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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백신 남아서 걱정일 정도로"…바이든의 '백신 쓸어 담기'

백신 접종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

● 하루 6만 명으로 시작해 100만 명 돌파…왜 백신 접종 늘었나 설명 들어보니

워싱턴이 봉쇄되다시피 한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워낙 큰 기사여서 한동안 미국의 백신 접종 상황을 업데이트를 못했었습니다. 한숨 돌리고 접종 통계를 확인해봤더니 취임식 근처부터 하루 접종 건수가 일주일 평균으로 90만 건에 접근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신 출시 이후 지난해 연말까지 2,000만 회 접종을 약속했지만, 초기에는 하루 10만 회 채우기도 버거웠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런 속도로 어느 세월에 3억 명이 넘는 미국 인구를 다 접종할지 절망적이었던 분위기였습니다. 대선 패배 이후 국정에서 완전히 마음이 떠났던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정부는 백신을 개발해서 배포까지 다 했는데, 주 정부가 접종을 못해서 그런 거'라고 주지사들을 탓하며 자신의 백신 책임론을 피했습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보고 싶어서 오현성 애리조나 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오 교수는 애리조나와 멕시코 접경 지역의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진단 검사를 실제로 시행하고 있고, 이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까지 준비하고 있어 분위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애리조나 현장 상황을 중심으로 미국 백신 접종 분위기가 왜 바뀌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 교수는 가장 먼저 백신 보급 초기 연방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백신 접종과 관련해 연방 정부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기 때문에, 카운티나 주 정부가 독자적으로 나서기에는 매우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백신인 데다 접종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았던 게 초기 혼란의 큰 이유였다고 분석했습니다. 백악관 코로나TF 조정관을 했던 데보라 벅스 박사도 지난주 CBS 방송에 출연해 처참하게 실패했던 자신의 백악관 활동을 돌아보며, 트럼프 행정부의 좌우명은 연방정부가 지원하면 주 정부가 관리하고 로컬 정부는 집행하는 것이었다고 문제의 원인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주 정부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밀어 넣고, 말 잘 듣는 주지사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식으로 국정을 관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전체적인 접종 관리가 유기적으로 되기가 어려웠던 구조였습니다. 당장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려면 초저온 냉동고부터 주사기, 보호 장비 등 수많은 물품이 한꺼번에 준비돼야 실행 가능합니다. 하지만 인력이 얼마 되지도 않는 로컬 정부에서 이런 접종 필요 물품과 인력을 준비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대규모 접종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오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또 미국이 초기 접종 대상을 극히 제한했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우선 접종 대상을 현장 의료진부터 시작해 아주 좁게 열다 보니 실제 접종자 숫자도 아주 조금씩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접종 대상이 학교 선생님, 경찰, 65세 이상 노인 등으로 확대되면서 접종자는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도 접종 초기에는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사례를 생각하며 초기에 더디게 늘어나는 접종자 숫자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워싱턴 드라이브 스루 백신 접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오 교수는 최근 백신 접종의 폭발적인 증가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대규모 운동장 접종을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애리조나도 대형 운동장을 터서 10개 정도 차선 접종 라인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애리조나의 초기 접종률은 높지 않았지만, 운동장 접종이 힘을 발휘하면서 점점 다른 주들을 따라잡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운동장을 접종장으로 또 열고 대학 건물 등을 활용한 접종도 곧 시작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접종률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뉴욕도 운동장 25개 크기의 재빗 센터를 터서 대규모 접종을 시작했고, 미국 각 지역에서 이런 대형 접종장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백신 보급입니다. 대규모 운동장 접종을 하면서 백신이 부족해 예약이 취소되고, 추가 접종소를 열지 못하는 혼란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에도 전체적으로 백신 접종이 초반보다 크게 늘었다는 건 점점 체감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백신을 맞았다는 사람을 제 주위에서도 이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트럼프, 바이든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목표 높여 잡던 트럼프 VS 목표 낮춰 잡는 바이든

