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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소방관들은 왜 베개를 자주 바꿀까

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 베개

최근에 어깨 부상이 있었다. 상반기 내내 전술훈련을 한다고 로프를 잡아당겼더니 양쪽 어깨가 나갔다. 한번 나간 어깨는 집 나간 며느리 마냥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꾸준한 재활로 돌아왔는가 싶더니 교통사고 현장에서 요구조자를 들다가 오른쪽 어깨가 또 나갔다. 돌아오기만 해라. 이번에 돌아오면 왼쪽 어깨가 보는 앞에서 아주 혼쭐을 내야겠다.

어깨 마사지를 위해 심실 안정실의 문을 빼꼼하고 열었더니 신입 소방사들, 일명 '사때기'들이 바닥에 벌러덩 배를 보이고 누워 있다. 이건 진짜 팀장님한테 걸리면 라떼 한 사발 감이다.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갔다.

"아니 반장님! 여기서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어~ 오셨어요?"

"이 시간에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아 반장님 저희 지금 베개 체험하고 있는 거예요."

바닥에는 신상 베개가 두 개 깔려 있고 소방서 신입들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몸을 옆으로 굴리며 자신들이 잠잘 때 취하는 시그니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옆 센터에 마동석을 닮은 반장님은 침침한 눈을 껌뻑껌뻑 하며 나를 반겼다.

"반장님은 아침에 안 피곤하세요?"

"저 지금 다섯 번째 베개 쓰는데요."

순간 소방서에 입사를 해서 나의 머리를 거쳐간 베개들이 생각났다.

1. 누군가 베었던 베개
: 반짝거리는 계급장을 어깨에 얹고 소방서에 온 첫날 야간근무였다. 아무 준비가 없던 내게 선배 소방관이 던져준 누군가의 베개.

2. 보급 베개
: 소방서가 생각보다 보급이 잘 나온다. 국민들의 걱정과 염려 속에 새로운 장비가 지급되어 새로운 베개도 신입 소방관들에게 들어왔다. 근데 좀 높다.

3. 라텍스 베개
: 태어나 처음 산 베개, 머리가 무거워서인지 너무 푹 들어간다.

4. 경추 베개
: 커다란 소시지가 왔다.

5. 메밀 베개
: 최근 내 승모근에 담을 선물해준 친구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인잇 심바 소방관의 베개

# 대기실

"형 잘 잤어요?"

"아니 귀에서 삐- 소리 나."

"미안해요 형. 근데 나도 형 때문에 좀 깼어요."

"어… 미안하다."

아침에 구조대장님실에서 일어난 두 코골이들의 흔한 대화다. 소방서는 야간근무 시엔 밤 11시까지 각종 일과가 정해져 있고 그 후로 아침 7시까지는 출동 대기 모드로 들어간다. 보통은 12시나 1시까지 자기 계발을 하며 기다리다가 대기실로 들어간다.

소방관들은 그렇게 모여서 대기실에서 단체로 취침을 한다. 4~5평쯤 되어 보이는 방에 3교대 팀원 전원의 캐비닛이 빼곡하게 벽을 두르고 있고, TV 한 대, 이불장이 있다. 소방서마다 컨디션은 제각각이다. 우리 구조대는 샤워실도 딸려 있고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신입 교육을 받을 때 1달 동안 지냈던 전북 외곽에 한 소방서 대기실은 커다란 공간이 벽으로 구획되어 있지 않고 캐비닛으로 파티션처럼 구조대, 경방, 구급대원 대기실을 나눠놓았다. 딱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소방관들은 나한테 이 이야기를 들으면 내 등 뒤에 있는 귀신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럼 다 같이 모여서 코를 곤다고요?"

그렇다. 문제는 우리 코골이들이다. 난 세상을 살면서 모든 상황엔 파레토의 법칙이 숨어있다는 걸 알았다. 8대 2 법칙. 백화점에서 20%의 고객이 백화점 총매출의 80%를 담당한다. 그 말을 대기실에 대입해보면 10명의 팀원 중 2명이 간밤의 소음 80%를 담당한다. 가끔 위력적인 예외도 있다. 이전에 생활했던 팀에 입사동기 박반장이 있었는데 난 간밤에 누가 착공기로 벽 뚫고 있는 줄 알았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옆에 자던 다른 반장님은 양반자세로 앉아 마음의 평화를 찾고 계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박 반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의 피부가 푸석푸석해져 갔다.

