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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장님, 우리 도시 계획은 뭐예요?"

- '도넛'으로 도시를 바꾼다, SDF2020 일렉트라 쿨룸피 (IIektra Kouloumpi) 강연 다시보기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50여 일 앞두고, 많은 후보들이 적임자를 자처하며 지지세 결집에 나섰습니다. 저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 침체에 지친 시민의 삶을 개선시키겠다고 다짐합니다. 예년과 비교해 특히 눈에 띄는 건 코로나19 이후 동네 생활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재택근무의 일상화로 장시간의 출퇴근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됐고, 시민들은 집 근처에 더 많고 다양한 시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후보자들은 기존의 중앙 집중이 아닌, 소규모 생활권으로 잘게 쪼개는 도시 개발 구상을 중요 과제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기존 GDP 중심의 '성장 중독' 모델이 아닌 새로운 도시 모델 시스템을 적용하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인데요, 암스테르담시(市)는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지속 가능한 도시로의 변화를 위해,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 '도넛 경제 모델'을 적용해보기로 했습니다. 암스테르담시 외에도 미국 포틀랜드, 오리건주, 필라델피아에서 도넛 경제 모델 적용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넛'으로 도시를 바꾼다?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요?

'도넛 경제 모델' 개념은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에 의해 창안됐는데요, 간단히 설명하면 도넛의 안쪽에는 맑은 물, 주택, 보건위생, 에너지, 교육, 의료, 양성평등, 소득, 참정권 등 개개인들이 '좋은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조건들입니다. 그 기준선 밑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도넛의 바깥쪽 고리에는 기후, 토양, 바다, 오존층, 담수, 생물다양성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일정 정도를 넘으면 지구 시스템에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암스테르담시는 향후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 모델'을 축소한 지속 가능한 도시의 청사진을 공공정책 결정의 기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SDF2020은 암스테르담시에 도넛 모델을 적용한 도시 설계 전략가를 연사로 섭외해,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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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F2020에서 '도시 경제, 도넛에서 답을 찾다'를 주제로 강의를 선보인 일렉트라 쿨룸피(IIektra Kouloumpi)는 사회적 기업 '서클 이코노미'의 선임도시전략관으로, 도시의 사회 정의와 환경 안전 증진 전략을 기획하는 '도시 번영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팀은 '도넛 경제 모델'을 도시에 맞게 축소하여 혁신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여러 도시와 작업하며 순환 경제 전략과 시범사업 도입을 돕고 있습니다. 아래는 쿨룸피가 SDF2020의 청중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간추린 내용입니다.

* 강연 영상 다시보기를 원하는 분들은 SDF2020 홈페이지(https://www.sdf.or.kr/2020/?lang=kr)나 유튜브 링크(https://youtu.be/dz5Ek9DJsnE)를 이용해주세요.

 
1. '지구의 한계' 안에서, '모두의 필요'를 채우는 도시 모델

"2020년 우리 사회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에 여러분 모두가 동의하실 겁니다. 기존 사회 제도의 심각한 취약성이 수면 위로 노출된 한해였기 때문입니다. 인류 공동체로서 우리 사회와 지구 환경이 처한, 위급한 상황을 인지하고, 우리 삶의 방식과 사회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 해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10년을 '행동의 10년'이라고들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10년만 주어졌을 뿐, 그 사이에 행동하지 않으면 이후의 재앙을 되돌릴 길은 없다고 봐야합니다.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취해, 대가를 고민하지 않고 경제 성장만 추구했던 가치관에서 드디어 벗어날 때가 된 겁니다.

도넛 모델은 무엇일까요? '도넛 경제 모델'을 개발한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 경제의 도넛이야말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유익한 도넛"이라는 재치 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넛 모델은 21세기 인류의 중대 과제인 복합적인 목표를 기발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도표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복합적인 목표란 '지구의 한계' 안에서 '모두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를 만드는 겁니다.

