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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08년 조두순'과 '2020년 조두순', 우리 사회는 나아졌나?

이유있는 '조두순 포비아'

[취재파일] '2008년 조두순'과 '2020년 조두순', 우리 사회는 나아졌나?
"조두순이 근처로 온다는 말에 12년 전 그가 째려보는 눈빛이 떠올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조두순 사건 피해자 아버지]

오는 12월 12일 만기 출소하는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그가 출소한 뒤 안산 집으로 돌아옵니다. 조두순 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상처를 치유하면서 12년 동안 살고 있던 그곳 근처입니다. 당연히 피해자 가족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조두순 피해자 아버지는 조두순이 안산을 택한 걸 일종의 보복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래서 분노했고, 동시에 공포가 밀려온 듯했습니다. 조두순 사건 피해자 아버지가 언급한 '째려보는 눈빛'은 조두순이 재판 당시 피해자 가족들을 노려보던 그 눈빛을 뜻합니다. 피해자 주치의 신의진 연세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피해자 가족들에겐 반성과 사과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가해자 조두순이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12년 전 그 끔찍한 사건이 다시 어제 일처럼 떠오를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계속 인터뷰를 사양하다가 고민 끝에 SBS 뉴스토리팀 인터뷰에 응했던 조두순 사건 피해자 아버지는 12년 동안 뭐 하다가 이제와 응급 땜질식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제도 좀 바꾸려고, 이것저것 해보고, 여태까지 소리도 질러보고 했는데 크게 변화된 것도 없고, 진짜 하고 싶지를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이러는 건 피해자 한 사람이 분풀이하는 것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정부에선 할 일을 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거기에 맞는 법을 만들어야지. 이 1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뭐 소급 입법이 안 된다. 뭐가 안 된다. 이제 와 왜 떠들어댑니까?"
[조두순 사건 피해자 아버지, SBS 뉴스토리팀 인터뷰]


[SBS뉴스토리] 이유 있는 '조두순 포비아'

조두순 사건 피해자 아버지의 분통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2008년 조두순이 저지른 끔찍한 아동 성범죄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 사건 전까지는 한국 사법체계가 아동 성범죄 피해자의 시선과 인권에서 사건을 보고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조두순 사건도 그런 바탕 아래 검찰은 형법을 적용하고, 재판부는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심신 미약' 감경조항을 적용해 징역 12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자 국민적 분노가 폭발했고 인식과 제도가 조금이나마 바뀌게 됐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아동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절차가 따로 생겼고, 피해자 구조 기금이 만들어졌고, 법 개정을 통해 징역의 상한선을 높였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함부로 아동 성범죄자들을 감경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모두 조두순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분노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아동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들여다보는 전환점이 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췄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한 채 12년의 세월을 흘려보냈고, 이제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 성범죄자들의 출소 후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란 질문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조두순이를 어떻게 못 한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거기에 대한 모든 입법을 아주 촘촘하게 챙겨서 앞으로라도 아동청소년 성범죄자들을 출소 후 어떻게 할 것인가. 기존에 나와 있는 전자발찌니, 신상공개니, 이런 것도 더 강화시켜서 더 늘려 놓든지, 뭐라도 해야죠. 조두순에 한정해서 법을 제정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주 너무 답답하고 속이 터져서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거죠. 만에 하나 이런 법들이 없는 상황에서 아동청소년 성범죄자가 출소 후에 또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지는 건가요?" [조두순 사건 피해자 아버지, SBS 뉴스토리팀 인터뷰]

조두순 사건 피해자 아버지의 걱정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올 상반기에 벌어진 아동 성범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가해자는 조두순과 같은 해인 2008년 아동 6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역시 12년 형밖에 살지 않은 채 올해 상반기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출소한 지 불과 8일 만에 또 아동을 상대로 전자발찌를 찬 채 성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번에는 징역 18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피해자와 가족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은 뒤였습니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라고 돌리기에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들의 재범 건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SBS <뉴스토리> 취재팀이 법무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 확보한 지난 20년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현황을 보면 2000년 65명이던 재범 인원이 계속 증가해 2006년 100명을 넘었고, 2010년 243명, 2012년 315명, 2014년 401명, 2016년 506명을 넘어 2018년에는 569명까지 치솟았습니다. 재범률로 따져봐도 2015년 10%를 넘은 뒤 지금까지 10%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중입니다.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가 재범을 저지른 건수도 최근 4년 동안 매년 평균 60건 이상씩 벌어지고 있습니다. 재범 건수가 한 해 평균 60건 이상이지만 그나마 현실적으론 전자발찌가 거의 유일한 억제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자발찌 부착자를 감시하는 법무부 보호관찰관과 무도 실무관 인력은 감시 대상자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랍니다. 조두순이 출소해 돌아오는 안산 지역만 해도 110명의 부착자를 4명이서 관리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안산시청에서 청원경찰 신분으로 무도 실무관을 특채하고 경찰에서도 대응 팀을 마련한다고 밝혔지만, 만약 조두순이 이사를 간다면 그 인력들이 다 따라갈 수도 없는 일이고 조두순 못지않은 아동 성범죄자들이 출소해 사회로 돌아오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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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뉴스토리] 이유 있는 '조두순 포비아'

