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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질병의 역사'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나?


SBS D포럼(SDF)은 SBS가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만든 지식 나눔 플랫폼입니다.
우리 사회가 깊이 있게 봐야 할 화두를 앞서 제시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혜안을 찾습니다.

'스페인 독감' 당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시민들 (1918년)    ▲ photograph: Raymond Coyne / Courtesy of Lucretia Little History Room, Mill Valley Public Library ⓒThe Annual Dipsea Race
100년 전 촬영된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 하얀 마스크를 쓴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한 여성의 가슴 앞 쪽에는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적혀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어떤가요? 하얀색의 천 마스크를 쓴 간호사 옆쪽에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 Copyright: Illustrated Current News, 1918 (The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인플루엔자 예방을 위해서는 (To Prevent Influenza!)
다른 사람의 숨을 들이마시지 말고 (Do not take any person's breath.)
환기가 잘 안 되는 장소는 가지 마라. (Don't visit poorly ventilated places.)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는 입을 가리고 (Cover your mouth when you cough and sneeze.)
병실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라 (In sick rooms wear a gauze mask like in illustration.)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3월 미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로 발생한 '스페인 독감(Spanish flu)'. 최대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미군의 이동과 함께 유럽 및 전 세계로 확대된 치명적인 감염병입니다.

그런데 100년 전인데도 지금의 우리 사진 속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 안 드시나요? 맞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 그리고 감염 예방을 위한 지침들이 거의 같습니다. 지금처럼 일반인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게 '스페인 독감' 유행 때부터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차량 탑승을 거부당했습니다. 또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한 대책인 '사회적 거리두기'도 개인적 차원에서는 스페인 독감 때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제니퍼 라이트(Jeniffer Wright)가 쓴 책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스페인 독감은 급속히 퍼졌다. 역학자 셜리 패닌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인플루엔자 환자 한 명이 사람이 가득한 방 앞에 서서 기침을 하면, 기침을 할 때마다 병원체가 포함된 무수한 입자가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그 공기를 마신 모든 사람에게 병원체를 들이마실 위험이 있다. 감염자 한 명이 1만 명으로 불어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 가을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1918년 가을은 보통 '2차 확산(second wave)'으로 간주된다.

▲ image: 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

책 속에는 1918년 6월부터 1919년 3월까지 미국과 유럽의 주요 도시에 매주 발생한 환자 수를 인구 1천 명당 연간 사망률로 환산한 그래프가 나오는데 1918년 10월과 11월에 그 수치가 정점을 찍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지금의 1차 유행, 2차 유행과 비슷한 흐름이 반복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들을 고려해 볼 때 스페인 독감 당시의 상황은 지금의 모습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종 감염병 앞에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걸 포함해서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이든 다른 감염병이든, 또 다른 형태의 감염병 발발도 대비해야 하는 시대를 맞아 오늘은 과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혹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이규원 객원교수의 글 (「감염병의 역사와 포스트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대한민국』, 2020에 수록)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자부하는 시대에 이러한 전 지구적 위기를 앞에 두고 취할 수 있는 대책이 고작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마치 백신만 나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들떠 있지만 (……) 유행의 종식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오랜 기간 인류는 역병 앞에 무력한 존재였지만, 막대한 희생을 치르는 가운데 방역을 위한 대처법을 익히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세균학의 성공에 힘입어 전염성 병원체의 정체가 밝혀지고 각종 백신과 항생제가 속속 개발되면서 감염병을 제압할 승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 하지만 이러한 낙관론은 자만에 불과했으며 다시 '감염병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21세기의 인류는 통감하고 있다."


이규원 교수의 지적처럼 학습을 통해 진화하고 발전하는 인류의 특성상, 재앙에 가까운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책도 함께 진화되는 게 자연스럽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목숨을 잃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은 쌓여가지만 그 지식은 신종 감염병의 유행 자체를 막는 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 합니다. 감염병의 유행과 방역을 논할 때 '창과 방패'에 많이 비유하는데, "낡은 방패로 새로운 창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8일과 19일 이규원 교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규원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서 의학과 질병의 역사를 다루는 의사학(醫史學) 전공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의 객원교수로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책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의 옮긴이이기도 합니다.)

