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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LGES vs. SKI, 별들의 배터리 전쟁…최종 승자는?

[취재파일] LGES vs. SKI, 별들의 배터리 전쟁…최종 승자는?

미국무역위원회(ITC), "SKI가 LGES의 영업비밀 침해"

차세대 주력 산업 가운데 하나인 전기차 배터리 제조 방법에 관한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놓고 엘지에너지솔루션(LGES)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SKI)이 벼랑 끝 대치를 하고 있다.

미국무역위원회(ITC)는 2021년 2월 10일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22가지를 침해했다고 최종 결정하고,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대통령의 검토를 요청했다. 지난 3월 4일에는 ITC 위원 6명의 공표용 결정문도 게재했다.

ITC는 결정문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를 위한 영업비밀을 침해하고도 침해 사실을 숨기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고위층의 지시로 고의(willful) 그리고 악의적으로(in bad faith) 광범위하게 증거를 삭제해 ITC의 불공정 무역 행위 조사를 방해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2월 14일 ITC의 행정판사(ALJ: Administrative Law Judge)가 SK이노베이션에 내린 조기 패소 예비 결정(ID: Initial Determination)을 최종 확인한 것이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요청에 따라 지난 2020년 4월 17일 행정판사의 예비 결정에 대한 심사(review)에 착수해 10개월 동안 관련 사항을 검토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자신들이 삭제한 이메일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과 관련이 없고, LG에너지솔루션이 침해를 주장하는 영업비밀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ITC는 최종 결정문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22가지 영업비밀을 부당하게 이용해 제조한 자동차 배터리에 대해 10년 동안의 미국 내 수입 배제 명령(LEO: Limited Exclusion Order)과 함께 관련 기술을 이용한 미국내 제조와 유통금지 명령(CDO: Cease and Desist Order)을 내렸다.

'증거인멸과 디스커버리 무시로 SK에 대한 수입 배제를 지지한다'는 ITC의 결정문 2P


다만 미국 전기차 산업과 소비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이 이미 공급 계약을 체결해 생산을 추진 중인 미국 포드자동차의 전기차 F-150용 배터리는 4년, 폭스바겐 아메리카가 북미 시장을 대상으로 생산을 추진 중인 MEB 플랫폼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서는 2년 동안의 수입 배제 조치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장착하고 미국에 수입돼 유통된 기아차의 소울과 니로 전기차 유지 보수용 배터리의 수입도 허용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의 자동차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는데도 ITC가 실체적인 검증이 없이 절차적인 흠결을 근거로 결정했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해달라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요청했다.

미국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ITC의 결정을 검토해 권고하면, 미국 대통령은 ITC 결정 후 60일 이내에 거부권 행사 여부를 발표한다. 오는 4월 10일까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없으면 ITC의 결정은 그대로 확정된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연방항소법원(CAFC)에 항소할 수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당황스럽다"며 타협을 촉구했던 국내 대기업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다툼, 이들은 왜 미국 시장에서 국제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는지, 미국 대통령은 ITC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 그리고 바람직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LG 관련 문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하는 SK의 사내 이메일

"명백히 악의적인 위법 행위"…ITC의 단정적 판결, 왜?

ITC는 3월4일 공개한 최종 결정문에서 디스커버리(증거개시)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노골적이고(flagrant) 의도적이며(willful) 기망의 의사가 있고(in bad faith) 법적 책임을 져야할(culpable) 심각한 (extraordinary) 증거 인멸 행위가 드러났다며, 금지명령(injunction)과 신속패소결정(default judgement)은 정당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ITC는 동원 가능한 온갖 수식어를 써가며 SK이노베이션에 패소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제조 기술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201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은 10월 23일 SK에 LG에너지솔루션 연료전지 핵심인력의 채용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고, 전직 금지 규정을 어기고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5명을 상대로 대전지방법원에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9년 1월 LG에너지솔루션 직원 5명에 대해 2년 동안 전직을 금지한다고 최종 판결했다.

