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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법원, '한국형 구축함 기밀 유출' 현대重에 면죄부

[취재파일] 법원, '한국형 구축함 기밀 유출' 현대重에 면죄부
차기 한국형 구축함 KDDX의 기밀인 개념설계도를 훔치고 KDDX 본사업을 사실상 수주한 현대중공업에 대해 법원이 면죄부를 줬습니다. 훔친 기밀을 본사업 입찰에 활용했는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 판단입니다.

"기밀을 훔쳤을 뿐 활용하지 않았다"는 현대중공업의 논리, 이를 지지하는 방위사업청의 뜻을 법원이 전면 수용한 것입니다. 군사기밀을 훔치고 손도 안 댄 점을 인정한 판결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방사청은 법원 판단을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었는데, 이제 남의 눈치 안 보고 현대중공업에게 KDDX 사업을 통째로 넘겨줄 수 있게 됐습니다.

현대중공업의 KDDX 모형

● 현대중공업의 화려한 혐의

현대중공업의 해군과 방사청 기밀 유출 사건은 시쳇말로 역대급입니다. 내사를 벌이던 기무사령부가 지난 2018년 4월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의 특수선사업부 비밀 서버를 압수수색했더니 비밀자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해군과 방사청의 기밀은 26건 발견됐고, 접대 장부도 나왔다"고 기무사 수사 관계자는 말합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해군본부에 가서 도둑 촬영한 KDDX 기밀이 2건이고, 현대중공업 직원이 본사 흡연실에서 해군 장교로부터 건네받은 차기 잠수함 장보고-Ⅲ 기밀이 1건입니다. 다목적 훈련 지원정과 훈련함 기밀도 각각 1건씩 있습니다. 이외에 21건이 더 있습니다.

훔친 기밀 26건 중 16건은 유출 경위와 혐의자들이 특정됐습니다. 혐의자는 25명입니다. 이 가운데 현역 장교가 3명이고, 국방기술품질원 등 군 관련 민간인이 10명입니다. 현대중공업 직원은 12명이 연루됐습니다. 기무사의 후신인 안보지원사령부는 25명을 각각 군검찰과 울산지검에 송치했습니다. 단일 기밀 유출 사건으로 최다 송치 기록입니다.

현대중공업 도둑 촬영

● 그럼에도 불이익 안 받는 현대중공업

군검찰은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늦지 않게 진행했습니다. 한 장교는 2심 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어떤 장교는 1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 울산지검의 수사는 지지부진입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판결은커녕 재판이 시작됐다는 소식도 안 들립니다. 군 고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을 사서 수사와 재판 시간 끌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혐의가 인정되면 현대중공업은 함정 사업 입찰에서 감점은 당연하고 방위사업체 지정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혐의는 기밀 유출 장교들의 재판에서 모두 인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직원들 재판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에 불이익을 줄 수 없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현대중공업 직원들에 대한 최종 법적 판단이 나올 때까지 현대중공업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습니다. 역대급으로 기밀을 훔친 사실은 확정됐지만 그뿐입니다.

못된 방산업체들이 종종 쓰는 수법인데, 큰 죄를 짓고도 수사와 재판을 질질 끌어서 그동안 챙길 사업 다 챙기고 그 다음에 판결을 받는 식입니다. 죄지은 데 대한 벌은 피할 수 없지만 사업은 알뜰하게 챙기는 것입니다. 기밀들을 무더기로 훔치고도 무사한 현대중공업의 경우가 이와 같습니다.

● 법원 "불법 취득 자료, 입찰 활용했는지 인정하기에 부족"

서울중앙지법 제51민사부는 그제(27일) KDDX 입찰의 공정성을 따지는 가처분 신청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대중공업이 기밀을 훔친 혐의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KDDX 입찰이 공정하게 진행됐는지 전반을 살핀 재판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입찰은 공정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법원의 KDDX 입찰 가처분신청 결정문 중 일부

현대중공업이 기밀을 훔쳐간 행위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줬습니다. 재판부는 "제출된 소명 자료만으로는 참가인(현대중공업)이 위와 같이 취득한 자료를 이 사건 입찰에 활용하였는지, 채무자(방사청)가 참가인(현대중공업)에게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이 사건 사업에 대한 제안서 평가를 불공정하게 하였는지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현대중공업이 KDDX 기밀을 훔쳐간 것은 맞지만 KDDX 입찰에 활용했는지는 모르겠고, 방사청도 현대중공업 편을 들어줬다고 확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방사청은 국감에서 예고한 대로 가처분 신청 결과를 받아 KDDX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입찰이 불공정하지 않았다고 하니 현대중공업과 공식 계약을 체결하고 KDDX 기본설계와 건조를 맡길 것입니다.

법원 판단은 나왔지만 의문들은 풀리지 않습니다. 현대중공업은 KDDX 기밀 설계도를 훔쳐서 어디에다 썼을까요? 현대중공업 주장대로 그냥 비밀 서버에 소장만 했을까요? 앞뒤 사정 다 아는 방사청은 KDDX 입찰을 진정으로 공정하게 진행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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