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테랑 오재원은 지난 7일 잠실구장 훈련을 마친 뒤 '주축 선수 중 예비 FA가 많은데, 이 멤버로 마지막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두산은 올 시즌을 앞두고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습니다. 기본 전력이 좋을 뿐 아니라 'FA로이드'가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FA로이드'는 FA 자격을 앞둔 선수가 마치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처럼 괴력을 발휘한다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올 시즌 뒤 FA 자격을 얻는 오재일과 최주환, 허경민, 김재호, 정수빈, 유희관 등 핵심 선수들이 'FA로이드'를 발휘하면 두산의 전력은 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김태형 감독도 올 시즌을 앞두고 내심 'FA로이드'를 기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지난 1월 시무식에서 "예비 FA 선수가 많다는 건 시즌을 치르는 감독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본인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되거든요. 다들 알아서 잘 하니까 걱정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 선수들과 올 시즌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해 성적을 내는 일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FA 선수를 잡는 건 시즌 끝나고 프런트의 역할 아닌가요"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압도적'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두산의 올 시즌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토종 선발 이용찬이 시즌 초반 부상으로 아웃되고, 설상가상으로 플렉센까지 부상을 당해 선발진이 무너졌습니다. 여기에 불펜진도 흔들리면서 시즌 중반 순위가 5~6위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화수분 야구답게 새 얼굴들이 전력 공백을 메웠습니다. 시즌 막판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한 두산은 정규리그를 3위로 마무리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가을야구를 시작했습니다.
가을야구를 앞두고 진짜 이별이 임박했다고 느낀 두산 선수단은 '최고의 기억으로 마지막 추억을 남기자'고 결의했습니다.
두 번째 FA를 앞둔 '맏형' 김재호는 "의식하고 있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좋은 멤버로 인생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야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제 고민이 되는 시기이긴 해요. 일단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추억을 길게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생애 첫 FA 자격을 얻은 허경민은 1990년생 동기 박건우, 정수빈과 뒷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허경민과 정수빈은 FA 자격을 얻어 셋이 함께 하는 게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습니다. 허경민은 "박건우가 최근 대화방에 사진을 올리면서 '끝까지 좋은 추억을 남기자'고 하더라고요. 살짝 찡하면서 고마웠어요.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기 때문에 한 경기라도 같이 더 하고 싶어요.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하면 더 바랄 건 없겠죠"라고 했습니다.
지난 1월 두산과 FA 3년 계약을 맺은 오재원은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입장입니다. 오재원 역시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솔직히 마음 속으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죠. (이번 가을 야구에 나서면서)가장 큰 동기 부여가 되는 것 아닐까요"라며 "선수들도 그래서 더 힘내는 거 같은데, 헤어질 가능성이 큰 선수들이 더 파이팅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진작 그렇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알고 있죠. 이별을 앞두고 있다는 건 힘들겠지만, 조금 더 힘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두산은 LG와 준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공격과 수비, 주루 등 모든 전력에서 한 수 위의 실력을 자랑하며, 지난 시즌 통합 챔피언의 위용을 뽐냈습니다. 기분 좋은 출발을 한 두산은 3위에서 시작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지난 2015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두산은 오늘(9일)부터 KT와 플레이오프 시리즈에 돌입합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