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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2' 사상 초유 더블 하이재킹 '요도호 납치사건'…사라진 '진짜 영웅' 채희석

'꼬꼬무2' 사상 초유 더블 하이재킹 '요도호 납치사건'…사라진 '진짜 영웅' 채희석
요도호 납치사건의 진짜 영웅이 공개됐다.

25일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에서는 '우리는 '내일의 조'-사상초유 더블 하이재킹'이라는 부제로 51년 전의 한 사건을 조명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박재범, 박성광, 장현성이 이야기 친구로 등장해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꾼들은 "비행 규정은 피로 쓰였다"라며 모든 비행 규정이 비극적 사고와 죽음 때문에 생겨난 규정들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51년 전 1970년 3월 31일 동북아시아를 떠들썩하게 한 그날로 돌아갔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달리 김포공항이 비상사태를 맞아 혼란에 빠졌다. 공항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랩콘의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대통령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랩콘은 총으로 무장한 미군 헌병들로 가득했고, 혼란의 상황에 한 인물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당시 28세의 미 연방 항공국 관제사 면허를 취득한 우수 재원이었던 채희석이었다. 그리고 미군들은 그에게 랩콘의 핵심인 관제사의 자리에 그를 앉혔다. 대한민국의 영공을 관리해야 하는 그 자리에 당시 한국인을 앉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채희석이 그 자리에 앉고 얼마 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것은 당시의 절대 권력이었던 중앙정보부 부장 김계원이었다. 그는 채희석에게 "잘 듣게 조금 있으면 일본에서 비행기 한 대가 넘어올 것이다. 그 비행기를 무조건 김포공항에 착륙시켜라. 이유 불문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는 각하의 지시이다"라고 당부했다. 그가 말하는 각하는 바로 박정희.

어떤 정보도 없고 예정에도 없던 일본 여객기의 등장은 채희석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이때 중정부장은 그에게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이는 상상도 못 할 충격적인 말이었다.

잠시 후 중정부장의 말대로 138명의 승무원과 승객이 탄 일본의 여객기가 대한민국의 영공에 진입했다. 이는 명백한 불법 영공 침입이었고 이에 공군에서는 전투기 2대를 즉시 출격시켜 여객기 뒤를 따르게 했다.

요도호라는 이름의 일반 여객기는 일본 하네다에서 출발해 후쿠오카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비행기에 탄 뜻밖의 인물들 때문에 대한민국 영공으로 들어왔던 것.

사건의 시작은 보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1970년 3월 15일 일본의 도쿄에서는 적군파의 리더 시오미 타카야가 검거됐다. 적군파란 공산주의 신봉 부대로 반정부 폭력 시위를 펼치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이로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무장 단체였다. 이들의 목표는 '무장봉기를 통해 전 세계를 공산화한다', 마치 IS 같은 테러 조직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테러를 일으켰다.

그런 적군파의 초대 의장인 시오미 타카야게 검거되었고 그의 소지품에서는 수상한 메모 하나가 발견되었다. HJ라는 이니셜이 적힌 메모의 비밀은 곧 밝혀졌다.

보름이 지나고 다시 3월 31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출발해 후쿠오카로 향하던 여객기인 요도호에는 재일교포 김원동 씨도 타고 있었다. 당시 유일한 한국인 승객이었던 그는 피곤해서 좌석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고 얼마 후 소라스러워진 상황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는 일본도를 들고 승객들을 위협하는 몇몇의 남자들이 포착되었다. 영화를 찍는 건가 생각될 정도로 현실과 거리가 먼 광경은 실제였고, 이는 바로 비행기 납치였다.

칼과 총으로 무장한 9명의 납치범들은 승객들의 손을 묶고 "우리는 적군파, 이 비행기는 우리가 접수한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여기서 시오미의 메모 속 HJ의 의미가 밝혀졌다. HJ란 바로 운항 중인 비행기를 불법으로 납치하는 행위를 일컫는 하이재킹(Hijacking)이었던 것.

