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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반도 강타한 태풍의 날갯짓, 지구 반대편에선 산불로

코로나19로 악몽 같았던 2020년은 엎친 데 덮친 격 기상이변까지 많은 피해를 준 한해였다. 한반도에 최장 기간 이어진 장마도 장마지만,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태풍까지 찾아왔다. 불과 2주 만에 강력한 태풍이 3개나 올라오면서 어민들은 물론, 해안과 도심 속 시민들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

[0105 취재파일용_서동균] 사진1

기상이변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슷한 기간 지구 반대편 미국에선 전례 없는 산불이 발생했다. 서부에서 시작된 산불은 우리나라 크기의 20배가 넘는 면적을 태우며 수많은 이재민과 사상자를 냈다. 산불로만 10명이 넘게 사망했고, 오리건주에서는 50만 명이 넘게 대피해야 했다. 그 당시 오리건에선 3일 만에 서울의 6배가 넘는 면적이 소실됐다.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0105 취재파일용_서동균] 사진2

● 연이어 찾아왔던 강력한 태풍

지난해 8월 말, 제8호 태풍 바비를 시작으로 2주 동안 3개의 태풍이 찾아왔다. 바비를 제외한 나머지 두 태풍은 모두 한반도 상륙해 피해를 키웠다. 여름에 찾아온 이 태풍 3개의 공통점은 경로가 모두 남북으로 뻗어 있었고 강력한 힘을 가진 태풍이었단 점이다. 모두 초속 50m 가까운 '매우 강한' 등급까지 발달했는데, 제10호 태풍 하이선은 한때 초속 56m까지 발달하며 '초강력' 등급에도 도달했다. 강력한 에너지를 머금고 한반도로 북상한 것이다.

이렇게 세 번의 태풍이 연이어 한반도에 영향을 준 건 2000년대 이후 거의 처음이다. 지난 2019년 8월에 제8호 태풍 '프란시스코'부터 제10호 태풍 '크로스'가 연이어 영향을 줬지만, 프란시스코를 제외하곤 나머지 두 태풍은 일본과 중국에 상륙했다. 또 중심 풍속도 초속 30m 수준으로 50m 가까이 발달했던 올해보단 훨씬 약했다. 태풍이 연이어 찾아온 것마저 기후변화의 결과물로 보긴 힘들지만, 앞으로 이런 식의 강력한 태풍들이 또다시 연달아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

● 태풍의 나비효과?

태풍은 한반도엔 직접적인 영향을 줬지만,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미국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줬다. 우리나라가 태풍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무렵 미국 서부에는 산불이 번지기 시작했는데, 이 산불이 한반도에서 발생한 태풍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연구진들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발생한 태풍이 미 서부 지역의 산불을 키웠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오리건 지역은 맑은 날이 이어지면서 강수가 없었고 건조한 바람까지 불어 들어와 피해가 컸는데 태풍이 이 효과를 더 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한반도로 북상한 3번의 태풍이 한반도 상층에 부는 제트기류*의 흐름을 방해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제트기류는 상공 10km 부근에서 서에서 동으로 매우 강하게 부는 바람인데, 북상한 태풍이 제트기류에 영향을 줘 '서에서 동'으로 불어야 할 바람이 '남북'으로 흔들리게 된 것이다. 한번 남북으로 사행하게 된 제트기류는 지구 반대편에선 더 크게 흔들렸고 이 흔들림이 미 서부 지역에 안정되고 맑은 날씨를 강화시키는 고기압을 발달시켰다는 분석이다(그림 참조). 마치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면 수면 위의 파동이 점차 커져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반도에 찾아온 태풍이 제트기류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미 밝혀져 있었는데, 이 영향과 지구 반대편의 미국의 재난과의 연관성은 이번 연구에서 처음 밝혀졌다.

[0105 취재파일용_서동균] 사진3

▲ 빨간색 태풍 있을 때 제트기류, 파란색 태풍 없을 때 제트기류, 점선 실측 ㅣ 태풍의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빨간 실선처럼 굽이치는 모습, 이후 미국 서부 지역에서 능형태로 요동치며 고기압을 발달시킴 ㅣ 바비부터 하이선까지 갈수록 제트기류는 점점 더 크게 요동침

이렇게 고기압이 발달하니 산불을 없애줄 비구름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또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고기압성 바람은 오리건주 동쪽의 산맥을 넘으면서 서부 지역에 고온 건조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제트기류(Jet stream) : 대류권 상부에서 서에서 동으로 부는 풍속 30m/s 이상의 바람 l WMO 정의

● 태풍 오면 지구 반대편에 불나나?

당연히 아니다. 한반도에 찾아온 태풍이 지구 반대편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건 작년의 상황이 특수했기 때문. 첫째로 태풍 3개가 연달아 찾아왔고, 둘째론 태풍이 경도선을 따라 북쪽으로 반듯하게 북상해 제트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론 모두 '매우 강한' 등급 이상의 강한 태풍이었다는 점이다. 또 미국에서 이미 같은 기간 산불이 시작됐다는 것도 작년의 특수한 상황이다. 태풍 자체가 미국의 산불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기 때문.

분명 작년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또다시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 다른 기상이변을 겪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상기후들도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Jacob Stuivenvolt Allen*, S.-Y. Simon Wang, Matthew D. LaPlante, Jin‐Ho Yoon, "Three western pacific typhoons strengthened fire weather in the recent northwest U.S. conflagration" Geophysical Research Letter(2020), doi: 10.1029/2020GL09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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