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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문재인 정부의 아이러니…"일본 진보가 고립되고 있다"

호리야마 아키코(堀山 明子). 일본의 진보 계열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이미 서울특파원 경험을 했고 2018년 서울지국장으로 다시 한국에 왔다. 2019년부터 올해 2월까지 2년간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회장도 맡았다.

한국을 좋아해 e-mail 이름이 한국식 영문 homyungja, 호명자 (호리야마의 호 + 아키코(明子)를 한글 음차해 만든 이름)이다. 안숙선 명창에게 국악을 1년 배웠을 정도로 한국 문화를 깊이 체험했다. 카톡 프로필 사진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진이다.

"학생 시절부터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가해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본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할 만큼 역사 문제, 한일 관계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진보 성향의 언론인이다. 두 번째 서울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곧 본사 귀국 예정이다. 귀국을 앞둔 8일, 한일 관계 전문가 모임인 세토포럼에서 호리야마 특파원을 다시 만났다.

일본 진보 언론인이 보는 한일 관계의 포인트는 무엇일까? 한국 진보 정권의 대일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반일과 혐한은 어떤 방법으로 국내 정치에 이용되고 있는가? 한일 관계의 해법은 과연 있는가? 등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월18일 문 대통령 기자회견 때 질문하는 호리야마 특파원 (서울 외신기자 클럽 회장)

일본 진보 언론인의 '문재인 정부 외교' 평가는?

호리야마 특파원이 작년부터 부쩍 자주 언급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진보 정권의 대일정책이 불러온 일본 정치의 아이러니다.

"과거사 문제, 위안부 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 한일 관계 이슈를 다룰 때 일본 정부, 자민당 정권을 비판하면 나의 진보적 목소리에 일본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 있었어요. 소리 없는 다수의 국민들이 내 편이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더 나아가 일본의 우익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한국 정부 편을 들면 일본 우익이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립되고 일본의 진보가 고립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일본 보수와 진보에 골고루 섞여있는 친한파 그룹이 소수파로 쇠퇴해가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저의 기본적 입장이 달라진 것은 아니에요. 위안부 합의의 사실상 파기, 징용공 판결, 한국 정부의 반일 정치에 일본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것인데 한국 정부도 일본 국민들의 생각이 왜 저렇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줬으면 좋겠어요."

노무현 정부 vs 문재인 정부의 외교 소통 비교

2004년 특파원 시절과 2018년 특파원 시절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비교해달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외신을 상대로 한 소통에서 많이 후퇴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외교안보수석, 외교장관이 직접 외신을 상대로 정례 모임을 통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통로가 있었어요. 오프더레코드 형식으로 1주일에 한 번 외신들의 질문도 받았고요. 매주 1회 한국 정부의 입장과 강조점을 설명 듣다 보니 한국의 외교 방향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해도가 높아지니 한국의 입장도 잘 전달될 수 있었죠. 반기문 장관이 특히 적극적이었는데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 소통하려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런 노력이 거의 없습니다. 3년 8개월 외교장관으로 재임했던 강경화 장관의 경우, 과거보다 횟수를 줄여 한 달에 한 번 외신과 만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는 3개월에 한 번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한국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잘 이해되지 않은 채 애매하게 끝나곤 했습니다. 영어 홍보물 같은 것은 많이 냈는데 그런 것을 외교 실적으로 보고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외교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가 그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문재인 정부는 많이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사진=연합뉴스)

한국 외교, '책임 회피' 풍조가 만연해졌다

논점을 한일 관계로 좁혀 들어가자 가장 본질적이고 어려웠던 문제라고 했다. "한국 정부가 사실 확인을 피하려는 모습이 들 때가 많았다"며 "이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라고 했다.

"위안부 합의, 강제징용공 배상 문제 등 핵심 현안에 있어 궁금한 내용에 관한 질문을 하면 팩트를 제시하는 대신 답변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논리가 명확한 근거를 들이대며 상대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애매하게 문제를 피하려는 듯한 느낌을 더 많았어요. 청와대와 외교장관의 발언이 엇갈릴 때 어느 것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냐고 물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답변이 많았죠." 물론 외교의 특성상 '모호한 입장'을 전략적 포지션으로 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호리야마 지국장의 말은 그런 차원의 '전략적 모호성'이 아닌 '책임 회피용 이슈 피해가기'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한국 외교부를 향해 '책임 회피'의 경향을 지적했다면 한국 정치인을 향해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말 바꾸기를 지적했다. 강제징용공 배상 문제의 경우, 반일이 중요시될 때는 삼권분립에 기초한 법원 판결이기에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가 한일 관계 개선이 중요시될 때는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하는 법원 판결은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는 식이다. 도쿄올림픽을 남-북-미-일 정치 이벤트로 만들고 싶어 하는 문재인 정부의 계산법이 이미 읽혀진 탓인지 한일관계 개선 메시지도 순수하게 안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호리야마 지국장의 결론은 '한국과 일본 모두 근거 있는 논리와 일관된 언행으로 논쟁하자'는 것이다. 국내 정치용으로 변질되는 순간, 갈등만 증폭되고 해법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 점 때문에 아베 정권이 정말 싫었는데 문재인 정부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고 했다.

정치 구호에 밀린 외교…'소화불량' 대책은 없는가?

권력 주도의 편 가르기가 일상화된 결과, 정치도 외교도 '진실 찾기'가 아닌 '낙인찍기' 경쟁으로 전락한 시대가 됐다. 보수 대 진보의 논쟁이 그렇게 변질됐듯이 한일 관계도 비슷한 양상으로 악화돼 왔다. 한국 정부 대 일본 정부의 대립은 외교적 해결의 영역을 넘어선 듯한 느낌마저 든다. 공허한 구호만 넘쳐나고 미래의 출구는 꽉 막혀 있다.

위안부, 일본 역사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의 이슈 제기는 원초적 출발이 일본 진보 언론이었다. 아베 총리가 아사히, 마이니치를 겨냥해 '당신들은 어느 나라 언론이냐'고 비난한 것도 그런 역사적 뿌리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 정권 출범을 반겼고 첫 서울특파원 4년이 너무 행복했다고 했던 일본의 진보 언론인이 3년간의 두 번째 한국 특파원 생활을 마치면서 "이번 3년은 답답한 소화불량의 느낌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우리 정부가 한 번쯤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남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때, 정작 우리가 고립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냉정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 방문신 논설위원은 도쿄특파원, 정치부장, 국제부장, 보도국장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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