27살의 리더부터 16살의 고등학생까지 젊은 청년들로 이뤄진 납치범들은 하이재킹을 행하기 전 성명서를 작성했다. 그들은 "우리들은 내일 하네다를 출발한다. 지금까지 어떤 투쟁에서도 이러한 자신감과 용기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내일의 조다"라고 말했다. '내일의 조'란 포기를 모르는 복서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의 인기 만화였다.

그리고 이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북한이었다. 이때 방송에서는 당시 실제 상황이 녹음된 파일을 공개했다. 기장과 납치범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 파일에는 당시 극도로 긴장했던 기장의 떨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적군파 납치범들은 "우리는 공산주의자 동맹 적군파다. 우리는 북조선으로 가서 군사훈련을 할 것이다. 그리고 올가을 다시 일본에 상륙해 무장봉기를 관철할 것이다"라며 북한을 자신들의 전초 기지로 만들 것이라고 납치의 목적을 밝혔다. 그리고 당시 수교가 되어 있지 않던 북한으로 향할 방법은 비행기를 납치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

이에 적군파 일행은 기장에게 당장 평양으로 향하라며 수작을 부리면 자폭할 것이라 협박했다. 보안 검색이 없던 시절 이들은 칼과 총, 사제 폭탄까지 들고 비행기에 올랐던 것. 그러나 요도호의 기장은 만만한 이가 아니었다.

1만 시간 이상 비행한 베테랑이었던 기장은 "이 비행기는 국내선이라 평양까지 못 간다. 연료를 더 넣어야 한다. 안 그러면 추락한다"라고 납치범들을 회유해 후쿠오카로 향했다. 그는 후쿠오카에 착륙하면 일본 정부가 반드시 손을 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1시간 40분 만에 후쿠오카에 착륙한 비행기.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비행기 납치 대응 매뉴얼도 전무했던 상황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투기로 요도호의 앞을 막아 활주로를 막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활주로를 비우지 않으면 한 명씩 처단할 것이라는 납치범들의 협박에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 정부는 평양으로 가겠다는 납치범들의 행동을 막기 위해 항공 지도를 가지고 오라는 요구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한반도 지도를 건넸다. 이것으로 평양행을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그러나 납치범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곧 다시 이륙해 평양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륙 전 어린이와 노인, 여자 등 23명의 승객은 풀어주었던 것. 그러나 108명이 남은 요도호는 납치범들의 위협을 받으며 다시 평양으로 향했다.

엉터리 지도로 평양으로 가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한 행위였다. 특히 평양 관제소와 교신을 통해 그들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평양 착륙이 가능한 상황에 김포공항 랩콘의 레이더 앞에 앉은 채희석은 레이더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생사가 오가는 찰나, 중정부장이 지시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요도호와 평양의 교신을 가로채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앞서 중정부장이 채희석에게 덧붙인 한마디는 바로 "만약 필요하다면 말이야. 서울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해도 좋다"라는 말이었던 것.

당시 이는 헌법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이에 채희석은 자신이 엄청난 임무를 떠안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는 전 세계의 공통 비상 주파수인 121.5MC에 주목했다. 요도호는 평양 고유 주파수를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이 주파수를 거쳐야만 하는 것. 이에 채희석은 요도호를 속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전 세계 공동 채널로 평양에서도 요도호의 무전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인지라 송신 스위치를 얼마나 빨리 누를 수 있냐에 모든 것이 걸려있었다. 0.00001초라도 늦어서 무전을 빼앗기면 안 되는 것. 채희석은 "이 비행기를 놓치면 난 죽는다"라는 생각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드디어 요도호로부터 온 무전. 채희석은 빠르게 스위치를 눌렀고 "여기는 서울 관제소, 말하라"라고 했다. 모든 비행장과 모든 비행기는 다 들을 수 있는 공동 주파수에서 서울이 아닌 평양이라 밝히면 큰일이 날 것을 우려해 채희석은 기지를 발휘해 서울 관제소라고 먼저 밝혔던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요도호는 북한 평양 공항에 착륙하기 위한 정보를 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채희석은 131.4MC로 주파수를 변경하라 일렀다. 이는 바로 김포공항의 고유 주파수였던 것.

