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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례식장에 텐트 치고 쪽잠 자는 공공병원 간호사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들이 '인력 확충' 외치는 이유

실내에 웬 '텐트'냐고요? 이곳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한 공공병원의 장례식장입니다. 코로나 전담병원 지정 후 운영이 중단된 장례식장은 의료진(주로 간호사)의 숙소가 됐습니다. 장례식 손님을 받는 접객실이 코로나19 의료진의 휴게실이 된 겁니다. 텐트가 등장한 이유는 "추워서"라고 했습니다. 장례식장 공간이 크고, 일단 숙박을 하기 위해 설계된 곳은 아니다 보니 난방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추위가 있다고 했습니다. 텐트도 모두에게 제공된 건 아니라서 하루에 많게는 20명 정도가 잠을 자야 할 땐 텐트 없이 바닥에 침구를 펴고 자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인 한 공공병원의 장례식장에 의료진이 쉬는 장소로 이용되는 텐트. 이 병원 직원들이 직접 촬영해 제공.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는 간호사분들도 많아요. 코로나 한창 대유행할 때는 더 심했고요. 가족들이 감염될까봐 일부러 집에 안 가거나, 또 밖에 나가서 확진자 접촉할까봐 조심하시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선생님은 작년 9월 후 지금까지 집에 딱 두 번 다녀온 분도 계세요."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 A 씨)

"저는 처음에 그랬어요. 무서워서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자냐고. 나는 못 자겠다고. 그런데 이젠 익숙한 풍경이 됐네요."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 B 씨)


병원 근처에 숙소를 구해달라는 요구를 한 적도 있지만 책임 있는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전담 병원의 현실은 '장례식장 텐트 속 쪽잠'인 셈입니다.

● 영하 10도 한파 속 1인 시위…"공공병원 정규 인력 확충하라"

18일 오후 청와대 앞. 보건의료노조 소속 공공병원 의료진의 1인 시위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날로 17일째. 시위는 한 팀이 1박 2일씩 맡습니다. 첫날은 오전 10시부터 밤 9시, 다음 날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입니다. 이날 제가 만난 분들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한 공공병원 소속 간호사와 임상병리사, 그리고 시설담당 직원이었습니다.

청와대 앞 공공병원 정규 인력 확충 시위 피켓

"커피 한잔 드릴까요? 아메리카노랑 달달한 것 중에 어떤 거 드릴까요?" 보온병 두 통과 종이컵이 담긴 상자를 든 남자가 말을 건넸습니다. 경찰이었습니다. 이날은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로 추위가 매서운 날이었습니다. 손을 녹이며 1인 시위를 하는 의료진들이 경찰 눈에도 좀 안쓰러웠던 모양입니다. "경찰이 타주는 커피를 마셔보네요. 감사합니다." 임상병리사 C 씨는 커피를 받아 들었습니다. 옆에 서있던 덕에 저도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셨습니다. 고작 10여 분 서 있었을 뿐인데 그 작은 종이컵이 전하는 온기에 의지하게 될 만큼 바람이 찬 날이었습니다.

"공공병원의 정규 인력을 확충해달라." 한파를 뚫고 시위를 이어가는 궁극적 이유입니다. 현재 정부는 파견 인력으로 공공병원의 코로나19 대응 인력 수요를 채우고 있습니다. 파견기간도 월 단위로 짧은 편입니다. 파견 인력의 교육도 기존 노동자들의 몫입니다.

"파견 인력이 오면 그분들 따로 빼서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또 시간이 소요되잖아요. 결국 실무에는 바로 투입을 못하는 거예요. 일주일, 열흘 교육을 해서 투입을 하는데 한 달 이렇게 일하고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또 인력 파견을 요청해야 하고…."

