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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정(公正)의 정부라는데…방사청과 그 주변은 공정 아닌 내정

[취재파일] 공정(公正)의 정부라는데…방사청과 그 주변은 공정 아닌 내정
어제(4일) 대통령 비서실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운영위의 국정감사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문재인 정권이 공정과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노 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그 어느 때보다도 모든 법령에 근거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정부는 평등, 정의와 함께 공정을 앞세워 출범했습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힘주어 강조한 가치들입니다. 정부 출범 3년 반이 지났는데, 어제 노 실장은 공정의 목표 달성에 차질이 없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입니다.

이번 정부의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과 그 주변은 공정은 안 보이고 짬짜미 내정의 냄새가 가득합니다. 방사청 고위직들이 앞다퉈 퇴직한 뒤 전공과 거리가 먼, 노른자위 출연기관의 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공정한 공개 모집의 자리인데 내정됐다는 웅성거림이 곳곳에서 들립니다.

● 국방과학연구소장 내정됐나

먼저 국방과학연구소입니다. 자주국방의 자존심과 같은 곳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산 무기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손길을 거쳐 개발됐습니다. 현재도 미래 신무기 개발에 여념이 없는 한국 국방과학의 메카입니다.

남세규 현 소장은 12월로 임기 3년을 마치고 퇴임합니다. 현재 차기 소장 선발을 위한 공개 모집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서 접수는 13일까지입니다. 빼어난 국방과학자들의 경쟁이 될 줄 알았습니다.

지난 2일 게재된 국방과학연구소장 모집공고 중 응시 자격…방사청 고위공무원급이 추가됐다.

뜻밖의 초강력 변수가 생겼습니다. 느닷없이 응시자격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전에는 없던 '방사청 고위공무원급'이 응시자격에 추가됐습니다. 방산업계, 방사청, 국방과학연구소, 방산업계는 일제히 한 사람을 응시했습니다. 강은호 방사청 전 차장입니다.

강 전 차장은 지난달 28일 퇴직했습니다. 방사청의 2인자 자리인 차장으로 승진한 지 1년도 안 돼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니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 간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강 전 차장의 퇴직을 기다렸다는 듯 국방과학연구소장의 응시자격에 방사청 고위공무원급이 추가됐습니다.

누가 봐도 짬짜미 내정입니다. 국방 쪽을 주무르는 권력을 틀어쥔 자들이 차기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 강 전 차장을 내정한 뒤 규정을 손 본 티가 역력합니다. 내정에는 현재든 미래든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강 전 차장이 국방과학에 조예가 깊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순수한 행정 공무원입니다. 자의 반 타의 반 방사청장, 국방부 차관으로 거론되던 인물입니다. 방사청 관계자는 "방사청장, 국방부 차관 자리가 여의치 않으니까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 방향을 돌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국방과학연구소장이 '경력관리용 정거장' 정도밖에 안되는가"라며 탄식했습니다.

● 방위산업기술진흥연구소장은 누구 것?

무기체계의 품질관리를 책임지는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기품원이 방위산업기술진흥연구소를 신설합니다. 역시 현재 초대 연구소장을 공개 모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방사청 퇴직자가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강 전 차장보다 몇 주 전에 방사청을 퇴직한 사업부장급 간부 Y씨입니다. 방사청의 현직으로 외부 기관 취업이 안되기 때문에 퇴직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내정되지 않고는 멀쩡한 정부기관의 간부 자리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실이 방사청에 이와 관련해 서면질의를 넣었습니다. 국정감사가 끝나서 그런지 답변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기품원 모두 방사청의 출연기관입니다. 출연기관이라고 해서 방사청 고위직이 제 마음대로 부릴 수 없습니다. 연구소는 전문 연구원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특히 그렇습니다. 실패하면 손가락질당하고, 실수해도 욕먹으면서 무기만 개발하는 곳인데 낙하산이 내려꽂히면 연구원들 기운 빠져서 일 못합니다.

두 사람이 국방과학연구소장, 기품원의 방위산업기술진흥연구소장 공개 모집에 원서를 내미는 순간, 내정설(說)은 내정으로 거의 굳어집니다. 국방과학연구소장, 방위산업기술진흥연구소장으로 확정되는 순간,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신하는 공정의 정부 한복판에 내정이라는 불공정의 꽃이 활짝 피게 됩니다.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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