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임종도 못 보고…죄인이 따로 없네요"

<앵커>

환자 본인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존엄사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삶의 마지막 시간을 잘 보내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방역 문제로 가족의 임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민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평생 못한 얘기 다시 한 번 해보세요.) 사랑하고 고마웠어요.]

이계황씨 코로나속 존엄사

말기 암 환자 이계황 씨는 죽음을 앞두고 가슴 속에 품고만 있던 얘기를 아내에게 꺼냈습니다.

이 영상을 촬영하고 일주일 뒤 이 씨는 편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이상아/고 이계황 씨 딸 : 자식들 잘 키워주신 거, 그게 너무 감사하죠.]

임종 한 달 전 이 씨는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연명의료 대신 남은 시간 동안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상아/고 이계황 씨 딸 : 눈물 나고 슬플 때도 많지만 그래도 '잘 모셨구나. 아버지가 좋은 곳에 가셨구나'라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종도 제대로 못 지킨 가족이 많습니다.

[김채리/고 김용식 씨 딸 : 아빠 잘 지내지? 못 가서 미안해. 아빠 보러 가고 싶었는데….]

김 씨는 요양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지만, 아버지는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임종 며칠 전 영상통화가 부녀 간의 마지막 대화가 돼버렸습니다.

[(아빠 할 말이 있어. 빨리 와, 지금 네가 와.) 아빠, 갈게. 근데 지금 코로나라서 갈 수가 없어. 내가 어떻게든지 얘기해서 가볼게.]

[아직도 머릿속에 매일같이 그 말은 잊히지 않아요.]

코로나 사태로 면회를 제대로 못 해왔고, 마지막 작별인사마저 나누지 못한 것입니다.

[김채리/고 김용식 씨 딸 : 임종도 못 보고 진짜 고려장 시킨 것밖에 안 돼요. 이건 진짜 죄인이 따로 없네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 김은주 씨도 아버지의 임종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부녀 모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고 존엄한 죽음을 준비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병원에 임종실이 따로 없다 보니 6인실에 있다가 간호사 처치실로 옮겨진 상태에서 아버지를 보내야 했습니다.

[김은주/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 : 아버지를 병원 복도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 그건 제가 벗어버릴 수 없는 죄책감의 짐이죠.]

국내 사망자의 임종 장소는 병원이 75%를 넘습니다.

이계황씨 코로나속 존엄사

하지만 병원들이 코로나 방역으로 면회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다 보니 임종 때 가족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허대석/전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 마지막에 두서너 달이라는 것은 굉장히 귀한 시간인데, 그걸 놓쳐버려요.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유족들이 후회하는 거죠.]

존엄사법 시행 후 3년 동안 단순히 수명만 늘리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약속한 사람이 82만 명 넘습니다.

존엄사는 연명의료 중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적 존엄을 지키면서 가족과 의미 있는 작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코로나 시대 임종 현실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VJ : 안민신)

▶ 13일 오전 8시 '뉴스토리' <코로나 시대와 존엄사>에서 더욱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