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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식재산권 풀면 코로나19 잡힐까…물 건너가는 IPR 면제 논의

[취재파일] 지식재산권 풀면 코로나19 잡힐까…물 건너가는 IPR 면제 논의

혁신의 '원동력'에서 '장애물'로…지식재산권이 뭐길래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어브러햄 링컨은 "특허는 천재라는 불길에 이익이라는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유럽을 누르고 세계 최강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 헌법에 보장된 강력한 특허권 보호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발명해 특허를 등록한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몰아주는 특허는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으로 꼽힌다.

코로나19 백신은 2019년 12월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지 1년도 채 안 된 2020년 12월 초 영국과 미국에서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던 백신 개발 기간을 이렇게 단축할 수 있었던 것은 특허로 경제적 이익이 보장됨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들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특허와 디자인, 상표권, 저작권, 영업비밀 등을 통칭하는 지식재산권(IPR: Intellectual Property Right)은 최근 세계적인 대재앙이 된 코로나19 극복을 막는 장애물로 지목되고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지식재산권을 주장하며 코로나19 백신 제조 기술과 생산을 독점함으로써 백신 공급을 제때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전세계 코로나 백신 접종자 13억 명

이들 다국적 제약사들과 미리 계약을 체결한 선진국들이 부족한 백신을 독점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의 국민들은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하고 코로나19에 그대로 노출돼 죽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선진국들은 백신 접종 확대로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있는 반면, 후진국들은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오히려 봉쇄를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앞으로 백신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9일 현재 전 세계 국민 1백 명 가운데 17명 정도인 13억 명이 백신 접종을 받았지만, 선진국과 후진국의 백신 접종 규모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북미의 경우 백신 접종 비율은 51%에 달하는 반면 아시아는 14%, 아프리카는 1.5%에 불과하다.

백신 접종 확대와 치료를 위해 작년 10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진단키트, 벤틸레이터, 보호장비 등과 관련한 지식재산권 면책(Waiver)을 제안했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무역기구(WTO)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01년 11월 14일 WTO 장관회의에서 채택된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대한 도하 선언'은 공중보건 위기가 발생할 경우 각 회원국이 자체적으로 지식재산권에 대한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등 일부 국가만이 보유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제조기술에 대해 다른 나라가 강제실시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백신제조기술에 대한 특허만 있다고 백신 제조를 할 수는 없는 만큼 백신 제조와 관련한 모든 지식재산권 보호 조항 적용을 당분간 유예하고 전 세계에 있는 생산 설비를 활용해 백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도록 협력하자는 제안이다.

대륙별 1백 명 당 코로나19 백신 접종자 수

코로나19 관련 지식재산권에 대한 면책조항 적용 논의는 그동안 반대해왔던 미국이 찬성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본격화됐다. 지난 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관련 지식재산권의 면책조항 적용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힌데 이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캐서린 타이 대표는 "코로나19는 세계적인 공중보건위기로 특별한 조치를 필요로 한다. 미국 정부는 지식재산을 강력히 보호해야 한다고 믿지만,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면책 조항 적용을 지지한다. 이를 위한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논의에 적극 참여할 것이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코로나19 백신 제조에 관한 지식재산권 면제는 1) 백신을 구하지 못한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생명을 구한다는 인도적 측면 2)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선진국뿐 아니라 후진국에서도 코로나19의 종식이 필요하다는 공중보건적 측면 3) 중국과 러시아가 자사 백신을 외교에 이용하고 있다는 정치적 측면에서 서방 진영에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화이자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정부의 대규모 자금 지원과 구매 약속을 통해 개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다른 연구기관의 그동안 연구 성과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백신은 한 회사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재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코로나19 백신 제조 관련 지식재산을 공유해 생산량을 늘릴 경우 제조 단가를 낮출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식재산권 면제 거부는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비경제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지식재산권 보호 조항에 대한 면제 조치를 하더라도 공짜 지원이 아니라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하는만큼 백신 제조사들에도 손실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항생제인 페니실린에 대해서도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 조치가 내려진 선례도 있다는 것이다.
 