2019년 4월 8일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 측에 영업비밀 침해 행위를 중단하라고 경고장을 보낸데 이어, 4월 29일 미국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의 직원들과 공모해 전기차 배터리 제조 관련 영업비밀을 광범위하게 빼내 유용하고 있으니 이를 못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2019년 6월 4일 미국무역위원회(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요청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했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서로 상대방에게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확보하는 증거개시 절차(discovery)에 돌입했다.

ITC 제소 후 경쟁사 관련 문서를 신속히 지우라고 지시하는 SK의 사내 이메일

2019년 9월 23일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증거 수집에 필요한 문서와 이메일을 삭제하고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삭제 자료에 대한 복구와 삭제 내역을 확보할 수 있도록 포렌식(forensic)을 하게 해달라고 ITC에 요청했다. 10월 3일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ITC의 행정판사(ALJ)는 LG의 포렌식 요청을 받아들였다.

2019년 11월 5일 LG에너지솔루션은 ALJ의 포렌식 명령(Order no. 13)에 SK이노베이션 측이 성실하게 응하지 않고 있다며, 행정판사의 명령 13 위반으로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판결(default judgement)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이 삭제 파일 목록을 적은 75개의 엑셀 시트를 만들고도, 1개의 엑셀 시트에 들어 있는 자료만 포렌식에 응했다는 것이다. 2020년 2월 14일 ITC의 행정판사는 SK이노베이션에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침해 금지를 명령하는 예비 판정(ID)과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ement)을 내렸다.

2020년 3월 3일 SK이노베이션은 ITC에 예비판정(ID)에 대한 심리를 요구했고, 4월 17일 ITC는 예비판정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ITC는 SK이노베이션과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한 미국 포드자동차와 폭스바겐 아메리카 등 자동차 업계 관계자, 그리고 LG와 SK가 자동차 배터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조지아-오하이오-미시간-테네시 주의 의원들과 민간단체 대표들을 상대로 수입 배제 판정이 미국의 자동차 업계와 소비자,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견을 청취했다.

2021년 2월 10일 ITC는 예비 판정에 대한 심리를 마무리하고, SK이노베이션에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유용해 만든 전기차 배터리 제품에 대해 10년 동안 제한적 수입 배제 명령(Limited Exclusion Order)과 미국 내 제조 및 판매 금지 명령(Cease and Desist Order)을 최종 의결했다.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고 현재 개발된 것과 같은 수준의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개발하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본 것이다. SK는 1년이면 관련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ITC는 3월 4일 공개한 판결문에서 SK이노베이션이 고위층의 지시로 광범위하게 이메일을 삭제해 조사를 방해했고, 행정판사의 포렌식 명령을 무시하고 관련 증거를 숨기려 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이용해 저비용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해 낮은 가격으로 포드자동차와 폭스바겐의 전기차 배터리 판매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도 적었다.

LG의 물품구매내역 Bill Of Materials를 참조하라는 SK의 사내 이메일

SK이노베이션은 이메일 삭제가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과 관련이 없는 IT담당 부서의 정기적인 메모리 정리 작업이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배터리 사업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ITC는 'SK는 자신들이 삭제한 정보가 LG의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 입증책임은 파일을 삭제한 SK에 있고, SK는 자신들의 행위가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오히려 LG가 설득력 있게 SK가 지운 파일이 LG의 영업비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SK가 삭제한 정보가 LG의 제품에 대한 가격 정보 등을 포함하고 있고, 이 정보로 SK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만큼 이는 LG에는 피해를 줬다는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가 미국에서의 소송을 예측하지 못하고 증거를 삭제했다"는 ITC 의견서

"대통령 거부권으로 ITC 결정 뒤집기 쉽지 않을 것?"