취재진이 만난 전직 무도실 무관은 담당 인원 3명이 6~70명의 전자발찌 부착자를 관리하는 지역에서 4년 반 넘게 일했는데 24시간 계속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인력 부족 문제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음주 제한 등 법원의 제한 조치가 있는 전자발찌 부착자들의 경우 그걸 위반해서 출동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 욕설, 난동 등이 벌어져 단속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런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막막하다고도 했습니다. 급하면 경찰에 지원 요청을 하거나 다른 지역 담당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여의치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최근 경험 많은 무도 실무관들이 그만두는 일이 많은데 경비 업무 경력 인정이 적용 안 되는 걸로 확정돼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적은 인원이 많은 대상자를 관리하려면 노하우가 있는 무도 실무관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거기에 공백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출소한 아동청소년성범죄자들을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바로 범죄의 중독성 때문입니다. 조두순을 면담한 적이 있는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는 "아동청소년성범죄자들은 중독 증상을 보이고, 처벌로 인해서 기회가 단절됐을 때 멈추는 것이지 본인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 가운데 조두순 출소 후 음주 제한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도 있는데 집에서 마신다면 그걸 어떻게 감시할 것이냐는 지적과는 별도로 술을 안 마시면 범죄의 습성이 안 생기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외적인 영향들, 조건들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여성,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공격성의 동기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분석입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재판 단계부터 아동청소년 성범죄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혹시 출소하더라도 보호수용제도와 치료수용제도를 통해 관리하는 이유에는 이런 범죄의 특성을 감안해 아동의 인권을 우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입니다. 영국과 스위스는 아동을 성폭행하면 종신형에 처하고 있고, 독일은 2011년 치료수용법을 만들어 기간에 제한 없이 약물치료와 보호수용제를 병행합니다. 전자발찌로 감독을 하는 것도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 등에선 가해자가 집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일정 기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조두순 집중 감시

사실 우리나라도 이런 보호수용제도 도입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8년 조두순 사건 이후 정부가 가해자의 영구 격리를 약속한 뒤 2010년 형법 개정을 통해 보호수용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에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의원 입법 형식으로 보호수용제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대와 19대, 20대 국회에서 모두 반대에 부딪혀 폐기됐습니다. 2014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보호수용제 반대 결정을 내놓기도 했는데 인권위 결정문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 회의록, 그리고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보고서 등을 봤더니 반대하는 이유는 거의 같았습니다. 크게 보면 이중처벌 등 가해자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 또 이미 형법 개정을 통해 징역형 상한이 높아진 상황이고 재판부의 양형도 달라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습니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지만 이미 형법 개정을 통해 징역형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2008년 조두순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겨우 바뀐 여건이 오히려 조두순 출소 후 관리를 위한 보호수용제도 도입의 반대 논리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조두순 출소 논란 이후 21대 국회에도 16건의 이른바 '조두순 방지법'으로 불리는 법안들이 발의됐습니다. 이 가운데는 보호수용제도와 관련된 법안들도 있지만, 해당 법안들 역시 발의 이후 논의의 진전은 없는 상황입니다.

조두순 사건 피해자 가족들은 불안과 공포를 못 견뎌 고민 끝에 안산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힘든 형편에 이사할 돈은 부족했고, 그렇다고 국가가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국민들이 나섰습니다. 12년 전 피해자 수술비를 모금했을 때처럼 한국폭력예방협회가 국민들에게 호소했는데 4천8백 명이 넘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2억 원 이상을 모아줬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쓰기보다는 '힘내라' '사랑해'라는 격려의 말을 입금한 사람 이름에 적은 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피해자 주치의 신의진 교수(한국폭력예방협회장)는 통장에 찍힌 이런 글들이 피해자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것 같아서 따로 책자를 만들어 전달하겠다고 말을 하더군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겪은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8년 조두순 사건은 국민들의 분노로 인해 한국 사법체계가 성범죄를 다른 범죄와 동급으로 취급하기 시작하는 계기였습니다. 아동 성범죄 피해자들을 조사하는 절차와 피해자 인권에 시선을 돌리게 된 전환점입니다. 그러나 조두순이 수감된 12년 동안 세상은 그리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디지털 성범죄 등 다른 유형의 범죄 행태까지 등장했습니다. 미국에선 단 2건의 아동 성 착취 영상을 올려서 600년 형이 선고됐지만, 한국에선 수만 건을 올려도 징역 1년 반이 선고되는 등 재판 결과를 둘러싼 논란도 여전합니다. 2020년 한국 사회가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보인 공포 반응에는 이런 현실을 보고 들은 국민들, 그리고 아동청소년 성범죄자들로부터 자신들이 보호받지 못한다고 여긴 피해자들과 잠재적 피해자들의 불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상징이 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출소에도 지금껏 제기된 아동 성범죄자 출소 후 관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2008년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국가에 던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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