"지식재산권 행사 '유예'가 아니라 '징발'"…확산하는 백신 주도권 다툼

하지만 글로벌 제약업계는 물론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 국가들도 코로나19 백신 제조를 위한 지식재산권 보호 면제(waiver)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 혁신을 위해 지식재산권은 반드시 보호돼야 하며, 코로나19 백신 부족의 원인은 지식재산권의 독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시설과 원료물질의 부족에 있다는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8일 비공식 유럽연합정상회의에서 "지식재산권 면제로는 단 하나의 백신도 추가로 생산할 수 없다. 현재 필요한 것은 생산한 백신의 공유와 수출, 생산 설비 확충을 위한 투자이다."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과 영국이 백신과 백신 원료의 이동을 막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한 백신은 모두 미국 시장에만 머물고 있다."고 말해, 백신 공급 확대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유럽 본토와 앵글로색슨족의 대립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화이자 백신 접종 시작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는 지난 7일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 올린 사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우리가 코로나19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을 개발했을 때 세상에는 아무런 생산시설도 없었다. 우리는 172년의 전통과 막대한 투자, 과학자, 기술자들의 협력으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유례없이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19개 국가에서 생산되는 280개 원료 물질의 부족이다. 이들 가운데 많은 물질이 대규모 투자와 기술 지원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코로나19 백신이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20억 달러를 투입했고, 올해도 코로나 백신 개발에 6억 달러를 투입한다. 지식재산권이 면제돼도 화이자는 투자를 계속하겠지만, 외부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의존하는 많은 작은 바이오 벤처기업들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지식재산권이 면제돼 많은 기업들이 백신 개발에 뛰어들어 경쟁적으로 백신 원료물질 확보에 나선다면 원료물질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고, 생산되는 백신의 안전성도 보장할 수 없게 되는 등 지식재산권 면제가 백신 생산을 늘리기는커녕 더 많은 문제만 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에는 특허와 디자인, 상표, 저작권처럼 문서로 작성해 공개하는 전통적인 지식재산권과 달리 공개하지 않고 비밀로 유지하는 영업비밀(trade secret)이 있다. 경제적 가치를 가진 비밀로써 노하우나 기술 등을 포함하는 영업비밀은 공개되는 순간 누구나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고 경제적 가치는 사라진다. 문서로 작성해 공개하고, 20년 동안 독점적 권리가 보장되는 특허(patent)와 다른 부분이다.

글로벌 지식재산전문매체 iam미디어는 코로나 백신 생산 확대를 위해 논의되고 있는 지식재산권(Trade 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행사의 유예는 대부분 특허(patent)가 아닌 노하우(know)와 데이터(data)같은 영업비밀의 공개 문제라면서, 이런 의미에서 지식재산권 행사의 유예는 '유예(suspension)가 아니라 몰수 또는 강탈(expropriation)'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가 생산하는 백신과 달리 미국의 화이자와 모더나가 생산하는 코로나19 백신은 mRNA 방식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전공학을 이용해 생산한 백신이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조작해 만든 인공 백신으로 효율이 높고 부작용이 덜한 데다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mRNA 백신 제조 기술은 앞으로 신약개발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독일의 BioNTech 창업자 Ozlem Tureci and Ugur Sahin 부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코로나19 백신 제조 관련 지식재산권 면제에 정면 반대하는 독일의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앤텍은 mRNA 백신 제조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언적으로 지식재산권 면제를 논의해 보자는 미국 정부와 달리 미국계 제약사 화이자와 모더나는 지식재산권 면제는 절대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약회사들에 이어 유럽연합이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WHO와 WTO, UN이 지지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들이 요구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제조 지식재산권 행사 면제는 합의가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WTO 164개 국가 전체가 동의해야 하는 TRIPS 적용 면제는 오는 11월30일부터 열리는 WTO 장관회의에서나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합의가 돼도 기술 지원과 생산 설비를 확충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는 만큼 내년 이후에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 올 연말 모든 국민이 접종 가능

올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매출은 150억 달러를 넘고, 매출 대비 이익률은 20% 후반 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앤텍의 올해 코로나19 백신 매출은 124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6개 코로나19 백신 제조업체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120억 달러를 지원받았고, 옥스포드대학과 함께 백신을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도 소요 자본의 97%를 공모를 통해 조달했다고 보도했다.

제약회사들이 정부나 공적 지원으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기술을 독점하고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것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각국 정부가 제약회사들의 백신 개발을 지원하면서 개발 성공 시 관련 지식재산을 공개하도록 계약서로 명시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 논란 속에서도 독일의 생명공학회사 바이오앤텍은 중국 제약사 푸싱(復星, FOSUN) 의약그룹과 50대 50으로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화이자나 모더나가 생산하는 백신과 같은 방식의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을 연간 10억 회 분량 생산하기로 했다. 중국의 푸싱제약은 현금과 생산설비로 1억 달러를 출자하고, 바이오앤텍은 기술과 노우하우로 1억 달러를 출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노팜과 시노백, 칸시노 등이 제조한 코로나19 백신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외국 백신을 들여와 생산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앤텍은 싱가포르에도 2년 뒤 가동 목표로 mRNA 백신 공장을 짓고 있다고 밝혔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는 지난 7일 사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여러 회사들과 코로나19 백신 합작생산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일 현재 전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 (사진=뉴욕타임스)

"지나친 지재권 욕심은 역풍…공익과 사익의 균형 필요"

코로나19는 발생 후 1년 5개월 동안 전 세계에서 1억 6천만 명 가까이 감염돼 3백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금도 인도 등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하루 1만 명 가까이 숨지고 있는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각국은 백신 공급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각국이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코로나19 백신을 먼저 개발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에서 농부는 하루 동안 돌아다닌 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악마의 말에 지나치게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너무 멀리 갔다가 돌아와 죽고 만다. 미리 골목을 선점해 때가 오면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지식재산권도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산업발전과 혁신을 해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기술혁신의 원동력으로서 발명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희석하지 않으면서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이라는 공익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권의 행사에 있어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사이의 균형과 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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