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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강요하고 '쉬쉬'…눈물 닦아줄 곳조차 없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울리는 '은폐와 외면'

<앵커>

성폭력 피해자 가운데 출소한 가해자와 한집에서 다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침묵을 강요당하고 사회에서도 외면받기 쉬운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정명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2살 때부터 9년간 아버지의 성폭력에 시달렸던 김영서 씨.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가해자의 손에 이끌려 임신중절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김영서/친족 성폭력 피해자 : 삶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그 어린애가 전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고.]

목사인 아버지는 협박과 폭행으로 딸의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대학진학을 탈출구로 여기고 미친 듯이 공부했지만, 수능시험 전날에도 학대를 당했습니다.

[김영서/친족 성폭력 피해자 : 수능(시험) 때만 생각하면 너무 눈물이 나는데 진짜 시험장에서 눈물이 계속 나는 거예요. 시험지를 받았는데 계속 눈물이 나고.]

가족들은 범죄를 외면했고, 힘겹게 대학교 1학년 때 상담교수에게 피해 사실을 처음 알렸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김영서/친족 성폭력 피해자 : 저는 처음으로 (외부)사람한테 이야기하면서 너무 힘들게 이야기했는데, (교수가) 엄마·아빠한테 전화해서 상담실로 불렀어요.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피해 상담) 하지 말라고.]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조제/친족 성폭력 피해자 : 너무 힘들어서 얘기했는데 '그냥 잊어버려라, 지난 일인데 어쩌니'.]

[정정희/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원장 : (피해자에게)검사에게 가서 '제가 거짓말했어요'라고 말하라고 시키는 부모도 있어요.]

매년 700건 넘는 친족 성폭력 사건이 집계되고 있지만, 이 숫자는 실제 발생의 5% 정도로 본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제3 자의 신고로 수사가 시작돼도 가족들이 피해자를 압박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받는 경우가 많아서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습니다.

[이은의/변호사 (성범죄 전문) :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가 접수되면 일단 이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감옥 갈 확률이 뚝 떨어져요.]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독립해 가해자를 신고하려 할 때쯤에는 공소시효라는 벽에 부딪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명아/친족 성폭력 피해자 : 가해 당했던 그 집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고, 그 방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요. 어디 가서도 얘기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 범죄를.]

공소시효를 놓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피해 내용을 담은 책을 내고 사회에 호소하려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친족 성폭력은 아동 학대처럼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장형윤/아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가장 심각한 형태의 아동학대라고 우리가 생각해야 하거든요. 그냥 괴물 같은 낯선 사람이 성적으로 아동을 유린하는 게 아니라 보호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인 거예요.]

미성년인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해 보호하려면 사실상 양육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전국에 4곳뿐인 친족 성폭력 피해자 쉼터에 국비로 지원하는 예산은 한 푼도 없습니다.

쉼터 운영비가 범죄피해자 보호 기금에서 지원되지만 재원도 불안정하고, 해당 기금은 국선변호사 수당이나 아동보호기관 운영비 등으로도 써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의진/연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 회장) : 피해자가 관련된 부분은 국비로 지원도 안 하고, 전문가도 갖춰 놓지도 않고, 계획도 없고, 이 성폭력 피해자들이 더 이상 숨어서 벌벌 떨지 않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제대로 된 지원 체제, 꼭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사진출처 : 한국성폭력상담소, VJ : 윤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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