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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태일 동생 전순옥 "50년이 지났지만…"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전순옥 노동사회학 박사 (故 전태일 열사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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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지난주 금요일이 고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였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노동 현장은 얼마나 바뀌어 있는지. 왜 50년이 지나서 우리는 다시 전태일 열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시죠. 전순옥 노동사회학 박사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안녕하세요.

▷ 주영진/앵커: 50주기에 참 많은 행사가 있었죠. 추도식도 있었고.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떠셨습니까, 마음이?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이번에는 50주년이었기 때문에 또 사회적 관심도나 이런 게 굉장히 많았고요. 지금 앵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다시 왜 전태일을 부르나. 그러면서 가족의 입장에서 50주년을 맞이하고 많은 사회적 관심을 이렇게 일으키는 걸 보면서 왜 그럴까?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이제 떠오르고 오버랩 되는 것은 50년이 지났지만 50년 전 노동 환경과 지금의 노동 환경이 많이 바뀌지 않았구나.

만약에 노동 환경이 많이 바뀌었으면 전태일에 대한 이런 이목이 크게 사회적으로 집중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50년 전하고 지금하고 똑같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노동자들이 외치고 있고 노동 시간을 단축해 달라고 외치고 있고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이러한 50년 전의 70년대에서 오빠가 했던 이야기를 똑같이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전태일이 50년 전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고 갔지만 아직까지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런 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전태일의 50주년을 맞이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순옥 인터뷰

▷ 주영진/앵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고 분신하셨을 때 그때 전순옥 박사님은 몇 살이셨어요?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저는 16살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다 기억하시겠네요?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다 기억하죠. 오빠하고 같이 공장에서 일도 했고 그리고 오빠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도 우리한테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또 우연히 오빠의 일기도 보게 됐고. 그런 여러 가지 상황으로 많이 기억도 되고 또 많이 알고 있었죠.

▷ 주영진/앵커: 우리는 지금 전태일 열사, 전태일 열사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태일 열사도 보통의 평범한 노동자, 청년이었으리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맞습니다.

▷ 주영진/앵커: 가족에게는 어떤 귀한 아들이고 또 다정한 오빠였을 것 같고.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오빠였고.

▷ 주영진/앵커: 어떤 오빠였습니까?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일, 제가 생각하는 오빠는 정말 동생들에게 부모와 같은 그런 오빠였고요. 그리고 또 참 오빠의 캐릭터를 지금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재미있는 코미디언?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읽은 책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거, 본인이. 그러한 것들을 우리 가족들한테, 동생들한테 얘기해 주고 또 동네에서 동네에 같이 살고 있는 아버지 친구, 어머니 친구, 오빠 친구, 제 친구들이 다 우리 집에 놀러 왔거든요. 그러면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 주고 아주 그러면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태일아, 이야기 좀 더 해 주라 이러고 놀러 와요.

그러면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 주면서 마지막에는 제가 일하고 있는 공장 이야기를 좀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공장에는 어떤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는지. 순옥이와 같이 저렇게 어린 여성, 어린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고 하루에 16시간씩 일하고 있고 점심도 못 먹고. 가끔은 정말 저녁도 먹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 제대로 밥도 못 먹고 그렇게 일을 하다가 보니 일의 16시간 노동 이런 것들에 과로한 것에 또 제대로 못 먹고 먼지가 많은 공장 안에서 일을 하다가 보니까 건강은 정말 나빠졌죠.

그래서 폐병이 걸리고 위장병이 걸리고 신경통에, 어리지만. 하여튼 그런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의 노동 현장이라는 것은 정말 죽음과 같은, 정말 많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 그때는 여성 노동자들이 80%였어요, 현장에, 생산 공장에. 우리가 중화학공업으로 넘어가면서 자동차공장들이 70년 중반에 오기 전까지는 사실 전부 현장에는 여성 노동자들. 나이도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 주영진/앵커: 저도 기억합니다만 미싱공 뭐 봉제공장 이런 데에.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그렇죠. 봉제공장에 가발공장, 신발공장 그리고 방직공장. 그런 공장에는 우리가 이제 수출을 많이 하는 그런. 뭐 수출이라는 게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서, OEM 방식으로 만들어서 납품하는 것이기 때문에 싼 노동이 많이 필요한 시대였죠, 그때는. 그래서 지방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모두 서울로 노동 현장으로 동원된 거죠, 그때.
전순옥 인터뷰

▷ 주영진/앵커: 그래서 전태일 열사가 그런 동료들 또 여동생 같은 동료들까지 생각하면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고 산화하신 뒤로 어머니 이소선 여사, 우리 전순옥 박사님의 인생도 크게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제 기억에도 이소선 여사가 민주화운동 현장에 늘 나오셨던 기억이 있고요.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그렇죠.

▷ 주영진/앵커: 전순옥 박사님은 노동하시다가 공부하셔서 노동사회학 박사도 하시고. 어떻습니까? 오빠 전태일 열사의 산화 그 이후에 가족의 변화 또 우리 사회, 우리 노동의 변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우리 가족의 변화는 대단히 컸다고 봅니다. 오빠가 저희의 주 수입자였죠. 그런데 오빠가 그렇게 되면서 우리 모두는 공장으로 더 다 나가서 일을 해야 했고 저희 어머니는 오빠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 현장에서 40년을 보내셨죠. 그래서 그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 어머니는 어디든지 가셨고. 그러다 보니 그때는 군부 독재, 박정희 군부 독재 하에서 매일 쫓겨 다니고 또 체포되고 또 구금되고 그러면서 거리의 투쟁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아마 거리에서 투쟁을 하시면서 정말 그 평범한 저희 어머니가 거리의 투사가 되신 거죠. 그렇게 인생을 바꿔놓으신 거고. 저희도, 저 같은 우리 식구 모두가 저도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가서 공부도 제가 해야겠다 생각해서 공부도 하고 그렇게 하면서. 그렇다고 해서 저는 뭐 오빠처럼 살아야겠다 그렇게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어머니처럼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은 못했고 저희 오빠가 그 암흑한 시절에 아주 자기 몸을 불살라서 굉장히 그 두꺼운 담이 이 사회에 이렇게 가려져 있었죠.

그리고 노동자들은 그 담 너머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러한 노동 현장에서 일을 했고. 그런데 그 몸으로 아주아주 조그마한 바늘구멍을 만들어놓으셨어요, 저희 오빠는. 그래서 어머니는 오빠하고 약속을 하고 나서 그 바늘구멍을 맨몸으로 크게 만드신 거죠. 크게 만드셔서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이 서로 볼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셨죠. 그게 바로 우리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그러한 것도 하게 됐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많이 바뀌는 그런 과정이 저희 가족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전순옥 박사님 말씀대로 전태일 열사의 분신 그 이후에 이소선 여사의 헌신. 이제 그 남은 일은 또 우리 전순옥 박사님의 몫이기도 할 것 같고요. 또 우리 정치권, 우리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우리 시청자분들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 보셔야 할 몫인 것 같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좋아하셨다는 노래, 우리 전순옥 박사님이 소개해 주셨는데 한번 같이 여러분과 함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친숙한 노래입니다.

전순옥 인터뷰

▷ 주영진/앵커: 전태일 열사가 이 노래를 자주 부르셨습니까?

▶ 전순옥/노동사회학 박사(故 전태일 열사 동생): 네, 이 노래 부르면서 막춤도 잘 췄습니다.

▷ 주영진/앵커: 전태일 열사, 어떤 면에서는 아주 크게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마는 말씀하신 것처럼 보통의 우리와 같은 분이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된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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