 
2. 두개의 고리 –생태적 보호와 사회 정의

"도넛 모양 도표에는 고리가 두 개 있습니다. 안쪽 고리는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명시된 '기본 생활 수준'을 의미합니다. 이는 번영하는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식량, 깨끗한 물과 주거는 물론이고 민주주의와 평화와 성평등도 포함합니다. 도넛 모델에 따르면 누구도 안쪽 고리의 원형, 즉 도넛 구멍으로 빠지면 안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이 안 될 정도로 생활 수준이 떨어졌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도넛의 바깥 고리는 생물 다양성 손실, 대기 오염, 기후변화 등 '지구 생태계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이런 지구 생태계의 한계를 넘는 건, 생명을 지탱하는 지구 체계의 재생 속도보다 지구 생태 용량이 빠르게 초과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안쪽 경계가 의미하는 사회적 기반과, 바깥 경계가 의미하는 생태계 한계 사이에 위치한 초록색 공간은 지구의 자원으로 모두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이 영역 안에서만 생태계 보호와 사회 정의가 이루어짐과 함께 인류의 번영이 가능하기에 안쪽과 바깥 고리 간의 적정 균형을 추구해야합니다."

서클 이코노미 홈페이지 https://www.circle-economy.com/

"그런데 우리 인류와 지구의 현 상황은 어떻습니까? 녹록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아래 빨간 쐐기 모양이 보여주듯, 기후변화의 재앙을 조금이라도 멈출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겨우 10년입니다. 인간은 이미 동물의 60%, 많게는 70%를 멸종시켰고 이제 지구상에서 플라스틱으로 오염되지 않은 곳은 거의 없습니다. 플라스틱은 우리 몸, 심지어 신생아 몸에도 유입돼 있습니다.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유해물질이 가득한 공기를 마십니다. 우리가 농업에 사용하는 비료는 토양 오염과 농지 황폐화에 그치지 않고 먹이사슬을 따라 우리 몸까지 침투합니다. 해양에서는 산성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좀처럼 믿기지가 않는 현상인데, 상위 1% 부자가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암울합니다."


 
3. 암스테르담은 어떻게 도넛 모델을 적용했나?

"하지만 좋은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이런 상황을 바꿀 힘이 있다는 겁니다. 암스테르담은 세계 최초로 이 선구적인 도넛 모델을 적용한 도시가 됐습니다. 이 모델을 적용하기 앞서 저희는 한 발짝 물러나 고민했습니다. ' 어떻게 해야 모델의 총체적 접근은 유지하되, 사회와 생태적 측면을 로컬과 글로벌 차원에서 연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암스테르담을 전 세계인의 웰빙과 지구의 건강을 지키면서 번영하는 사람들의 도시로 만들 것인가?'

이런 주제를 더 깊게 파고 들려면 4가지의 상호의존적 질문을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암스테르담 시민에게 번영은 뭘 의미할까? 사회적 측면을 로컬 차원에서 고민한 것입니다. 둘째, 암스테르담 내 자연 서식지의 번영은 뭘 의미할까? 생태적 측면과 로컬 차원의 접점인 것입니다. 셋째, 암스테르담이 전 지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 질문은 타지에서 생산된 상품 등이 암스테르담에서 소비되는 걸 고려했습니다. 그러니까 암스테르담이 멀리 떨어진 곳에 어떤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냐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암스테르담이 세계인의 웰빙에 어떤 영향을 줄까? 암스테르담에서 소비되는 상품의 글로벌 가치사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받는 영향을 생각하는 겁니다. 이 네 가지의 상호 연결된 관점에서, 암스테르담을 새로 생각하는 '암스테르담 도시 도넛'을 완성했고 정성과 정량적 데이터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도넛 모델을 암스테르담의 현 주소를 진단하고 사회와 생태적 이점이 융합되는 총체적 전략을 디자인하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예컨대 주거 전략을 기획할 때 '어떻게 하면 건강, 교육, 기후, 대기오염, 심지어 성평등 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체인지 메이커'는 점점 늘어났고, 기업인과 도시 전문가 150여명이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며 우리의 전략을 한층 더 발전시켰습니다. 참여자는 모두 도넛 모델 안에서 암스테르담을 번영하게 하는 공동 비전에 각자의 조직, 또는 단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이 전략은 3개의 중요한 가치사슬에 중점을 둡니다. 음식&바이오매스, 소비재, 그리고 건축입니다.

