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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화 '내가 죽던 날'…김혜수 "에로∼로맨스를 넘어 연대의 시대로…"

[취재파일] 영화 '내가 죽던 날'…김혜수 "에로∼로맨스를 넘어 연대의 시대로…"
배우 김혜수·이정은 주연의 영화 '내가 죽던 날'이 개봉했습니다. 개봉 전 시사회에선 예상대로 김혜수와 이정은의 연기에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여고생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 여성 형사와 사건의 키를 쥔, 말 못 하는 섬주민의 역할. 두 배우가 아니었으면 쉽지 않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영화 비즈니스에서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사회 직전 지상파 TV들과의 인터뷰도 이뤄졌습니다. 박지완 감독과 두 주연배우가 모두 여성이라 관련 질문도 있었습니다. 김혜수는 우리 여배우들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생각을 차분히 풀어냈습니다. 한국 대표 여배우의 내공이 느껴지는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단순 홍보성 답변들은 제외. 일부 답변에 '첨언'을 붙였습니다.)

지상파 인터뷰 중인 김혜수

1) 이번 작품에서 배우로서 새롭게 시도한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이제 작품을 선택할 때 전작과 대비하거나 계획적으로 어떤 변신을 추구하기 위해서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아요. 매 작품이 새롭고 새로운 각오를 하죠. 저는 매번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데, 관객들 입장에선 계속 눈에 익은 배우가 연기하는 거잖아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작품에서 느껴진 대로…캐릭터에 대해 저희 팀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합의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위해서 집중하는 편이예요."

2) 이정은 배우와의 호흡은?

"이정은 씨가 저희 작품을 선택하신다고 들었을 때 정말 흥분이 될 정도로 기뻤어요.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선 작품을 통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연기 자체는 누구도 도울 수 없고 스스로 해내야 되는 것이지만, 그 팀으로 우리들이 함께 만나는 장소에서…그 시간, 그 인물들과 많은 것을 주고받게 되거든요. 이정은 씨는 배우로서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죠. 순천댁이라는 배역과 미묘하게 맞물려서 인물과 동일시될 정도로 굉장히 크고 따뜻한 면을 느꼈던 것 같아요."

순천댁(이정은)이 형사 현수(김혜수)를 붙잡고 있다.

3) 여성에 대한 우리 영화 속 서사가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나요?

"시대를 어느 시점으로 정하느냐에서 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20대, 30대, 40대를 영화랑 함께 했잖아요. 아, 10대 때도 연기했죠.(웃음) 제가 10대 때는…정치경제적 상황하고 영화가 전혀 무관할 수 없는데, 그때는 에로영화들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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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김혜수의 10대는 1980년대다. 애마부인(1982)과 어우동(1985)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7)는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1986년 김혜수는 16살 나이에 청소년 관람불가인 영화 깜보에 성인 배역으로 출연했다.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다시 인터뷰) "20대 때는 뭔가 신진 세력들이 영화계에 유입이 되면서 더 현실적인 로맨스물? 코미디물? 좀 더 밝은 영화들과 문학적인 작품들이 혼재했던 것 같고요. 그게 90년대까지 이어졌던 것 같고요. 그러면서 조금 더 여성 배역이 기능적인 데에서 벗어나서 정말 그냥 그 인물로서 무언가 얘기를 전달하거나 조금 더 주도적인, 주체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첨언] 1990년대는 안성기 박중훈 박신양 한석규 등 남자 배우들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전도연 최진실 심은하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들은 얼굴이나 몸매 대신 표정과 연기, 대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1990년대 최고 흥행 한국영화는 서편제(1993)였는데, 여배우 오정해는 서울에서만 103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전국적으론 그해 한국 영화 관객의 절반 이상을 서편제가 기록했다고 추정된다. 김혜수는 1993년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흥행에선 참패했다. 1995년 닥터봉으로 또다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닥터봉은 1995년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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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터뷰) "이후엔 심지어 느와르나 공포물이나 코미디물에서도 여성 캐릭터를 단순히 예측 가능한 재미를 위해 소모해버리는 캐릭터가 아닌, 반 발 정도는 앞서가는 걸 제안하는 역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건 뭐 여성 캐릭터의 성장만으로 보긴 어렵고요. 저변 인식들이 조금씩 더 성숙해졌다고 할까요? 그리고, 이를테면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조연이다' 이런 것보다 '얼마나 캐릭터로서 주체적인가?' 저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변화는 상당히 고무적이죠. 그건 남성 캐릭터도 마찬가진 것 같아요. 단순히 느와르 속 멋있는 주인공이었다가 지금은 스토리 내에서 인물의 서사가 있는, 좀 더 완성도가 있는 캐릭터들이 많아졌죠. 그 점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 속 이영애

