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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세월호 의인의 자해…외면받는 트라우마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초였다. 병원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기소된 형사재판에서 변론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며 물어보는 응급실 간호사에게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할 거면 나가!"라고 말한 의사와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응급의료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응급실 진상 환자' 이야기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닌 상황에서 변론을 맡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비난받고 처벌받아야 하는 것과 별개로 그를 맞이한 병원의 대응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변론을 맡았다.

그는 5년 전 사고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 환자였고, 그날도 자해를 해 가까운 병원에서 외상치료를 받은 뒤 원래 정신과 치료를 받던 해당 병원으로 옮겨졌다. 최초 치료 병원에서 후송되는 병원에 연락을 했다지만 이 환자는 처음 온 환자로 취급됐다. 자해를 하고 응급 후송 온 트라우마 환자에게 "왜 왔어요?"라고 물어보면, 환자가 "제가 트라우마 환자인데 지금 자해를 해서 왔어요."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렇게 답할 수 있다면 이미 트라우마 환자가 아니지 않을까.

물론 환자와 의료진 충돌의 책임이 의료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호자가 원무과 접수를 진행하고 있는 사이 환자는 급하게 응급실로 실려 들어갔고, 환자 이송 사실도 잘 전달되지 않던 상황이었다. 결국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에야 헐레벌떡 응급실로 내려 온 정신과 주치의가 환자와 가족들에게 연신 사과하기도 했지만, 응급의료법위반 피의자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이 환자가 바로 세월호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 씨다. 그는 국가 구조기능이 마비됐던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애썼고, 실제 많은 학생들을 구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학생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오늘도 약을 먹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의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과 행복은 고사하고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의인 김동수 씨 (사진=연합뉴스)

김 씨를 통해 제주에 살고 계신 세월호 생존자분들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에 잠을 잘 수 없고 세월호 사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하루하루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은 김 씨만이 아니었다. 일보다는 쉼과 치료가 필요해 보여 "왜 그렇게 하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들은 답했다.

"생계는 누가 책임져 주나요?"

솔직히, 세월호 생존자들은 국가로부터 큰 돈을 지급받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 억대 보험금 이야기가 나왔고 국민성금도 많이 모였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2015년 당시 배상절차를 확인하고 나는 그들이 국가에 느끼는 아쉬움에 공감할 수 있었다.

4·16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일명 세월호피해지원법)은 2015년 1월 28일 제정되어 그해 3월 29일 시행됐다. 문제는, 이 법의 내용이 배상금 등 지급신청을 법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는 규정(제10조)이었다. 피해 생존자들은 배상금 지급신청을 위해 정신과 전문의에게 후유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아야 했는데, 당시 정신과 전문의들 모두 "재난 후 발생한 트라우마는 최소 2년이 경과된 후에 평가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며 진단서 발급을 거부했다. 생존자들이 이런 사정을 정부에 알렸지만 돌아온 답은 '법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법에서 정한 기한 내에 신청을 하지 않으면 배상금 등의 지급은 없다고 못 박았다.

나중에 정부가 일부 개입하면서, 제주대학교병원, 고대안산병원 등에서 후유장애진단서가 발급되었다. 하지만 진단서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내용이 포함됐다.
 

- 치료 종결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상당 수준의 정신과적 증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정확한 치료경과 및 예후를 판단하기 어려움.

- 추후 재평가를 통하여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임.

- 두부, 뇌, 척수항의 장해평가는 통상적으로 피평가자의 증상이 더 이상 호전되지 않고 고정되었다고 판단하는 시점, 즉 외상 후 최소 2년 이상이 경과한 후에 판정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 시점은 외상 후 1년 2개월이 지난 시점으로 적절하지 못함을 고려해야 할 것임.


이 불완전한 후유장애진단서가 배상의 근거가 됐다. 결국, 치료예상기간에 해당되는 3~5년 동안 발생할 소득의 30~40% 정도만 배상하는 것으로 결정됐고, 세월호 생존자들은 위 돈을 받기 위해 아래의 문구가 새겨진 동의서에 인감도장을 날인해야 했다.

인잇 최정규
인잇 최정규

세월호 생존자들은 불완전한 후유장애진단서를 근거로 결정된 배상금결정에 동의할지 깊이 고민했다. 하지만 결정에 동의하지 않기에는 현실이 너무 가혹했다. 화물차를 운전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던 피해자들은 사고 이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더욱 힘들어졌다. 국가의 배상금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애판정이 불완전한 진단서를 근거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으니 잠자코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의견대로 실제 재판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목소리를 내보자고 말했다. 세월호피해지원법 관련 조항은 불완전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배상 결정으로 재판 상 화해 효력을 부여하는 것인 만큼 헌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헌법소원 역시 제기할 계획이다.

우선, 무엇보다 국가배상책임 요건이 충족됐다. 당시 현장지휘관이었던 123정장이 승객 퇴선유도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고, '생존자' 142명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상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무엇보다 누가 봐도 불완전한 진단서를 근거로 계산한 배상금을 주고 더 이상 질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보험회사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주체인 국가이지 않은가.

"아프면 쉬기"라는 방역수칙이 죽을 수 있더라도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공허하게 들리듯, 세월호 피해 생존자들에게 '억울하면 배상금 받지 말고 소송하라'는 2015년 세월호 배상금 지급 수칙 역시 공허할 뿐이다. 그 지급 수칙은 정당한 것인가? 이 지급 수칙이 상식에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왜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세월호 7주기 제주 세월호 생존자 15명,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함께 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질문에 대해 또 이런 반응이 있을 것이다.

"또 세월호냐? 지겹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지겨워해야 할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세월호 참사 피해 생존자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치료가 다 끝나지도 않은 피해 당사자들에게 '불량' 배상 결정문을 들이밀며 '억울하면 배상금 받지 말고 소송하라'라는 지급 수칙을 고수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급 수칙의 오류를 알면서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당사자들은 국가배상소송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도록 내몰렸다. 나는 그런 국가의 태도가 정말 지겹다. 국가배상소송과 헌법소원을 통해서라도 2015년부터 이어져 온 이 지겨움이 해소되고, 생존자들의 삶이 나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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