큰 의심 없이 요도호는 그가 알려준 주파수로 다시 무전을 걸어왔다. 그런데 이때 채희석은 고민에 빠졌다. 앞서 서울 관제소라고 밝힌 목소리와 지금 평양 관제소라고 말할 목소리가 똑같다는 것을 알아채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희석은 더 당당하게 "여기는 평양, 평양 관제소다"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요도호에서는 평양 착륙을 원한다며 안내를 부탁했다. 그런데 이때 이미 요도호는 휴전선을 넘어버린 상황이었다. 김포공항으로 오려면 다시 휴전선을 건너와야 하는데 북한에서 이를 알아채면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채희석은 또 한 번 더 묘안을 생각했고 그는 평양 상공을 지나는 방법을 택했다. 계속 서쪽으로 가라고 지시한 채희석은 지형지물이 없는 망망대해로 요도호를 유인했고, 서해 바다 위에서 조금씩 남한으로 방향을 돌리도록 했다. 그렇게 요도호는 무사히 대한민국 영공으로 돌아왔다.

평양에 근접했다고 생각한 납치범들은 노래까지 부르며 축제를 즐겼다. 김포공항의 랩콘도 축제 분위기였다. 미군들은 채희석에게 "당신이야 말로 하이재커. 오늘은 당신의 날이다"라며 그를 축하했다. 이는 바로 사상 초유의 더블 하이재킹에 성공한 것. 심지어 비행기에도 타지 않고 이뤄낸 것이었다.

이후 국방부 문서를 통해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당시 평양 관제소에서는 요도호를 향해 그곳은 평양이 아닌 김포이니 돌아오라는 송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교신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자 대공포 500발을 발사하며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보냈으나 이는 요도호에 닿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됐다. 김포공항에 착륙한 납치범들을 속이기 위해 김포공항 위장 작전이 행해졌다.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 취소, 미군 차량 전면 철수, 뿐만 아니라 공수부대는 인민군으로 위장했고 동네 주민들을 섭외해 북한 여인으로 위장까지 시켰다.

특히 김포공항의 태극기는 내려가고 그 자리에 인공기를 올렸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채희석은 김포공항에 근접한 요도호에 "여기는 평양 관제소. 착륙을 허가한다"라는 무전을 보냈고 요도호는 무사히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납치범들은 평양 도착에 기뻐한 것도 잠시 창문 밖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 흑인들을 발견하고 의아해했다.

단 30분 동안 위장을 해야 했기에 미군들이 완벽 철수가 안 되었고 이를 납치범들이 목격한 것. 이에 채희석은 "여기는 평양이 맞다. 그 흑인들은 러시아인들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해외 방문 경험이 전무했던 적군단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납득했다.

그러나 이들의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적군단은 북한과 관련된 질문을 퍼붓고 김일성의 사진과 북한 노동 신문 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영어로 우리 군인에게 여기가 서울이냐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군인은 명쾌하게 "YES"라고 답하며 공항 위장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평양이 아닌 김포라는 것을 알게 된 납치범들은 흥분했고 대한민국과 적군파의 대치 상황이 연출됐다. 국무총리부터 장관 박정희 등이 직접 방문해 대책 회의를 했고 이들은 절대 요도호를 북한에 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3달 전, 우리 여객기가 북한 간첩에 의해 납치되어 납북되는 일이 있었고 이에 흥분한 시위대들이 김포공항까지 밀고 들어온 것. 그렇기에 정부는 평양행을 쉽게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국방부 장관은 승객들을 풀어준다면 이륙을 허가해주겠다고 했고, 납치범들은 "비겁하게 우릴 속인 한국 정부를 속일 순 없다. 승객들은 풀어줄 수 없다"라고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납치범들도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대형 여객기가 이륙하려면 외부에서 시동을 걸어야 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허락이 없다면 이륙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적군파와 대한민국은 며칠을 팽팽한 평행선을 걸었다. 그리고 3일째 아침 일본에서 운수성 차관 야마무라 신지로가 비행기를 타고 등장했다. 그는 "내가 대신 인질로 간다면 승객들을 풀어줄 수 있겠나"라고 제안했고, 이에 납치범들은 승객들을 풀어주고 운수성 차관을 인질로 붙잡았다.

