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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백악기 · 마이오세는 알겠는데 '인류세'는 뭔가요?

#인류세 #자연계약 #공기위기

[취재파일] 백악기 · 마이오세는 알겠는데 '인류세'는 뭔가요?
세계의 일상을 바꾼 신종 바이러스, 인류의 '숨'을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재난과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 '인류세'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본 학자들이 있다.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SDF2020 <겪어보지 않은 세상: 새로운 생존의 조건>에서 3명의 교수가 '인류세'와 '자연계약', '공기'라는 얼핏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모를 키워드들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SDF2020을 놓치신 분들을 위해 혼자서만 알기엔 아까운 강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인류세'란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에 뚜렷한 변화를 만들었고 그 결과 새로운 지질시대가 시작됐음을 뜻하는 지질학적 용어이다.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박범순 센터장은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전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 상황을 인류세 관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인간 너머의 다른 생명체의 생존 위기에서 시작한 문제로 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BS D 포럼 2020 안서현 취재파일

박 교수는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언급하며 '페스트'는 단순히 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균과 쥐와 사람 사이에 형성된 미시 네트워크를 뜻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균-동물-인간' 사이의 미시적인 네트워크는 인간 집단 사이의 관계가 크게 변할 때 다시 발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글로벌 무역이나 식민지 정복, 침략과 약탈 등으로 만들어진 루트를 통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일어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경제·사회 시스템도 페스트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박 교수는, 팬데믹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존 방식에 변화가 일어날 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자연 발생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인간의 활동을 돌이켜 생각하는 중요한 계기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금 바로 이 시점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것은 온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장이라는 뜻이다. 박 교수는 우리가 이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꿈꾸기보다 거주 가능한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SBS D 포럼 2020 안서현 취재파일

이어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김홍중 교수는 '자연 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물질도 중요한 인류의 파트너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21세기는 이런 비인간들과의 전면적 계약이 요청되는 시대이며, 이산화탄소와 미세플라스틱, 항생제, 살충제, 환경호르몬 등의 물질과 사회가 새로운 계약을 맺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이러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동물과 식물, 미생물은 인간과 함께 지구를 물질적으로 창조해가는 '공생적 시민들'이며, 우리의 생존은 그들의 생존과 분리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비인간의 힘과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세계를 계약해 나갈 방법을 더 실질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20년 우리가 인간의 시대에서 생명 공존의 시대로 전환되는 문명적 과정을 체험하고 있고, 코로나19는 이 사실을 모두가 온 몸으로 체감하는 재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생명에 닥쳐오는 생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이제 사회계약을 넘어 자연계약의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랜 세월 우리를 지배해온 인간중심주의의 성찰을 제안한 것이다.

SBS D 포럼 2020 안서현 취재파일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전치형 교수는 현재 상황을 '공기 위기'라는 키워드로 바라봤다. 그는 폭염과 미세먼지,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뜨거운 공기, 더러운 공기, 위험한 공기가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바꿔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위기들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는 곧 '공기 관계'와 같은 말이 됐고, 공기를 어떻게 나눠 마시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공기를 재구성하는 것은 곧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새로운 과학 지식과 새로운 규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서로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으며, 공기 위기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공기 위기를 대응하는 방식도 국가별로 다르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공기 위기를 살아내면서 우리가 '공공의 과학', '돌봄의 과학', '연대의 과학'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기는 각자의 코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공기 위기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기를 공동체의 것으로 인식해야 하고, 이러한 '공동체의 공기'를 진단하고 관리하고 개선하는 일에 과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또 우리 사회의 약한 곳을 찾아내고 구멍을 메꿔주고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쳐 주는 '돌봄의 과학'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경을 넘나드는 공기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데이터와 장비와 사람도 국경을 넘으면서 함께 움직이는 '연대의 과학'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겪어보지 못한 '공기의 위협' 앞에서 혼란과 두려움이 있지만, 이를 통해 인류는 새로운 공동체와 과학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이렇게 다시 찾은 과학은 지금의 공기 위기가 지나간 다음에도 공동체 안에 남아 인류를 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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