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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부고◀ 본인상, 새해에도 떠나는 청년들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요즘 저는 낯선 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오는 게 참 두렵습니다. 첫 줄에 [부고 : 본인상]이 라는 문자를 무척이나 자주 받거든요. 지난 연말부터 올해 연초까지, 한 달 동안만 벌써 네 번이니 한 주에 한 번꼴로 받은 셈입니다. 며칠 전에도 문자를 받았습니다. 부고, 본인상,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이름이더군요. 아마도 업무 차 한두 번 뵌 분인가 보다. 또 한 분이 떠나셨구나, 새해벽두부터 세상을 떠나는 마음은 오죽했을까... 마음이 저릿했습니다. 그런데 카톡으로도 한 번 더 메시지가 오더군요.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툭- 풀리고야 말았습니다.

'아... 이 친구였구나. 이 친구가 떠난 거구나.'

양초 향초 (사진=픽사베이)

기억 속 저편에서 끄집어낸 그와의 기억. 5년 전쯤 저에게 상담을 받겠다며 지방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온 청년이었습니다. 참으로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청년이었지요. 두어 시간의 상담이 끝난 후 그냥 보내기 못내 아쉬워 차를 마시며 한참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20대 끝 무렵의 제가 했던 생각들과 꼭 닮아있는 꿈을 가진 청년이더군요.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 나처럼 사실은 살고 싶으면서, 희망이 없으니까,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까 차선으로 죽음을 택하려는 또 다른 친구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라는 꿈 말입니다.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랬어." 서로 손뼉을 치면서 몇 번이나 서로의 꿈과 미래를 그려보았지요. 우울증과 자살 시도의 늪에서 다시 올라와 상담을 업으로 살게 된 재열님을 꼭 만나고 싶었다고. 저도 님처럼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던 청년이었습니다.

그 시간, 그때의 표정과 눈빛들이 참 오래도 남았습니다. 딱 한 번 본 그를 자주 떠올리지야 않았습니다만 때때로 문득 그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부디 정말 그가 자신의 우울을 뛰어넘어 언젠가 나보다 더 좋은 상담가가 되기를. 내가 설 자리가 없을 만큼 성장해주기를. 그 모든 순간이 떠오르면서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 슬펐던 것은 이 눈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작년 한 해에만 20명 이상의 청년들이 '부고 : 본인상'이라는 문자로 제게 마지막을 알려왔거든요. 사실은 매 순간 울기도 지칠 만큼 울었습니다. 어떤 청년은 힘차게 내디뎠던 가게가 폐업한 뒤에 너무 많은 빚에 허덕여서, 다른 청년은 2020년만큼은 반드시 취업하겠다던 결심이 수포가 되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코로나로 인해 오래 겪어왔던 정신장애를 더욱 치료받기가 어려워져서, 각기 다른 이름만큼 다른 이유로 삶의 벼랑 끝 어딘가에 서 있다가 자신을 내던졌습니다.

저는 몇 달 전, 이 인-잇 칼럼을 통해 20대 여성 자살 시도율의 증가가 '20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곧 20대 남성, 30대 여성, 서서히 다른 연령과 성별로도 번져갈 '징후'일지 모른다고 서술했지요. 그러면서도 내심 아니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종식은 올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공감하는 지금.

'여름까지만 버티면 될 거야'라는 연초의 희망도, '이제 10여 명 대니까 곧 일상으로 돌아갈 거야' 초가을의 희망도, '2021년에는 잘 될 거야' 라는 연말의 희망까지도 무너져 버린 지금,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백신을 통해 코로나19는 서서히 잡혀 나갈지 몰라도 극단적 선택의 릴레이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걸요.

지금 당장의 아픔보다도, 이 통증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공포감이 짙게 배어버린 만큼,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지지기반이 약한 세대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이 현상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떠나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외면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인잇 국화 (사진=픽사베이)

이럴 때일수록 전문가 보다, 의료진 보다도 절실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힘입니다. 코로나19는 서로 일상에서 멀어져야 안전하지만 마음은 서로 마주해야만 보듬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듬어야 하냐고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떠오른다면 너무 늦은 밤이건, 오래 연락을 안 해서 어색한 사이이건 바로 메시지를 보내시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떻게 지내냐고. 당신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요. 어쩌면 그에게는 정말 필요했던 한마디일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그저 누군가가 떠올랐을 때, 그 즉시 안부를 물어주는 것. 그 작은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끝없는 동굴 속에서 그래도 살아가야 할 한 줄기 빛이 된다는 것. 그러니 우리 모두 서로를 위한 마음 돌봄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부디, 올해는 우리 모두가 몸은 멀어도 마음은 한 뼘 더 다가서는 한해가 되기를. 그래서 아무도 떠나지 않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장재열 네임카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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