"서로 합을 맞춰서 팀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파견 인력으로는 그렇게 가기가 어려운 거죠. 코로나 초기에는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으니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1년이 넘어가는 지금은 다들 많이 지쳤습니다. 땜질식 인력 제공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전체 병상 중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90%를 맡고 있지만 인력 충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민간 파견 인력을 배치하는 정부의 현재 인력 지원책은 근본적 해결방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파견 인력 인건비가 정규 인력의 3배에 달하지만 숙련도가 낮아 정작 현장의 업무 과중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겁니다. 땜질식 단기 인력 제공이 아닌 공공병원의 지속 가능한 인력체계 확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환자 중증도·질환별로 필요한 인력 대응 기준 법제화해야"

인력 충원이 가장 필요한 직군은 간호사입니다. 환자의 중증도, 질환별로 얼마의 인력이 필요한지 그 기준을 법으로 규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인력 기준 지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간호등급제라는 제도가 있긴 합니다. 간호사 1인당 환자를 몇 명 보느냐에 따라 1~7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수가 보상을 하는 인센티브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간호사를 많이 고용하면 등급이 높아지고 등급이 높을수록 병원이 입원료 가산을 더 많이 받게 되는 건데 말 그대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기준'일 뿐, 환자 수 대비 간호 인력을 일정 기준 이상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건 아닙니다(병원이 간호등급제로 얻는 수익보다 간호사를 유지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판단하면 간호등급제를 안 지켜도 되는 게 현실입니다).

"공공병원은 사립 병원에 비해 처우가 열악해요. 코로나 유행 전에도 3~4년 일하다가 이직하는 사례들이 있었어요. 능력은 비슷한데 임금 차이가 확 벌어지니까. 그런데도 공공병원에 남아서 일하는 간호사나 의료진들은 그만큼 공공병원의 책임과 역할에 공감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전담병원도 공공병원이 맡아야 할 일이라는 데는 동의해요. 그런데 1년이 넘었잖아요? 인력 보충도 안 되고, 보상은 적고, 코로나는 언제 끝날지 가늠이 안돼요. 계속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을까요?"

보건의료노조는 이외에도 ▲공공의료기관 정원 확대 및 추가 인력 인건비 지원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모든 보건의료 노동자에게 형평성 있는 지원 체계 마련과 생명안전수당 지급 ▲코로나19 방역 및 보조인력 지원 연장 ▲코로나19 전담병원 경상비 지원 제도화 ▲공공의료 확대와 공공의료기관 기능 강화 ▲코로나19 대응 인력 지원을 위한 예산 마련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 간호사가 부족해 벌어지는 일…'돌봄의 포기'

서울시 공공병원 소속 간호사들도 같은 날 서울 혜화동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거듭 인력 확충을 요구했던 보라매병원 간호사들을 포함해 서울대병원, 서울의료원 등 3개 병원 간호사들이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사진=연합뉴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노들야학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주최한 코로나19 대유행 1년, 서울시 공공병원(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인력 운영에 대한 간담회

이분들의 주장도 비슷합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간호 인력 운영 기준은 마련돼있지 않다는 겁니다. 간호 인력 운영 기준이 없어 인력 투입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환자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치매, 와상 환자의 경우 대변을 보면 목욕을 시켜야 하는데 간호사 한 명이 맡고 있는 환자 수가 몇 명이냐에 따라 씻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실제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간호사 한 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으면 무엇인가 포기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대변을 치우고 약을 먹일 수 있도록 인력을 보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최은영 서울대병원 간호사)

인력 운영 기준이나 매뉴얼이 없어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임시방편으로 인력을 투입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보라매병원은 간호사가 확진 판정을 받자 함께 일한 일부 인원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간호사 수를 줄여 병동에 투입했습니다. 야간근무를 하는 동안 간호사 3명이 모든 병실을 청소하고 환자를 받았습니다." (김경오 보라매병원 간호사)

지난 1년은 '의료진 덕분에'라는 국민의 응원과 위로로 코로나19의 전선에 서있는 의료진들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감염병으로부터 생명을 살리겠다는 이분들의 사명감이 전선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들의 사명감에 기대긴 어렵습니다. 정부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방역"을 위해서라도 현장 의료진들의 요구에 구체적인 답을 내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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