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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北 '원조 걸그룹' 띄우기 주춤…'모란봉악단'의 공백기

'시시콜콜'한 북한 이야기

한반도 상황을 좌우하는 큰 뉴스는 아니지만, 살펴보면 나름대로 흥미 있는 북한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미키마우스와 한 무대에 서는가 하면, 디즈니 주제가를 세련되게 소화했던 북한의 악단.
모란봉악단
모란봉악단

김정은 집권 초기 문화를 상징하는 '모란봉 악단' 이야기입니다. 김정은 시대의 원조 걸그룹 격으로 평가받은 이들은 북한판 소녀시대라는 별칭으로도 종종 불렸습니다. 2012년 시범 공연 이후 등장만 하면 화제가 된 터라 수년간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북한 뉴스에 크게 관심이 없는 분들도 이들 팀 이름은 들어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북한 문화에서 대표선수였던 이들이 요즘에는 잘 안 보이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에 '모란봉(전자)악단' 팀 이름으로 명시된 가장 최근 무대는 언제였을까요? 통일부는 2020년 새해맞이 공연, 그러니까 2019년 12월 31일에서 2020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에 열린 무대로 보고 있습니다. '모란봉악단'으로서의 공식 무대는 1년 이상 없었던 셈입니다.

물론 2021년 신년 공연에서 악단에 속한 개별 가수들이 무대에 섰고, 지난달 16일 광명성절(김정일 생일)에는 대표가수 격인 김옥주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모란봉악단'만의 특색은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공연 출연진을 자막으로 명시하는 조선중앙TV는 '모란봉악단'을 자막에서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개별적으로는 무대에 서고 있는 상황에서 '모란봉악단'을 활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아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이 악단은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지시해 꾸려진 팀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북한 매체가 모란봉악단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설명한 바는 없습니다. 다만, 이전처럼 이들을 대대적으로 띄우던 분위기가 사라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사라진 모란봉악단

비교를 해보면 원래 이들은 북한 내부를 돌며 순회 공연을 할만큼 곳곳에 동원되는 그룹이었습니다. 2017년 10월 조선중앙TV가 순회 공연 중 대기실에 있는 이들의 모습을 취재한 바 있는데, 흡사 우리 연예 프로그램을 연상케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취재를 나간 북한 여성이 "평양을 떠나서 힘들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면 한 단원이 "우리가 힘들어서 관중하고 눈 마주치면 우리 보고 이렇게 막 좋아서 웃는단 말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입니다. (조선중앙TV, 2017년 10월 방송분)

그런 이들이 최근 합동 공연 형식의 무대에서조차 언급이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 배경일 텐데, 2017년처럼 지방 공연을 하고 있어서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이지만 방역은 여전히 중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입니다. 또한 실제 지방 공연이 있다면 북한 매체에서 짧게라도 보도로 다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모란봉악단의 공백기가 시작된 시점입니다. 북한이 이른바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때와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2020년 1월 1일부터 대북제재 국면을 자력갱생으로 돌파하겠다면서 이른바 '정면돌파전'을 선언했고 현재까지도 그 기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축 분위기보다는 내부를 죄면서 힘들어도 이겨나가자는 분위기가 더 강해졌습니다. 한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도 그렇게 신명나는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며 최근의 분위기를 평가했는데, 이런 시점들과 이들의 공백기가 겹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이 최근 소형 공연보다는 대규모 공연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동완 동아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체제 결속을 위해서 전 인민적인 단결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대형 공연 중심으로 음악 정치를 하고 있다. 모란봉악단은 소규모 악단이기 때문에 대형 공연에 맞지 않는 면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7명, 전자악기 연주자까지 합쳐도 20명이 채 안되는 인원으로 웅장한 무대를 연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한편에서는 비사회주의 문화를 척결하려는 기조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모란봉 악단이 김정은 시대 초기의 개방적인 이미지를 띄고 있는 만큼 사회주의 문화와 사상을 독려하는 최근의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개별 가수는 종종 등장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원한다면 언제든 이들을 등판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공백기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모란봉 외교'라는 말까지 사용할 만큼 상징적이었던 이들의 존재가 현재는 희미해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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