[첨언] 김혜수의 답변은 더 이상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성별도 나누지 않는다. 2000년 이후 한국 영화 캐릭터들은 더욱 사연이 깊어졌다. 내면 심리는 강렬해졌다. 그럴수록 배우들의 연기는 빛이 났다. 공동경비구역(2000)의 이수혁 병장(이병헌), 살인의 추억(2003) 형사 박두만(송강호)이 그랬고,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애)…그리고 타짜(2006)의 정마담(김혜수)가 그랬다. 남녀 캐릭터 모두가 성장하고 변화했다.

영화 '타짜' 속 김혜수

(다시 인터뷰) "달라진 게 있다면 오히려 주변에서 이런 여성 캐릭터들, 여성 중심적인 것들, 여성의 연대들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게 아닌가 해요. 이번 '내가 죽던 날'에서도 얘기 속 중심인물들이 여성으로 많이 구성이 돼 있는데요, 그런 중심인물들이 서로 만났을 때 연대감 같은 것들이 상승하거나 폭발하는 지점이 있어요. 촬영 현장에서도 역할을 맡은 배우들끼리, 또 인간적인 면면에서도 연대감 같은 것이 굉장히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를 좀 줬던 것 같아요."

[첨언] 김혜수는 '연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제 여성 캐릭터들은 남자와 사랑하고 갈등하는데만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를 리드하고, 누군가와 협력하고, 누군가를 위로한다. 암살(2015)의 전지현은 남자 독립운동가들을 이끄는 가장 냉철한 리더였다. 기생충(2019)의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은 서사의 핵심 축을 담당했다. 마카오박(김윤석)과 뽀빠이(이정재) 사이에서 있었던 도둑들(2015)의 팹시(김혜수)가 오히려 올드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형사 현수(김혜수)는 같은 여성 경찰 민정(김선영)으로 조언과 위로를 받는다.

주인공 현수를 돕는 인물은 같은 여성 캐릭터 민정(배우 김선영)이다.

4) 코로나19 상황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는 뭐가 될까요?

"올해 1년 사이에 정말 예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죠. 우리의 일상이 크게 위협받았고, 굉장히 힘에 부치고 지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영화라는 게 주어진 시간 내에서 관객 분들께 기쁨 혹은 공감, 감동, 여러 가지를 줄 수 있는데, 이번 저희 영화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요란하지 않지만, 따스한 손길이 내 어깨를 토닥이는 느낌. 따뜻하게 말을 거는 느낌. 이런 것을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저처럼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영화 속에서 우리 삶의 어떤 단면을 그려내는 것이죠. 그걸 통해서 관객들은 나 자신을 느끼고, 주변을 환기하고, 또 함께 나아가게 되는 것…그게 바로 영화라는 매체잖아요. 영화 속 스토리가 꼭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를 통해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살아가는 걸 느끼고, 내가 놓쳤던 것들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받기도 하고요. 우리 삶 속에서 모른 척 하기에는, 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부분들을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속 경찰 정복을 입은 김혜수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즉석에서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변천을 체계적으로 답변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화에 대한 최종 평가는 관객들마다 다르겠지만, 김혜수가 한국 대표 여배우라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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