ITC는 미국 내 산업에 손해를 끼치거나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수입 배제 신청을 받아 결정을 내리는 준사법기관으로 독립위원회이다. ITC의 결정은 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하고, 불복할 경우 연방항소법원(CAFC)에 항소할 수 있다. 법정 소송보다 훨씬 짧은 12-18개월에 신속하게 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6명으로 구성된 무역위원회 ITC는 미국 관세법 제337조에 따라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리고, 행정판사(ALJ)가 불공정수입조사국(OUII: Office of Unfair Import Investigation)의 조사를 근거로 내린 예비 결정(ID: Initial Determination)에 대해 최종 결정(FD: Final Determination)을 내린다. 당사자가 ID에 대해 재심사를 신청하는 경우 행정판사의 예비 결정을 재검토한다.

ITC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ITC의 결정이 그대로 확정된다. 현재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권고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최종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시장에서 벌이고 있는 영업비밀침해사건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4월 10일. ITC로부터 수입 배제 명령을 받은 SK 측은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희망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SK는 ITC가 결정한 "SK이노베이션 제조 전기차 배터리 수입 배제 및 생산 판매 중단이 전기차 생산에 차질을 초래해 미국 소비자의 선택권과 시장 경쟁을 제한하고, 미국의 전기차 산업에 피해를 주며, 이는 친환경 전기차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를 억제하고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SK와 LG가 ITC와 델라웨어연방법원에 서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을 거론하며, SK도 독자적인 기술을 가진 만큼 영업비밀 침해를 하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지식재산업계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수입 배제 명령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미국 법에 정통한 A변호사는 "ITC의 결정은 미국 내 산업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관세법 337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 SK와 LG는 모두 외국회사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까지 해서 ITC의 결정을 무력화할(override) 이유는 없는 것 같다. ITC는 최종 결정을 두 번이나 미루며 이미 미국 국내 산업과 소비자에 대한 영향을 충분히 검토했다고 본다. 예비 결정(ID)과 최종 결정(FD)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 게 없다. 포드자동차와 폭스바겐 아메리카에 대한 수입 배제 유예 조치가 추가 됐을 뿐이다. 배터리 공급 회사 2개가 1개로 되면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은 있겠지만, 지식재산권 침해를 용인하면 산업 보호와 지식재산권 보호 사이에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바이든 정부로 바뀌었다고 결정이 바뀔 이유는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ITC의 구제조치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례

ITC 결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극히 이례적…지금까지 모두 6건

관세법 337조의 규정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ITC의 구제조치가 1) 공중 보건과 복지 2) 미국 시장의 경쟁 여건 3) 미국 내 경쟁제품의 생산 4) 미국 소비자 5) 미국의 대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 ITC의 구제조치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모두 6건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8년 전인 2013년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통신표준특허(SEP) 침해 사건에 대한 구제 조치였다.

ITC는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삼성전자가 보유한 무선통신 표준특허를 위반했다며 제한적 수입 배제(LEO)와 미국내 제조 및 판매 금지(CDO)를 결정했지만,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ITC는 애플 측이 적극적으로 삼성전자 보유 특허에 대한 기술 이용 협상에 나서지 않았고 특허를 도용했다고 결정했지만, USTR은 통신표준특허를 보유한 삼성전자가 공평하고 비차별적인(FRAND) 라이센싱 협상에 응하지 않았고, 이는 민간의 자율협약으로 만들어진 표준특허 보유자에게 너무 많은 이익을 제공하고 혁신과 경제발전에 중대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며 ITC의 결정을 뒤집었다.

1987년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가 삼성전자와 히타치 등 19개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DRAM 메모리 반도체 특허침해 소송에서도 ITC의 제한적 수입 배제(LEO)와 미국 내 생산 및 판매 금지 결정(CDO)이 미국 내 산업에 중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당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금까지 이뤄진 ITC의 구제조치에 대한 6건의 거부권 행사는 그 제품의 수입이 배제됨으로써 미국의 관련 산업에 중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구제조치가 혁신과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다른 정책과 상충하거나 관련 정책이 확정되지 않았을 경우에 결정됐다.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침해와 수입 배제를 결정한 ITC 의견서

"SKI의 벼랑 끝 버티기…효율적 침해 전략?"

