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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옷에 피 묻히는 내 직업, 후회하지 않습니다

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 글쓰기
나는 보통 사고 현장에 다녀와서 들었던 생각과 감정을 글로 남긴다. 사고 현장에 나갈 때마다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고 그러진 않는다. 특히나 자다 깨서 나가는 출동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구조차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서서히 정신이 든다. 구조차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무전 내용이 단순한 사고 같진 않았다. 제설차량을 뒤에서 덤프트럭이 들이받아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멈춰 있다고 했다. 덤프트럭의 운전자가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현장 목격자의 진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형, 오늘 글감 나오겠는데요?"

옆에 앉은 동기 박반장이 긴장을 풀라는 의미로 가볍게 말을 건넸다. 이 말을 듣자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처음 글을 쓸 땐 배출의 의미가 컸다. 나는 시각적인 충격보단 감정적인 충격에 약해서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배출하지 않고 쌓고 살다 보니 정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것만 같았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도 잔처럼 채우고 채우다 어느 시점에 넘칠 때가 있다고.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나에겐 그랬다. 타지에 친구도 없이 홀로 살고 있던 나의 잔은 그리 크지 않았다.

구조 현장에서 베테랑 팀장님과 나.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이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누군가의 사고가 나의 글감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 비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내 자신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타인의 이야기가 섞인다는 점, 그리고 내가 겪는 사건 대부분이 타인의 불행에서 시작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예전에 한 베테랑 기자님께 이 고민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 분은 설령 그러하더라도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의미로 큰 가치가 있기에 멈추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젠 어떤 책임감이 더해져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졌다. 오늘 아무 생각 없이 나간 사고 현장에서 몸은 부지런히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들을 계속 찾고 있었다.

# 안전벨트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제설차의 뒷부분을 받은 덤프트럭의 운전석 부분이 움푹 들어가 차와 차가 연결되어 있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구조차를 옆에 세우기도 전에 우린 덤프트럭 기사에게 "앞으로! 앞으로!" 다급한 목소리로 전진을 요구했다. 원래 같으면 차량이 분리되어야 하지만 덤프트럭은 제설차의 일부가 된 것처럼 끌려다녔다. 차량을 세우고 일단 유압장비에 먼저 시동을 걸어 덤프트럭 쪽으로 옮겼다. 싸라기눈은 이미 함박눈으로 변해있었다. 탐조등을 켜고 이리저리 비추어 보아도 답이 없었다. 트럭 문을 유압장비로 뜯어도 공간이 없어 사고자를 꺼낼 수가 없었다. 대형 크레인을 부르기로 했다. 차량을 떼어내는 준비를 하기 위해 덤프트럭 주위를 분주하게 다니던 우리에게, 하얀 작업모를 쓴 아저씨가 물었다.

"안전벨트! 환자 안전벨트 맸나요?"
"아뇨. 지금 식별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우리 대답을 듣고 어리론가 사라진 아저씨는 다시 돌아와 구급대원에게 안전벨트를 했냐고 묻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구급대원도 운전석을 플래시로 비춰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상황에서 안전벨트가 중요한가?"

"형 그거 알아요? 이건 정황상 덤프트럭이 제설차의 뒤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덤프트럭 과실이 100:0 일 것 같은데 또 모르죠. 만약 다른 이유가 있다면 덤프트럭 기사가 안전벨트를 했냐 안했냐에 따라서 보험지급금이 달라지거든요."

"야 지금 사람이 차에 끼어 죽는 판에 보험금 따지고 있다고? 이런 *****들."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나도 모르게 거친 욕이 나왔다. 사고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달랐다. 사람을 구조해야 하는 입장에선 차를 떼어내기 위해 이런저런 수를 다 동원해가며 속이 타들어가는데, 돈을 지불해야 하는 입장에선 회사의 이익을 위해 거센 눈을 맞고 있었다. 우린 각자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평소에 하지 않는 욕을 하며 말 못 하는 사고자의 편을 들어줬다. 설령 그게 자본주의 세상의 물정이었다 하더라도 내가 욕하는 게 맞지. 이게 더 인간사는 세상이지.

# 2월 17일
"야 박반장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2월 17일. 사매 터널."
"형 진짜예요? 우리 2월 17일에 뭐가 낀 거 같아요."
"그러게~ 내년 이날에도 큰 사고 터지면 우리 진짜 뭐 있는 거다. 긴장하자."
"그때도 눈 엄청 왔었는데 오늘도 또 이렇게 오네요."

1년 전 오늘 남원 역사상 가장 큰 사고로 기록된 사매 터널의 30중 추돌 차량화재 사고가 있었다. 그날 6시간 넘게 진화작업을 벌이고 야간 교대팀에게 인수인계를 한 뒤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원래 큰 사고 겪으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다 푸는 거야. 다 잊는 거야 알겠지?"라며 우리를 삼겹살집으로 데리고 갔다. 1년이 지난 오늘은 가게 문들을 다 닫은 새벽이라 팀장님은 편의점에 들러 계산대에 진열된 커피를 사주셨다. "오우야 박반장 커피 너무 뜨거운데?" 난생처음 콜드브루를 뜨겁게 마셔봤다. 2021년 2월 17일 오늘 우린 이 콜드브루처럼 뜨겁고 차가웠다.

음료 진열대 온도계가 고장난 듯 뜨거웠던 콜드브루.

# 피 묻은 방화복
새벽에 비몽사몽으로 사건을 정리했다. 아침에 사건사고가 주간 근무자들에게 인수인계 될 수 있도록 사진을 고르고 영상을 업로드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었는지 전달이 잘 되도록 핵심 키워드만 간추려 미리 타이핑을 해놓는다. 초등학교 때 육하원칙에 대해 담임선생님께서 입에 거품을 물며 강조하셨는데 커서 그 깊은 의미를 깨닫는다. 새벽이라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손으로 탁탁 치며 내용이 부족하진 않은지 읽고 또 읽어본다. 이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 화장실로 지친 몸을 이끌고 간다.

작업을 할 때 방화복에 묻은 핏자국을 제거하는 일이다. 피가 많이 묻었다면 방화복 세탁기에 돌리면 그만이지만 군데군데 애매하게 묻어 그냥 손빨래를 해보려 한다. 따뜻한 물에 거품 손세정제로 피 묻은 부분만 빨래하듯 문지른다. 하얀 거품이 연분홍 벚꽃처럼 변했다. 그럼 물로 씻어낸다. 다음 얼룩을 문지르니 내손에 또다시 벚꽃이 피고 졌다. 그렇게 몇 번이나 벚꽃이 피고 졌다.

다음날 퇴근을 하고서 소식을 들었다. 고인이 된 사고자의 가족들이 잠시 구조대 사무실에 들러 인사를 하고 갔다고.

옷에 피 묻히는 직업을 후회하지 않는다.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내 몸에 묻은 피가 짧고 강렬하게 피고 졌던 한 인간의 꽃잎이라 생각하면 더럽지 않다. 죽은 사람의 얼굴이 꿈속에 나올까 겁내지도 않는다. 내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기라 생각하면. 피 묻은 방화복은 더 이상 섬뜩하지 않다.

#인-잇 #인잇 #시골소방관심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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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안 무섭다는 거짓말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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