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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유리가 쏘아올린 '비혼 출산', 빛과 그림자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얼마 전 방송인 사유리 씨의 뉴스가 큰 화제였습니다. 엄마가 되었다는 소식이었지요. 유명인들의 임신과 출산은 꽤 흔한 뉴스인데, 왜 화제가 되었냐고요? 그녀에게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자국인 일본에서 정자 기증을 통해 배우자 없는 '비혼 출산'을 한 것이지요. 한국사회에서 현행법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거부하는 경우가 다수라 사실상 어렵습니다. 사유리 씨는 처음에는 한국에서 정자 기증 및 시험관 시술을 받기를 원했지만, 모든 병원에서 내부 윤리지침을 이유로 거부했다고 말했고 이는 사실로 밝혀진 바 있지요.

어쨌든 그녀는 SNS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고, 이내 5만여 명이 넘는 대중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그녀가 '용기 있는 고백'을 해서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첫째, 엄마가 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바람이었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온 점. 둘째, 자연 임신이 어려운 나이와 신체 상태, 즉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셋째, 단지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 다급히 결혼할 수 없다는 확고한 주관이었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입장과 상황에서 충분히 숙고해서 내린 선택이었을 거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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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갑론을박을 벌이는 누리꾼들조차 그녀에게 우려보다 지지의 시선을 보낼 수 있었던 건, 그녀가 가진 엄마로써의 환경적 자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10여 년 넘게 꾸준히 보여준 사려 깊은 태도와 인성, 충분한 경제적 여건 같은 부분 말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제반 환경들 때문일까요? 그녀의 출산 소식은 단순히 한 연예인을 향한 축하 물결을 넘어 사회면, 정치면까지 전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의 비혼 출산과 한부모 가정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을 다시 바라보기에 이른 거지요. 가족구성권에 대한 담론에 다시금 불을 지핀 부싯돌이였달까요.

'정상 가정'이란 무엇인가? '준비되지 않은 엄마, 아빠 보다 충분히 준비된 1명의 양육자가 아동에게 더욱 건강한 것은 아닐까?'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OECD 국가 중에 한국만이 정자은행이 활성화 되지 않은 국가라며 여성의 자발적 가족구성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인식을 전복하는 것이라든가, 아이의 권리와 성장과정에서의 상처는 무시된 선택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더군요. 저는 어떠냐고요? '어떤 것이 최선일까' 아직은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나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내담자 청년들 다수, 대략 32% 이상이 '타인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정신적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던 것이 떠올랐는데요. 이런 한국사회에서 이 아이들이 과연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정서적으로 안전한 시선 속에서 자라날 수 있을지부터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각자의 의견들을 이야기하는 장이 열린 것 자체는 분명 긍정적인 기회일겁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다양한 편견과 시선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사회적 양육 환경에 대해, 그리고 '권리'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이 토론과 합의를 거치는 공론장이 된 셈이니까요.

다만, 진짜 걱정은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여론이 형성되고 난 후 정치권에서 보이는 대응이 그것이지요. 사유리 씨 개인의 출산을 정당 차원에서 축하하고, 이것에 대한 법 개정이나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것은 다소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해외 출신 방송인의 출산에 의해 제도 개선이나 법 개정이 논의되고 발의된다면, 그동안 비혼 출산권에 대해 말해온 수많은 시민들, 또는 비혼 출산 이후 삶의 여러 어려움을 호소해 온 당사자들은 허탈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시민들이 오랜 시간동안 개진해온 의견과 정책 참여의 목소리보다도, 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한 번'이 더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건 건강한 양상은 아닐테니까요. 언제나 큰 사건, 큰 이슈가 있어야만 그게 맞춰 '***법'을 만들어 왔다는 오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슈가 점화 되었을 때, 발 빠르게 만들어지는 '법안 그 자체'가 아닐 겁니다. 성급한 제도 개선 한 번에 수많은 부작용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마음이 다치는 수많은 아이들이 생겨나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만큼의 성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우선일 겁니다. 부디 빠르게 휘몰아쳐 준비되지 않은 사회인 채로, '사유리법'이라는 느낌으로 급히 무언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들도, 사유리 씨 본인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녀가 던진 화두에, 우리 사회는 어떤 걸음으로 변화해 나갈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빠른 입법이나 제도 개선이 아니라 충분한 숙의가 아닐까요?

장재열 네임카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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