대통령 선거를 당장 치러야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얘기가 나오면 근거도 없이 목표를 과장하곤 했었습니다. 이미 지난해 9월에 연말까지 백신 1억 회 분을 배포하겠다고 호언장담했었고, 오는 4월이면 모든 미국인이 접종 가능할 거라고 예상한 적도 있었습니다. 전쟁같이 코로나를 겪고 있는 미국이 믿을 건 백신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과장한 면도 있지만, 선거를 의식해 너무 말이 앞서다 보니 트럼프 자체가 양치기 소년처럼 돼 버렸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말 취임 이후 100일 동안 하루 100만 회씩 접종해 1억 회 접종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하루 20만 회 접종을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라 5배나 실적을 올려야 했던 과감한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접종 실적이 올라가면서 취임 이후에는 이미 하루 100만 회 목표를 달성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진보 성향의 신문들까지 바이든 대통령이 너무 목표를 낮춰 잡고, 이를 달성하는 데만 집착한다는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26일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접종을 하루 150만 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슬그머니 목표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름이면 미국은 집단 면역으로 향하는 길에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이미 하루 150만 회 접종을 했다는 집계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 신문은 바이든 정부가 하루 200만 회 접종을 목표로 내걸어야 한다는 칼럼까지 실었습니다. 여러 가지 최악의 여건에서 시작한 바이든 정부임에 틀림없지만, 워낙 바닥을 찍고 취임을 해, 자신이 잘하기만 하면 앞으로 코로나 상황은 나아질 일만 남았다는 것도 바이든 대통령의 복이라면 복입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 "화이자, 모더나 2억 회 추가 구매"…백신 쓸어 담는 바이든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 제조사들과 연락을 해봤더니 단기간에 추가 생산이 가능하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살짝 언급했었는데, 어제 그 내용을 구체화했습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합쳐 2억 회를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고 계약 내용을 공개한 겁니다. 이 두 백신은 지금까지 4억 회를 받기로 돼 있었는데, 여기에 2억 회를 얹으면 모두 6억 회 분량이 됩니다. 미국 인구를 3억 명으로 잡으면 2회 접종씩 일단 전체 인구에 대한 접종이 끝난다는 의미입니다. 봄부터는 접종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접종을 할 수 있게 해서 여름 끝날 때쯤에는 전 국민 접종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860만 회씩 보급되던 백신은 적어도 1,000만 회씩으로 늘리겠다고도 발표했습니다. 적어도 공급량을 16% 이상 늘리겠다는 뜻입니다. 새로 추가되는 양으로도 거의 하루 150만 회 접종이 가능해집니다. 게다가 CDC 기준으로 어제까지 아직 접종하지 못한 백신 재고는 2,000만 회 정도 있는 상황입니다. 주 정부가 접종 계획을 잡기 쉽게 하기 위해 백신 보급 물량을 현행 1주일 전 통지에서 3주 전 통지로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되면 접종 예약을 하는데 혼선을 최소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 재난청 주관으로 대규모 지역 접종 센터를 준비하고 있으며, 전국 1,000곳이 넘는 대형 약국 체인에서도 2월 초부터 접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설 건축부터 접종까지 주 방위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고 모든 비용을 연방 정부가 보전해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대규모 접종을 위한 예산만 200억 달러(22조 원)를 책정해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여기에 FDA 긴급사용 승인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존슨앤드존슨,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곧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미국은 백신이 남아도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들이 여름 끝날 때쯤 백신과 의료 장비가 너무 많이 남아돈다고 질문해줬으면 좋겠다며, 그런 문제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로 미국인 40만 명 넘게 이미 숨졌다며, 미국은 전시 상황이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대안이 백신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방 정부의 영혼까지 끌어 모아 백신에 매달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출한 겁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 말고 다른 이슈에는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이 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면 백신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지금과 분위기도 사뭇 달라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바이든 정부의 백신 쓸어 담기를 미국 매체들은 환영 일색으로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진작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안 했다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자로서는 이런 미국의 움직임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생산에 한계가 있는 백신 확보는 제로섬 게임과 같을 수밖에 없어 어느 나라가 너무 많이 가져가면 다른 나라 보급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미 계약된 다른 나라 물량이 이번 미국의 추가 계약으로 바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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