우선 음식 & 바이오매스 영역에서는 식품의 유통 경로를 단축해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 수입 식품의 줄여 도시 안과 인근 농업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합니다. 소비재 영역에서는 도시의 상품 소비를 20% 감소시키고, 상품 재활용 활성화, 순환 보급 체계 구축 등을 달성하기 위해 논의합니다. 건축 영역에서는 순환 주거 환경의 조성, 기존 건축물 재활용, 2차 재료를 사용한 주거 공간 설계 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암스테르담은 지금까지 200개 넘는 프로젝트와 이니셔티브를 추진했습니다. '암스테르담 메이드'라는 이니셔티브는 현지 메이커 간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지역 창업을 지원하고 완전한 순환 경제로 전환시켜 소비를 줄이게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참여하는 메이커 모두 기후 중립적 상품 제작, 재활용 재료 사용 극대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도입에 힘쓰고 있습니다. '머드 진(Mud Jeans)'의 경우 고객의 헌 청바지를 수거해서 재활용하고 새 청바지를 대여해줍니다.

다음은 '도넛 딜' 이니셔티브입니다. 암스테르담 각지에서 현지 주민과 창업가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사업으로, 도넛 모델의 총체적 접근에 착안해 사회와 환경에 도움되는 아이템으로 구성됩니다. 현지 여성들이 두꺼운 커튼을 만드는 프로젝트의 경우엔, 동네 건물의 단열을 돕고 전력 사용도 줄여 기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는 식입니다."


"다음은 바윅슬로터함(BUIKSLOTERHAM)인데요, 주민과 창업가가 힘을 합쳐 폐산업시설을 재설계해 순환형 생활 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새로 설계된 생활 공간은 실험 공간의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물과 에너지와 위생시설 등을 완전한 순환형으로 만들었고, 버려진 공간을 활기찬 공간으로 만들면서 지역 경제가 되살아났습니다.

또한 지속 가능하면서도 적정한 가격의 주택 공급을 위한 이니셔티브가 여럿 추진 중입니다. 비즐머(BIJLMER) 지역에는 주민들이 '커뮤니티 랜드 트러스트'라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실제로 주민들이 소득 대비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이 공급되도록 하고 있고, 현재 시점뿐 아니라 향후에 살게 될 사람들도 이러한 주택을 보장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금 암스테르담에서 추진 중인 가장 중요한 운동은 '암스테르담 도넛 모델 연합'입니다. '체인지 메이커들'의 풀뿌리 네트워크인데요. 자체 조직된 네트워크로 여러 단체와 비즈니스, 주민과 연구 기관을 아우르고 있으며, 도넛 모델을 통해 번영 도시의 비전을 공유하고 이행하는 게 공동 목표입니다. 이들은 이 같은 비전이 문서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암스테르담 곳곳에 스며들어 사람들 삶 속에서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도넛이 어떤 변화를 이끌고 있는지를 한마디로 요약을 해보자면, '새로운 내러티브'가 생겼다는 겁니다. 서로의 배경과 정치적 성향과 전문 분야는 다를지라도, 우리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모두가 동감하고 이해하는 공통의 내러티브를 얻게 됐습니다. 지구의 한계 속에서 암스테르담을 번영의 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을 모두 느끼고 원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 방법도 알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를 위해선 제도적 변화와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며 거버넌스, 참여, 재원 조달, 가치관 등에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다면, 새로운 시스템과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 강연 영상 다시보기를 원하는 분들은 SDF2020 홈페이지(https://www.sdf.or.kr/2020/?lang=kr)나 유튜브 링크(https://youtu.be/dz5Ek9DJsnE)를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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