이규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객원교수
 
Q. 코로나19와 스페인 독감 상황이 비슷하다.
A. 당시 상황을 보면 지금과 비슷하다. 콜레라 같은 소화기 질환과 달리 스페인독감은 주로 폐와 관련된 호흡기 질환이고, 주요 증상(물론 세부 증상은 다르다)이나 빠른 전파 속도, 감염 경로 등에 있어 유사하다. 또 둘 다 RNA바이러스가 병원체이기 때문에 변이의 속도도 빠르다. 특히 코로나19와 스페인 독감 모두 공기를 매개로 감염되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다든지 밀집 상황을 피한다든지 방역하기 위해 썼던 수단이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특히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이 스페인독감 때 시작된 건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방법으로 감염병에 대처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Q. 신종 감염병은 단시간 내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가?
A. 신종 감염병의 경우 상당 기간 비약물적 개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같은 개인적 대책, 소독과 환기 등 환경적 대책, 격리·검역·봉쇄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이동제한과 국경폐쇄 같은 이동에 관한 대책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동안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낡은 방패로 새로운 창의 공격을 막는 것이라 "비슷한 상황은 이미 겪었는데 왜 또 이런 상황에 놓인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감염병의 발생과 유입 자체를 막아야 하는데, 글로벌 자본주의 하의 현 상황에서 선제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Q. 인류 역사상 완전히 근절된 감염병이 있나?
A. 우리가 흔히 '천연두'라고 알고 있는 '두창'은 지금 완전히 사라졌다. 인류가 근절에 성공한 감염병은 두창이 유일하다. 백신을 이용한 '면역학적 봉쇄 작전'을 철저하게 펼친 결과 1977년 소말리아에 마지막 환자가 나왔고, 2년 동안 환자가 더 생기지 않자 그 이듬해인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두창의 근절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두창바이러스를 미국과 러시아 두 곳에 보존해 놓았고, 마음만 먹으면 실험실에서도 합성이 가능하다. 현재는 예방접종이 중단되어 면역 보유자의 비율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역설적으로 바이오 테러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근절되었기 때문에 유력한 생물학적 대량 살상 무기로 전용될 위험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Q. '집단면역'에 관심이 많다. 언제 도입됐고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됐는지 궁금하다.
A. 1920년대 인간이 아닌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감염병을 연구하는 그룹에서 집단면역이라는 개념이 최초 등장했다. 그 당시에도 개인이 획득한 면역에 대한 인식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집단 차원의 면역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것이 생쥐의 실험을 통해 제시되자 홍역을 비롯한 인간의 감염병에도 적용하게 된 것이다. 역학적으로 봤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몇 명을 감염시킬 수 있는지 나타내는 감염 재생산수가 1보다 작아야 유행이 확대되지 않는데, 집단 내 면역 보유자의 비율이 일정 정도에 도달하면 감염 재생산수가 1보다 작아져 결국 유행이 종식된다는 것이 집단면역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면역이라는 것이 실재하는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개념 자체가 틀린 건 아니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하지만 경향이 종식을 향해 간다는 얘기지 즉시 종식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집단면역의 달성이 곧바로 코로나19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맹신해서는 안 된다.

Q. 문명이 감염병을 낳는다는 말의 의미는?
A. 감염병은 바이러스와 세균, 기생충 등의 병원체가 인체에 침입하고 증식함으로써 발병한다. 하지만 인류가 처음부터 대규모 감염병에 희생된 건 아니다. 인류의 삶에 깊이 침투하기 시작한 건 농경사회 이후 야생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고 도시화가 진행돼 인구 규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서 급성 감염병의 유행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감염병은 문명 특유의 질병이며, 문명이 심화될수록 감염병의 위협도 증대된다고 할 수 있다. 환경 파괴와 밀집 축산 등으로 야생동물로부터 유입된 신종 감염병이 촘촘한 항공망과 도로망을 통해 순식간에 전 지구적으로 퍼지는 현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인류는 감염병을 겪으면서 문명을 발전시킨 점도 크기 때문에 결국 문명과 감염병은 상호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Q.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을 미리 대처하고 막을 순 없나?
A. 감염병의 대유행은 감염자의 인명 피해뿐 아니라 경제손실과 의료체계 붕괴 등의 혼란을 단기간에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상당하다. 그런데 아까 상당 기간 비약물적 개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듯이, 신종 감염병과 관련해 선제적으로 의학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일단 병원체의 정체가 밝혀지고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백신이든 치료제든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 공조를 통해 감염병 발생의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고, 철저한 검역과 방역을 통해 유입과 확산을 저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런 점에서 과거의 사례는 어느 정도 보편성을 띠고 반복해서 오기 때문에 감염병과 방역의 역사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H1N1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 Photo Credit: Cynthia Goldsmith Content Providers(s): CDC/ Dr. Terrence Tumpey
이규원 교수는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 상황처럼 신종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고전적인 대응에 그치게 된다. 근대 시스템이 감염병 통제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라 감염병의 유행이 근대 시스템의 성립에 기여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전 세계가 공통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금이야말로 인류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체계를 모색할 기회일지도 모른다."

정답을 찾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과거 질병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과정 속에 그 답의 단초가 숨어있을 지도 모릅니다. 저희 SBS D 포럼을 기획하는 SBS 미래팀은 코로나 시대 속에서의 올바른 생존해법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따뜻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 구석구석 찬찬히 들여다보고 함께 이야기 나눠 보고 싶습니다. 다음 주 더욱 알찬 내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글 : 이종훈 기자 whybe0419@sbs.co.kr) 

<참고문헌>
Locust Avenue, masks on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To prevent influenza!)
Pandemic Influenza: The Inside Story
An electron micrograph showing recreated 1918 influenza virions


*** SBS 보도본부 미래팀의 취재파일은 <SBS D포럼>이라는 SBS의 대표 사회 공헌 지식 나눔 플랫폼을 중심으로, SBS 보도본부 미래팀원들이 연중 작성합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전하는 뉴스레터 <SDF 다이어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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