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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거기 없었던 살인자 '사법피해자', 그들이 자백한 이유는?

'그것이 알고 싶다' 거기 없었던 살인자 '사법피해자', 그들이 자백한 이유는?
그들은 거기에 없었지만 왜 자백을 했을까?

24일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SBS 창사 30주년 특집으로 '세상은 나아지는가-1부 죄수의 기억; 그들은 거기 없었다'편이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6인의 살인자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이들은 각기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살인 혐의로 검거되어 짧게는 230여 일에서 길게는 20여 년 복역 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바로 사법피해자, 자신이 행하지 않은 범죄의 누명을 쓴 이들이었다. 이들은 왜 과거에는 자백을 했고 왜 지금은 결백을 말하고 있을까?

제작진은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취재를 하며 삼례 나라 슈퍼 할머니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이라고 밝힌 이와 마주하게 됐다.

스스로를 진범이라고 밝힌 배 씨는 과거에도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시관에서는 이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이들을 무혐의로 풀어주었다. 또한 이들은 당시 누명을 쓰고 자백을 한 이들과 함께 조사를 받기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삼례 나라 슈퍼 사건으로 형을 살았던 강 씨는 초등학교 동창 2명과 함께 만 18세에 체포되었다. 범인이 경상도 말씨를 사용했다던 피해자의 증언과 달리 강 씨는 전라도 토박이었고 현장 검증에서 이들이 밝힌 범행 정황은 상황에 전혀 맞지 않았다. 이에 강 씨는 "현장 검증에서 형사들이 순서대로 알려줬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백을 한 이유에 대해 "형사가 쓰라고 주는 것을 보고 진술서를 베껴 썼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지적 장애 5급으로 장애인 등록증까지 발급받았던 강 씨는 한글을 쓰는 것도 서툴렀다. 이에 어찌할 바 모르는 강 씨 일행들에게 모든 지침들을 알려주고 자백을 하게 도운 것은 형사였다.

최종 조사에서 강 씨 일행들과 함께 조사를 받았다는 배 씨는 "검사가 나가는 우리를 부르면서 감방 생활을 해야만 감방 생활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아마 자기들이 잘못한 걸 뒤집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했다. 그렇게 배 씨 일행은 자백을 했음에도 무혐의로 풀려났고 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났다.

그리고 지적 장애에 진술서를 쓸 여력도 없든 강 씨 일행은 폭력과 고문을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자백을 했다고 밝혔다.

15년 복역 후 출소한 춘천 여아 살인 사건의 정원섭 씨는 "무지하게 맞았다. 똥이 나오도록 맞았다"라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엄궁동 살인 사건의 장동익 씨도 물고문 등 감당하기 힘든 고문을 당했고 "살아야 진실을 밝힐 수 있으니 불러주는 대로 썼다"라며 강요에 의해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으로 형을 살았던 경진 씨는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그랬다"라고 고문이 없었음에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들은 수사기관을 통해 증거가 조작당하고 기억까지 조작당했다. 이에 정원섭의 아들은 "아버지가 징역 사는 데 내가 1등 공신이다"라고 했다. 원섭 씨가 살인죄 혐의를 입게 된 것은 당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연필 한 자루 때문이었다. 그것이 원섭 씨의 아들 것이라는 것.

그러나 이는 당시 목격자의 증언과 달랐다. 목격자는 노란색 연필을 보았다고 했으나 원섭 씨의 아들 연필은 하늘색 연필이었다. 이에 경찰은 원섭 씨 아들에게 하늘색 연필을 이로 깨물어보라고 지시한 후 돌려주지 않았고 그 길로 원섭 씨는 돌아오지 못했다.

특히 원섭 씨는 학생 시절 운동권이었고 10월 유신 선포 후 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이 연필 한 자루 때문에 사건에 휘말리게 됐던 것.

결백을 주장하며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한 이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왜 하필 나일까"라고 물었다. 이에 이들은 "사람을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했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에게 박했던 세상이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의 사건과 관련된 수사관들은 고문은 한 적도 없고 고문에 관여한 적이 없으며 자신들이 체포한 이들이 진범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고문 없이도 자백을 한 이들도 있었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재성 씨와 경진 씨가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고문이나 가혹 행위도 없었는데 자백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물론 그런 생각이 들 거다. 나 같아도 그런 생각 든다"라고 했다.

당시 이들은 보호관찰 대상이었다. 이들은 범인으로 지목당했고 수사관들의 "너희 빼고 모두가 자백했다. 여기서 너희만 아니라고 하면 가중 처벌을 받는다"라는 말에 자백을 했다. 특히 이들은 "충격을 받으면 스스로 기억을 지운다. 처음 사람을 죽여봐서 까먹은 거다"라는 수사관들의 기억 조작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에 재성 씨는 "그냥 다 지어냈다. 그 사건 날짜에 맞춰서 모두 꾸며냈다"라며 "조금이라도 이 사람에게 빨리 이야기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왜 태어났을까 싶었다. 돈도 없고 백도 없고 가족도 없고 도움을 못 받을 처지여서 너무 외로웠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살인 누명을 쓴 다른 이들도 거의 비슷한 입장이었다. 이들은 "어느 누구도 날 믿지 않았다. 환경도 어렵고 돈도 없으니 우릴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라며 "내가 가진 게 있었더라면 나를 이렇게 짐승 취급했을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가지지 못한 것이 죄였다"라고 했다.

실제로 취재진들이 만난 무고를 주장하는 이들은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 가출 청소년 등으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약자들을 비웃듯 법 안에서도 자유로운 가진 자도 있었다.

지난 2002년 청부 살인을 당한 하지혜 씨. 그를 살인 청부한 것은 대기업 회장의 부인 소위 사모님으로 불렸던 인물이었다. 당시 사모님은 자신의 사위와 하지혜의 불륜을 의심했고 이에 청부살인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조력자들과 함께 무기징역을 받게 된 사모님. 그러나 이 사모님은 호화 병동 생활을 하며 제대로 된 수감 생활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를 도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아 여전히 호위 호식하고 있었다.

누명을 쓴 이들은 이야기한다. "돈 많고 백 있으면 형도 안 받고 누명을 씌우기도 하잖냐. 드러난 사건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건이 훨씬 많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돈이나 권력이 있는 이들이 똑같은 죄를 지으면 자신들과 같은 취급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76%가량의 사람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실이라 말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사법 신뢰도는 OECD 37개국 중 37위로 최하위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고문을 해야만 사건 조작할 수 있는 것 아냐. 증거를 조작하는 게 현실이다"라며 "삼례 사건이나 엄궁동 사건 조사 기록만 봐도 답이 나온다. 하지만 스스로 원칙이 아닌 방법으로 수사를 한 것이 드러나면 자신들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에 그것을 묵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법권의 힘을 가지면 외부 세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나 스스로 소신을 지키고 중심을 잃지 않으면 된다라고 일침 했다.

과거의 끔찍했던 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살인자들, 그들은 똑같이 입을 모았다. 그들은 "내 자식에게는, 우리 이후에는 더 이상 억울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며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송은 우리의 법과 정의는 과거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여전히 법은 강자들의 편에 서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SBS 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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