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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숫자'가 과학…주말 사이 '유턴'한 일본 정부

스가 총리, 여행 촉진책 뒤늦게 중단

12월15일자 일본 신문 1면

일본 정부가 어제(14일) 열린 정부 코로나 대책회의에서 여행 숙박 비용에 최대 35%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여행 촉진책(이른바 Go To Travel 정책)의 일시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연말연시 기간인 12월 28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2주 동안 전국의 인구 이동을 최대한으로 막아보겠다는 겁니다. 완연한 '제3파' 감염 확산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지난 12일에는 하루 신규 확진자가 3천 명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하면서 기존의 '경제 양립' 정책으로는 더 이상 감염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여행 촉진책으로 감염이 확산되었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

스가 총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회는 물론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서도 위와 같이 얘기했습니다. 11월 초 감염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제3파'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고, 정부에 코로나 대책을 자문하는 '코로나 분과회'가 조심스럽게 여행 촉진책을 감염 확산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지만 일본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분과회 소속의 전문가(주로 의료전문가들입니다)들이 11월 20일에 공식적으로 여행 촉진책을 일부라도 중단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정부는 삿포로와 오사카를 목적지로 하는 여행, 그것도 '신규 예약'만 여행 촉진책의 혜택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분과회는 불과 닷새 후인 25일에도 "만약 여행 촉진책을 잠시라도 정지한다면, 감염이 확산되는 지역에서 출발하는 여행도 제외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그야말로 완곡하게 중단을 제언했지만, 이때도 정부는 삿포로와 오사카를 출발하는 여행의 자제를 '요청'하기만 했습니다. 이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12월 1일에 스가 총리를 만나 도쿄의 감염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며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했는데, 이때도 '고령자와 기저질환자는 여행 촉진책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애매한 발표만 나왔습니다.

두 번이나 제언을 무시당한 코로나 분과회는 지난 11일에 다시 정부에 여행 촉진책 일시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때도 '무조건 중단'이 아니라 감염 확산 지역의 단계를 세 개로 나눠서 확산 정도가 높아지거나, 계속 높은 상태를 유지하는 지역에서라도 여행 촉진책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했습니다. 분과회 입장에서는 정부가 아무래도 여행 촉진책을 대대적으로 손대려 하는 것 같지 않으니, 현재의 감염 상황이라도 제대로 반영해서 일부 지역에서만이라도 여행으로 인한 유동인구를 줄여야 한다는 일종의 '타협안'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날 스가 총리는 한 인터넷 언론의 생방송 대담에 출연해 "전문가들의 제안은 모두 듣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여행 촉진책이 감염 확산과는 큰 관계에 있지 않다고 본다"며 사실상 제안을 일축했습니다.

여행 촉진책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유지해서 경제를 굴러가게 하려던 스가 총리의 '고집'은 주말 사이 급변했습니다. 지난 5~6일 이틀 동안 실시된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서 여행 촉진책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78.2%로 높게 나왔을 때도 일단은 강행 의지를 밝혔지만, 13일자 마이니치 신문(每日新聞)의 여론조사(12일 실시)로 정부의 코로나 대책에 대해 지극히 싸늘한 시각이 만연해 있다는 게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마이니치의 여론조사에서는 여행 촉진책 중단 의견이 67%로 교도통신의 앞선 조사보다는 적게 나왔지만, 그 숫자보다 스가 정권의 눈길을 잡아 끈 건 내각 지지율이 지난 조사보다 무려 17%포인트나 떨어진 40%에 머물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스가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이번 마이니치 조사에서 "지지한다"가 "지지하지 않는다(49%)"를 밑돌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제안을 사실상 무시하고, 여행 촉진책을 전방향에서 두둔하면서 감염 확산으로 의료 붕괴가 임박한 지역에 한해서만 '찔끔찔끔' 수정을 가해 온 스가 정권에 대해 여론이 크게 '한 방'을 날린 셈입니다.
 
일본 코로나 속 거리

지금까지 '여행 촉진책이 감염 확산의 원인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과학적 증거'에 밑줄을 그어 온 스가 정권에게 완전히 뒤집혀 버린 지지율 수치야말로 움직일 수 없는 '과학적 증거'로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 스가 총리는 주변 측근들에게 연말연시에 여행 촉진책을 중단하면 어떤 여파가 생기는지를 물으며 생각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아베 정권 시절 7년 8개월 동안 관방장관을 지내면서 일본의 지역 관광 부흥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 온 스가 총리는 '웬만한 정도의 감염이라면 일단 경제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두자'라는 생각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감염 확산은 단순히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중증자·사망자의 증가와, 지역과 중앙을 막론한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어차피 이렇게 중단을 결정할 여행 촉진책을 지금까지 억지로 끌고 온 스가 총리의 책임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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