조종사 3명을 제외한 모두가 풀려났고, 요도호는 대치 75시간 만에 평양에 착륙했다. 그리고 북한은 적군파의 망명을 받아들였고, 다음날 일본 운수성 차관과 승무원들은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운수성 차관은 희생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며 출마하는 선거마다 당선되며 장관 자리까지 올랐다. 또한 요도호 기장도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진짜 이 사건의 일등 공신이었던 한국의 관제사 채희석의 상황은 사뭇 달랐다. 채희석은 "3일 후엔가 공군 본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요도호 사건 이야기를 일체 하지 마라. 만약 말하면 쏴 죽이겠다 라고 했다"라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그는 "그러니까 어떡하겠냐. 아내한테도 말을 못 했다. 가족한테도 내가 63세 되던 때에 처음 얘길 했다"라며 "그때 중정부면 다 끝났다. 분명히 다 죽이려고 했을 거다. 언제 죽을지,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거니까 말할 수 없는 거다"라며 답답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에 이야기꾼과 친구들은 "일본에서는 다 영웅이 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게 이해할 수 없다. 같은 사건을 통해 벌어진 일이고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관제사인데 어떻게 이런 처우를 할 수 있냐"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야기꾼들은 당시 국방부 보고 문서를 공개했다. 국방부 문서에는 "요도호의 김포 착륙은 모든 경우로 보아 노련한 조종사의 계획적이고 자의에 의한 착륙이었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외교부 문서에는 "피랍된 요도호가 김포에 착륙한 것은 계획된 것은 아니었으면 돌발적인 사태였다"라며 한국 정부는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에 사건의 일등 공신이었던 채희석의 존재를 철저하게 지웠던 것. 채희석은 이 사건 후 모든 관제 업무에서 배제되었고 결국 1년 뒤 스스로 군 생활을 정리한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에 채희석은 "아무 일도 안 줬다. 그러니까 그만둬야지 어떡해"라며 한 동안 힘들어 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밝혔다. 똑같은 일로 누구는 영웅이 되고 누구는 숨어 살고 평생의 직업을 잃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

이날 방송에서는 평양으로 간 적군파 중 생존자들의 근황도 전했다. 9명 중 현재 살아있는 4명은 북한의 한 일본인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그리고 이들은 2014년부터 소소한 일상을 SNS로 공개하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특히 적군파로서의 행적을 업적인양 SNS 프로필에 써두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제작진은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 이들에게 "지금도 당신들 마음속에 내일의 조는 살아있냐"라는 질문을 건넸다.

이에 적군파는 "처음에는 칠전팔기라는 의미였지만, 만화 마지막 장면에서 하얗게 불타 재가 되어버린 조를 보고 인민의 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의 조는 지금도 마음속에 살아있다"라는 답을 보내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헛된 신념이 여전한 이들. 이들은 현재 일본 귀국을 희망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친구 장현성은 "이야기는 자체는 너무 흥미진진하다"라며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일 가슴에 남는 것은 영웅들을 대하는 일본과 한국의 대처가 너무 다른 게 마음이 안 좋다.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왜 군복을 벗기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박성관은 "분명 우리가 영웅으로 생각을 해야 할 사람이었는데 숨어 지내야만 했던 것이 안타깝다. 지금에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장도연은 "눈에 보이는 영웅도 있지만 분명 우리 주변에는 숨은 영웅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채희석은 "지금에 와서는 자랑스럽다. 내가 비행기를 착륙시켰고 130명을 살렸다"라며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됐다"라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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