경제활동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알면서도 계약을 위반하는 행위를 효율적 위반(efficient breach)이라고 한다. 1천만 원의 계약금을 걸고 1억 원에 집을 팔기로 계약을 체결했는데, 잔금을 치를 때 1억5천만 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1천만 원의 위약금을 물더라도 원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매각해 4천만 원의 이익을 더 얻으려 하는 행위다. 지식재산 분쟁에서도 규정을 위반해 손해배상금을 물더라도 침해에 따른 이익이 훨씬 더 크다면 규정 위반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로 위반하는 효율적인 침해(efficient infringement)를 선택할 수 있다.

다수의 지식재산업계 관계자들은 ITC가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영업비밀 침해가 명백하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합의를 선택하지 않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SK이노베이션의 결정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SK가 '효율적인 침해'를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연료전지 사업을 선택한 SK가 소송으로 시간을 벌면서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려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분야에서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도 애플에 맞소송을 제기하면서 버텨 결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선례도 있다는 것이다.

SK 배터리를 장착할 포드자동차의 F150 전기차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100% 독창적인 기술이 있을 수 없고, 자동차 배터리도 리튬이온 방식에서 전고체 배터리로 기술 발전이 빠른 만큼 시간을 벌며 버티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새로운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다른 회사를 만들어 배터리 사업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ITC가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광범위하고 전사적인 증거인멸 행위가 드러났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미국 법정에서 SK가 우호적인 판결을 받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판에서 징벌적 손해 배상 판결이 나올 경우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지식재산분야 전문 B교수는 "효율적인 침해를 막기 위해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다.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침해에 대해 손해 금액의 3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ITC가 의견서에서 SKI의 영업비밀 침해를 알면서도 계약을 진행한 포드자동차에도 잘못이 있다고 판결한 것처럼 낙인 효과가 생겨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기 힘들 수도 있다. 특히 영업비밀 침해는 남의 기술을 훔치는 행위(theft)로 특허보다 징벌 수위가 높고, 듀퐁(Dupont)의 특수 섬유 제조 영업비밀을 침해한 코로롱(Kolon)이 9억 달러의 배상판결을 받고 합의한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증거인멸 행위는 미국 법정에서 설 땅이 없다."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의 MEB 전기차 플랫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서로 상대방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에서 특허 소송도 벌이고 있다. 이 특허 소송에서 SK가 패한다면 SK는 미국 시장에서 자동차 배터리 사업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대로 미국 시장에서 선두주자인 LG의 보유 특허에 대해 무효 판결이 나거나 특허 침해 판결이 난다면, LG 측도 막대한 배상금을 무는 것은 물론 보유 특허 포트폴리오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폭풍 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 10년 이내에 내연기관 자동차는 박물관으로 물러나고 전기를 기반으로 한 자동차가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초대형 기업 LG와 SK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다툼은 이런 초대형 시장을 놓고 벌이는 별들의 전쟁에 비유된다.

SK는 수천억 원의 변호사 비용과 수조 원의 배상금을 물더라도 미래 먹거리 배터리 시장에서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ITC가 제한적 수입배제명령(Limited Exclusion Order)을 내리면서도 한시적으로 미국 내 전기차 회사에 대한 배터리 공급을 허용한 것은 SK에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남겨 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선두 주자로서 승기를 잡은 LG는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서 배터리 시장의 본거지 미국에서 입지를 굳히고, EU 등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지배적인 사업자로서 위치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이번 LG에너지솔루션의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전기자동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 LG 측은 3조 원 안팎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반면, SK 측은 4천억 원 대의 배상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식재산업계 전문가들은 특허나 영업비밀 침해를 둘러싼 소송의 목적은 결국 어느 한 회사를 망하게 하기 보다는 사업을 지속하며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있는 만큼, 양측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합의를 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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