 위법 의혹의 일단이 밝혀진 셈입니다. 이번 서명운동은 어차피 현직 지사 소환까지 가기에는 부족한 숫자였기 때문에 사후에 당국이 수사에 나서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서명을 대규모로 위조했다는 정황과 관계자들의 '제보'가 잇따르면서 경찰도 적당히 수사를 덮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직 지사인 본인을 끌어내리려는 세력의 '부정'을 끝까지 파헤치려 한 오무라 지사의 의향도 수사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관심이 가는 것이 오무라 지사 소환 서명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 두 명의 행보입니다. 먼저 아이치현 최대의 도시 나고야 시장 가와무라 다카시. 가와무라 시장은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열리던 당시에도 전시장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면서 전시 중단을 압박했던 대표적 우익 인물입니다. 가와무라 시장은 지난해 서명 운동의 전면에 나서서 가두 연설을 벌이며 오무라 지사를 비난하는 데 앞장섰고, 서명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난 뒤 사무국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자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빠르게 발을 빼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 25일 마침 나고야 시장 선거가 있었는데요, 이번 사건으로 시장 출마도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제기됐던 가와무라가 우여곡절 끝에 5선에 성공하며 시장직을 유지했습니다. 우익 성향과는 별개로 '시민의 세금을 소중히 사용하겠다'는 주장이 유권자들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것으로 분석됐지만, 나고야 시장 선거 판세를 관심 있게 지켜보던 많은 양심적 일본인들이 선거 결과에 크게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소환 서명운동 사무국장 일당의 체포에 대해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은 지금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시장 당선 기자회견에서도 "나는 전혀 관계없다. 이건 모두가 알고 있다"면서 서명 위조 관련성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가와무라는 지난해 서명운동 당시 다나카 사무국장에게 "(서명의 수집을 담당하는) 조직원 수를 많이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2010년 본인의 나고야 시의회 소환 운동 당시 활동했던 서명인 3만 명의 명단을 사무국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가와무라 입장에서는 (체포된) 다나카 사무국장이 이 명단을 마음대로 활용했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둘 사이에 어떤 '작전 모의'가 오갔는지는 앞으로 당국의 수사에서 좀 더 상세히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가와무라와 다나카는 1990~2000년대에 우익계열인 일본신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정계에서 중의원(가와무라)과 현의회 의원(다나카)으로 함께 활동한 전력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유명 성형외과 체인 '다카스 클리닉'을 소유한 성형외과 의사 다카스 가쓰야입니다. 다카스는 지난해 서명운동 당시 나고야 역 앞에서 가와무라 시장과 함께 가두 연설에 나서 '응원단'을 자처했다가 소환 서명이 실패로 끝나자 건강 악화를 이유로 황급히 퇴장했습니다. 아이치 경찰이 서명 조작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벌이자 다카스는 '가와무라와는 이미 절교했다'며 관련성을 부인한 상태였는데요, 이번에 다나카 사무국장 일당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비서가 서명에 지장을 찍는 행위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된 상태입니다. 다카스는 82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유명인인데요, 어제 사무국장 체포 이후 본인의 트위터에 이번 사건에 대한 짤막한 글과 기사 링크를 연속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비서의 서명 위조 관여 의혹과 관련해서는 "부하의 폭주와 불상사는 모두 상사인 저의 책임입니다. 알지 못했던 것도 큰 죄라고 자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습니다. 어떤 벌도 달게 받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라며 '선수 치기'에 나선 상황입니다.

다카스 원장 트위터 캡처

아이치현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발단이 된 일본 우익의 추악한 민낯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왠지 이번 수사 역시 '실행 담당'인 서명운동 단체 사무국장 일당 체포로 흐지부지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서명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가와무라는 다시 나고야 시장 재선에 성공하며 나고야의 '거물'임을 입증했고, '응원단' 다카스 원장도 나름의 '유명세'를 이용해 결백을 주장할 것이 뻔히 내다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아이치 트리엔날레 반대와 서명 운동 실패를 뒤로 하고 앞으로 또 어떤 활동으로 '우익 본색'을 드러낼지 계속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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