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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뒷돈 받으셨다면서요?" 전쟁의 시작 ep.1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그 날은 회사와 계약 관계에 있는 B 대리점장의 교체 여부를 놓고 당사자를 면담하는 날이었다. 말이 면담이지 여러 평가와 실적을 근거로 교체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렇게 될 것임을 해당 대리점장도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나와 지점장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화를 끌어갔지만 면담 막판 그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말투로 그 정도 부족한 점은 내가 본사에 잘 말해주면 계약 연장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곤란합니다. 예전에는 그럴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어렵습니다."

"이해가 안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지사장님 힘으로도 안 된다면 안되는 거겠죠."

"그동안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재계약 못한다고요. 이것은 B 대리점장님에게만 해당되는 기준은 아닙니다. 두 달 전 C 대리점도 같은 이유로 계약해지 됐어요. "

"아! 맞다. 그렇죠. (입술 윗꼬리가 올라가며) 그런데 교체 과정에서 지사장님이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놀랐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뭐라고요? 누가 그래요?"

"모든 대리점장들이 그렇게 알고 있던데요. 아! 또 있다. 전에 어디 어디를 다녀오셨죠. 거기서 거하게 접대도 받으셨다는 소문도 돌던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얘기입니다. (지점장을 보며) 조만간 서면으로 계약 종료 통보해 드리세요."

"다시 고려 좀 부탁드립니다. (혼자 말이지만 다 들리게) 리베이트 받았다고 하던데…"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웃으면서) 무슨 말씀을요. 나는 이제 곧 그만 둘 사람이니까 주변에서 들은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쨌든 다시 고려 부탁드립니다."

"지사장님,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분노가 치밀었다.

면담을 끝내고 나니 분통이 터졌다. 동시에 '어떻게 이런 소문이 퍼진 거지. 알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대리점과 빈번한 교류를 하는 몇몇 대리점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무슨 일인지는 묻지 말고. 혹시 내가 대리점 교체하면서 리베이트를 받는다거나 누구에게 접대 받는다는 말이 퍼져 있나요?"

"아니요. 리베이트 얘기는 전혀 아닌데요."

"그렇죠. 정말 확실한 거죠?"

"예. 그럼요. 단지 특정 대리점에 자주 간다는 얘기가 돌기는 했어요."

"아, 그건 주요 이슈가 있어서 그런 거죠.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그런 것에도 오해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한동안 같이 자주 식사를 하긴 했으니까요."

대리점장들 모두 비슷하게 답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불쾌함과 억울함이 동시에 들었다. 그때 지점장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난 다소 언성을 높여 그 대리점장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지점장, 당신 저 점장이랑 관계가 좋았지?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가 있어. 이건 협박이잖아."

"제가 방금 따끔하게 말했습니다. 리베이트 운운한 것, 크게 실수한 거라고요."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누가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세요. 만약 대지 못하면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거라고 전해줘요. 저런 사람에게는 강하게 나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뭔가 흠이 있는 것으로 넘겨짚고 여기저기 유언비어 퍼트리고 다닐 겁니다. 본사에 거짓 신고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본사에 투서하면 잘잘못과 상관없이 골치는 아프겠네요. 저 점장 후임자로 선정된 대리점장이 좀 약하긴 한데. 어쩌지요. (조심스럽게) 계약해지 공문 보낼까요?"

"당연하죠. 당장 보내세요."

단호하게 지시는 했지만 염려도 들었다. 나는 결백하더라도 만에 하나 투서가 들어가면 어쨌든 조사가 나올 테고 그 자체로 불명예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번복하면 내가 뭔가 문제가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 되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냐는 말대로 내가 어디서 접대받는다는 얘기도 몇몇 대리점에 자주 들락날락해서 그런 억측이 생긴 것 아닌가.'

그러자 그동안의 내 업무방식에 대한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내가 언행을 잘못해서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이다. 대리점과는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라는 선배들 얘기를 무시한 것이 실수였다. 나는 과거 지사장이, 해당 지점장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자기는 대리점장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인 것처럼 했던 방식이 싫어 대리점장과의 스킨십을 자주 가졌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이게 내 발등을 찍는 셈이 되어버렸다. 대리점과의 관계 정립을 다시 해야겠다. 가급적 독대도 하지 말고.

이때 A 대리점장에게 전화가 왔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하기를 내가 리베이트 받는다는 소문은 아니지만 두 달 전 C 대리점 교체시 대체자로 추천되어 최종 회사와 계약한 사람은 바지 사장이고 실질적인 사장은 상당 기간 우리 회사와 같이한 D 대리점장인데 그것을 이렇게 되도록 설계한 사람이 바로 지점장이라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D 대리점장과 지점장 사이에 돈이 오고 갔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리베이트 얘기가 나온 것이구나. 역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그런데 왜 대리점장이 지점장이 아닌 나한테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냐고 얘기를 했을까? 지점장이 받은 것을 알 텐데. 왜일까?'

두어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 대리점장은 이 리베이트 사건을 누군가에게 듣긴 들었는데 돈을 받은 사람이 실제로는 지점장이 아니라 나라고 짐작할 수 있다. 조직 논리상 지역 내 최고 책임자를 건너 뛰고 지점장 혼자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나를 한번 걸어 본 것일 수 있다. 또 이런 추측도 가능하다. 대리점장이 리베이트 받은 사람으로 나를 지목한 것은 사실상 지점장에게 공개적으로 압력을 넣기 위해서다. '자신이 비리를 알고 있으니 지점장이 알아서 계약종료를 막아라'라는 지령을 공개석장에서 도발적이고 교묘하게 전달한 것일 수 있다.

그가 무슨 의도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실제로 C 대리점 교체 시 지점장이 리베이트를 받았느냐 하는 점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물러설 수없었다. 즉시 C 대리점장을 불러들여 긴 말 하지 않고 바로 질문을 찔렀다.

"혹시 바지 사장이세요?"

놀랍게도 C 대리점장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바지 사장이세요?"

"원래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바지 사장이 된 것 같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요. 내가 이쪽 일을 처음 하는지라 회사의 대리점 공개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할까 말까 주저했었어요. 나는 이 고민을 지원 서류를 제출할 때 지점장에게 얘기를 했죠. 그러자 지점장께서 D 대리점장을 소개시켜 주며 대리점 인수 이후 안정될 때까지 이 분에게 도움을 받으며 운영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했습니다. 이 방식에 힘입어 당시 응모를 했고 선정까지 되었지요. 공식적으로 대리점 인수를 받고 난 뒤 나는 D 대리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고맙게도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D 대리점장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제 경영까지 간섭하기 시작했어요. 빠진 인원에 자기 사람을 넣으면서 더욱더 조직을 장악했고요. 지금은 정말 바지 사장이 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퍼즐이 맞춰졌다. 이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D 대리점장은 예전부터 대리점을 더 확장하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확장 방식이 회사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여겼던 내가 그의 욕망을 몇 번 저지하자 그가 방법을 바꾼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는 한 자신이 대리점을 추가하긴 어려우니 지점장을 활용해서 이번에 공석이 된 대리점장을 초보자로 앉힌 후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결국 수렴청정하여 자기 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의혹 하나는 풀렸고, 제일 궁금했던 질문을 날렸다.

"리베이트는요?"
- 내일 2편에 계속 -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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