구조 1팀으로 옮긴 나는 내가 오기 이전부터 이쪽 팀에 코골이를 담당하던 동기와 함께 구조대장님실로 쫓겨났다. 딱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에 양옆으로 이불을 깔고 잠이 들면 그때부턴 창과 방패의 대결이 시작된다. 먼저 잠이 들어 상대방을 뚫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렘수면에 들기 전에 이놈의 공격으로부터 뚫릴 것인지. 치열한 수 싸움 끝에 매번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고 아침 이불을 갠다.

인잇 심바 소방관의 베개

# 구급대원

간밤에 꿈을 꾸었다. 장대비가 내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구조차가 뚫고 가고 있었다. 미친 듯이 내리는 비에 도로 옆 토사가 무너져 내려 나무고 흙이고 도로로 흘러나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나와 동기는 차에서 내려 구조차에서 삽을 꺼내어 흙을 떠내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허리가 끊어질 듯 삽질을 했던 꿈. 돈이 비처럼 내리면 난 삽으로 퍼담으려나. 퇴근하고 로또나 살까.

이불을 개고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 이런 신발. 신발에 흙이 묻어 있다.

아침 7시가 되면 소방서는 다시 활기를 띤다. 간밤에 삽질로 내 몸엔 활기가 없다. 하룻밤 사이에 지구의 중력이 세진 건지 아님 체중이 불은 건지, 출동 한번 다녀왔다고 발이 땅에 박히는 느낌이다. 사무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화장실로 가서 마대걸레를 하나 빨아서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안전센터 직원들이 뒷목을 잡고 대기실에서 하나둘씩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역시 가장 피곤해 보이는 건 구급대원들이다. 구급대원들의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간밤에만 몇 건씩 호출을 받고 구급차에 몸을 싣는다. 다른 소방차들도 도로 위에선 촌각을 다투지만 구급차만큼 신속하게 이동을 해야 하는 차가 또 없기에 교통사고에 항상 노출이 되어있기도 하다. 그나마 내가 있는 지역은 시골이라 출동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도심지의 구급대원들은 우리들 사이에서 진정한 소방관이라는 말이 나온다. 거의 잠을 안 자며 산다고 보면 된다.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경방 대원들이나 구조대원들은 화재가 나면 목숨 걸고 불길과 싸우는데 구급대원은 안전한 지역에서 기다렸다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만 하는 것에 불합리함을 느끼지 않냐. 정확히 말하지만 아니다. 이 사람들은 평소에 생명 에너지 깎아서 사는 사람들이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

인잇 심바 소방관의 베개

# 나의 일곱 번째 베개

심실 안정실에서 새 베개를 베고 이리저리 굴러보니 느낌이 괜찮았다. 마동석 반장님을 순간 꿈나라로 보내버린 걸 보면 이 베개의 곡선은 과학이다. 가까운 미래에 이 놀라운 과학을 체험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전부 주문을 해버리면 훗날 추가 구매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두 개를 더 주문해버렸다. 다음 주기에는 이 베개를 베고 잘 수 있다는 설렘에 야간근무가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여섯 번째 베개도 나에게 편안한 밤을 가져다 주진 않았다. 며칠 전 고향집에 다녀올 일이 있어 내가 소파에서 맨날 베고 자던 쿠션을 가져왔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과학보다 위대했다. 나의 일곱 번째 베개가 마음에 쏙 든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들에서 오는 피로감을 베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짧은 주기로 밤낮이 바뀌며 살다가 은퇴를 하면 일찍 죽을까 하는 염려도 조금 있다. 늘 삶이 불안정한 우리에게도 걱정 인형 같은 게 필요해서였던 거 같다. 일곱 번째 베개로 바꿔서 피로가 드라마틱 하게 사라지고 그런 건 없었다. 옆에 자는 동기의 콧구멍을 막는다고 해서 큰 변화가 생기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소방관들은 그렇게 산다. 다들 이럴 것을 알고 들어온 사람들이기에 후회도 하지 않는다.

자면서 듣는 출동 사이렌, 코골이들의 합창, 만족감이 없는 베개 등 온통 불편한 것뿐이지만 우리가 조금 피곤한 밤을 보내면 국민들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기에 기꺼이 그 잠을 청하려 한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음주운전 사고로 자다가 출동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인-잇 #인잇 #시골소방관심바씨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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