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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최태원은 되고 최철원은 안되는 이유

'맷값 폭행' 논란, 최철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차기 회장 당선자

이른바 ‘맷값 폭행’의 장본인인 최철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차기 회장 당선자가 국내 체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 당선인은 지난 2010년 화물차량 기사를 폭행한 뒤 '맷값'이라며 2천만 원을 건네 혐의로 이듬해 4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습니다.
 
영화 '베테랑'의 소재로 활용될 정도로 국민적인 공분을 산 그는 지난해 12월 17일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차기 회장에 당선되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다시 올랐습니다. 최철원 씨가 페어플레이를 생명으로 하는 스포츠 단체의 수장 자리에 압도적으로 당선됐다는 사실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4일 이사회를 열어 최철원 씨의 회장직 인준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입니다. 현재 체육회 내부 분위기로는 인준을 거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돈 있는 사람의 만행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정치권의 반발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거부’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선 최근 이른바 '최철원 금지법'이 발의됐습니다. 반사회적·비윤리적 행위로 형사 처벌받은 사람은 앞으로 체육단체장이 될 수 없도록 하는 게 법안의 골자입니다. 그런데 이 법안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입니다. 오랫동안 국내 체육계에서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과 각을 세워왔기 때문에 만약 최철원 당선인을 회장으로 인준할 경우 최근 재선에 성공한 이기흥 회장과 체육회에 대해 파상공세를 펼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대한체육회가 예상대로 인준을 거부할 경우 최철원 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진 사퇴 아니면 소송에 나서는 것입니다. 최 씨는 후보 등록을 놓고 국내 유수의 법무법인 4곳에 문의했고 그 결과 '결격 사유가 없다'는 유권 해석을 받았습니다. 체육회가 인준 거부로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최 대표가 소송에 나설 경우 법정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남아있는 셈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철원 씨가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다시 소환되는 사람이 바로 최철월 씨의 사촌 형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입니다. 최태원 회장은 SK글로벌의 1조5천억 규모의 분식회계와 내부거래 혐의 등으로 지난 2008년 5월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7개월 뒤인 그해 12월 대한핸드볼협회장에 취임했지만 대한체육회의 인준 거부는 없었습니다.  또 2014년 2월엔 450억원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된 뒤 2015년 8월 사면·복권됐는데 이듬해인 2016년 7월 다시 대한핸드볼협회장에 당선됐지만 역시 대한체육회는 인준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최 회장은 핸드볼협회를 맡은 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SK핸드볼경기장을 2011년 건립했고, 남자부 코로사와 여자부 용인시청이 해체되자 SK 호크스(남자)와 SK 슈가글라이더즈(여자)를 창단했습니다. 또 유소년 육성을 위한 핸드볼 발전재단 설립과 핸드볼 아카데미 운영, 국가대표팀 경쟁력 강화 지원 등 핸드볼 발전에 지속적으로 1천억 원 이상을 투자해왔습니다.
 
최철원-최태원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최철원 두 사람의 형량을 단순 비교하면 최태원 회장이 훨씬 무겁습니다. 또 최태원 씨는 형량이 확정된 지 7개월 만에 경기단체장에 나섰지만 최철원 씨는 거의 10년이 지난 뒤에 출마했습니다. 하지만 체육계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천양지차입니다. 최철원 씨 입장에서 보면 형평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 도 있는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해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이 모두 유죄를 선고받은 것은 맞다. 하지만 죄질이 크게 다르다. 최철원 씨의 경우 돈의 힘을 악용해 선량한 시민을 야구 방망이로 마구 때렸다.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는가? 최철원 씨가 취임할 경우 국내 아이스하키 발전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할 것으로 믿지만 체육회가 그의 당선을 인준하면 각계의 엄청난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속내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국내 체육계의 A씨는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최철원 씨의 맷값 폭행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미 10년이 지난 일이다. 최태원 회장이 유죄를 선고받은 뒤 핸드볼 발전을 위해 큰일을 했듯이 최철원 씨도 자신의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줘야 한다. 한번 죄를 저지른 사람은 영원히 주요 직위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최 씨를 큰 표 차이로 당선시킨 아이스하키인들도 고심 끝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최 씨는 국내 아이스하키의 숙원 사업인 아이스하키 전용시설 확충을 비롯해 1기업 1중학클럽팀 운영 및 리그 운영, 실업팀 창단 등의 굵직한 공약을 앞세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체육회가 비난이 두려워 인준을 거부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스하키가 입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 대한체육회가 최철원 씨의 인준을 거부할 근거는 무엇일까요? 대한체육회의 <회원종목단체규정> 제26조(임원의 결격사유) 제 12항은 ”사회적 물의, 체육회와 체육회 관계단체로부터 징계는 받지 않았지만 임원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유사행위 등 기타 부적당한 사유가 있는 사람“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에게는 경기단체의 임원이 되는데 결격 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조항은 2017년 8월에 새로 추가됐는데 지금까지 대한체육회가 ‘사회적 물의’를 이유로 경기단체장의 인준을 거부한 사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또 '사회적 물의'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가 없는데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야 임원의 결격 사유가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결국 최철원 씨의 인준은 대한체육회의 이른바 ‘정무적 판단’에 의해 거부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최철원 씨의 ‘맷값 폭행’과 ‘재벌 갑질’이 때로는 헌법보다 무서운 ‘국민정서법’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가 인준을 거부할 경우 최 씨가 법정 소송에 나설지 아니면 자진 사퇴할지, 어떤 선택을 할지가 주목됩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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