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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북 백신 지원' 논란 살펴보니…성사 가능성은?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 정총리도 진화 나선 '대북 백신 지원'

정부가 요즘 수위 조절에 부쩍 신경을 쓰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대북 백신 지원' 문제입니다. 지난 27일 정세균 총리가 외신기자 정책 토론회에서 한 발언과 그에 대한 추가 설명자료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예입니다.

"코로나19 백신 물량이 남게 된다면 제3국의 어려운 국가들 혹은 북한에 제공할 가능성을 닫아둘 필요는 없다"

당시 총리의 발언입니다. 일부 매체가 국내에서 접종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과 함께 이 발언을 기사화하자 총리실이 진화에 나섰습니다. 기자단에 별도로 '설명자료'를 배포했는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인도적 차원의 원론적 언급으로 아직 정부 내에서 검토된 바 없다"

가능성을 닫아 놓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은 원론적인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통일부도 지난해 11월 이인영 장관의 한 방송 인터뷰 이후 여러 차례 비슷한 입장을 내고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 보건 당국과 구체적 협의를 진행한 바 없음" (1월 23일)
"현 단계에서 정부 내 구체적 협의를 진행한 바 없음"(1월 28일)


대북 백신 지원 문제로 논란이 커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분위깁니다. 지난 25일 통일부 고위관계자는 "(이인영 장관이 지난해 11월) 부족할 때 나누는 게 진짜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방역 협력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과하게 받아들여졌다"는 평가도 내놨는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안전이 먼저" 아니겠냐는 겁니다.

다만 여지는 계속해서 남기고 있습니다. '현 단계'라는 전제가 붙었다는 점, 원론적 입장도 정부의 '메시지'라는 점을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통일부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문제는 남북 간 공동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한, 코로나19 백신 (사진=픽사베이, 게티이미지코리아)

● 실제 지원 가능성은?…전문가 3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부의 '의향'과는 별개로, 실제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도 이 문제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부 논란은 대체로 정부의 '의향'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후자 쪽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감염병 전문가, 북한 보건의료 관련 전문가 등 3명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대북 백신 지원,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이들은 아직은 불투명하다, 논란이 일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의학 전문가들조차 가장 우선적으로 지적한 것은 국민 정서입니다. 여론을 무시하고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취지입니다. 국내 백신 접종 시작도 안 된 상황인 만큼 원론적이라는 정부 설명이 타당해 보인다고도 평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다만, 이걸 제외하고도 변수들이 많다고 여전히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답변들을 토대로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직접 지원 방식? 북한이 안 받으면 성사 불가

"북한이 지금 (남측으로부터) 아무것도 안 받고 있다." (예방의학전문가 A)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 북한이 바로 받지 않을 것이다." (김신곤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


북한은 정부의 기본 입장이 발표된 이후에도 호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방역 협력이 '비본질적 사안'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기도 했습니다. 남북관계가 여전히 냉랭한 만큼 북한이 받겠다고 하지 않으면 어차피 줄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김신곤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은 북한이 명분을 중시한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시혜적 차원의 지원 메시지에는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밝혔습니다.

2) 백신도 종류따라…화이자는 어렵다

"(지원한다고 해도, 북한이 백신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A)
"-70도 대를 유지해야 하는 백신(화이자)은 (지원하기도) 쉽지 않다.
추가적인 보관 장비, 전기까지 보내야 해 조건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다."(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


백신을 주고 싶다고 해서 다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보관과 이동이 워낙 까다롭습니다. 낙후한 북한의 의료 시스템상 적어도 화이자는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익명의 전문가 A는 오히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 지원 가능성을 주목했습니다.

3) 가장 큰 변수는 '중국'

"가장 큰 변수는 중국이 다 지원해주겠다고 하는 경우이다. (그러면) 한국은 할 일이 없다.
(중국 지원 시에는 대북) 이니셔티브를 (중국에) 내주는 것이기도 하다"(신영전 교수)


중국이 지원하기로 하면 어차피 게임 끝이라는 주장입니다. 신 교수는 "중국이 남는 분량을 주겠다고 하고 북한이 이를 다 받겠다고 할 경우 북한은 (남측에서) 받을 필요가 없다. 당연히 안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제 백신의 부작용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어차피 부작용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이 신 교수의 지적입니다. 중국 백신은 보관 온도 문제가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4) 코벡스(COVEX, 국제백신공급체)를 통한 북한의 백신 확보

"(북한이) 코벡스를 통해 받으려면 받을 수 있을 것"(A)

"가난한 나라도 20% 맞도록 한 것은 (코벡스에 참여한 국가들 간의) 국제적 약속이다. (정부가)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서 북한을 지원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코벡스를 통하는 방식은 (북한을 특정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돈을 '뭉쳐서' 개도국 등에 주는 식이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

"(정부가) 코벡스를 통해 지원한다고 밝힌다면, (북한이) 쉽게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김신곤 이사장)


WHO에서 주관하는 코벡스 퍼실리티는 내년 말까지 개도국 등에도 인구 20%가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북한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백신 지원 20%는 코벡스를 통해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이곳에 기여하더라도 전 세계 가난한 국가 등에 지원하는 차원인 만큼, 북한을 특정해서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설사 특정해 지원하는 방식이 성사된다고 해도 북한의 수용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정부 기관들, 코로나 백신 먼저 맞게 해달라 요청

● '원론적 입장'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여건에서 정부가 원론적이나마 의사를 밝히고 있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요? 결이 좀 다른 답변이 나왔습니다. 국민 여론을 우선하되, 인도적 문제를 논의를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호의적 평가도 있었습니다. 반면 민간단체가 아닌 정부가 입장을 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지금 정부 발언은 "실제 구현도 안 되면서 (국내) 내부 정서도 안 좋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문제 제기가 나온 것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코벡스 참여 의사를 공표한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미국과 물밑 협의에 집중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정부 의향은 있어 보이지만, 의향이 있다고 해서 쉽게 실현되는 상황은 아닌 것입니다. 정부가 원론적 입장을 피력하고, 동시에 수위 조절에도 신경 쓰는 최근의 경향은 '대북 메시지'도 내고, 여론 악화도 막고 싶은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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