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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직장 관계를 망치는 기술, 그 이름 잔소리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지점장이 이번에 우리 지사에 배치된 신입사원을 데리고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반가움을 표하며 앉으라고 권했다. 어려워하는 그의 얼굴에서 열정과 약간의 두려움이 동시에 포착되었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한 뒤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 어려운 시국에 회사에 입사하다니 굉장한 실력자인가 봐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봅시다. 그런데 지점장, 이 직원에게 관리 업무를 부여한다고 했죠. 누가 멘토죠? 김 대리라고 했나? 김 대리도 들어오라고 하세요. "

김 대리가 들어오자 나는 과거의 아픈 기억, 그러니까 내가 멘티를 지도하다가 실패했던 경험담을 들려줬다.

"내가 대리 때였습니다. 당시 나도 김 대리처럼 신입 직원의 멘토로 선정되었어요. 멘토가 되었다는 설렘을 동반한 책임감은, 그가 나와 똑같이 늦은 나이에 입사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더 강해졌죠. 늦게 들어온 만큼 회사에서 빨리 인정받으려면 더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매우 엄격하게 대했답니다.

그런데 그 친구, 처음에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더니 어느 순간이 되자 엇나가기 시작했어요. 아마 그 발단은 출근시간 30분 전에는 나와서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가 그걸 자꾸 어겨 내가 못마땅해 할 때부터 였던 것 같아요. 심하게 꾸짖었죠. 하지만 그는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어요. 내 지적에도 헐레벌떡 출근시간에 딱 맞춰 오더니(가끔은 지각도 했고) 실망감과 괘씸함이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는 그가 미워지더라고요.

하지만 나는 그 싫은 마음을 뒤로하고 어쨌든 책임감을 가지고 이건 이렇게 해야 해, 저런 저렇게 해야 해, 하며 열심히 지도했죠. 하지만 이미 벌어진 간극은 메울 수가 없었답니다. 내 조언은 전혀 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어요. 결국 나는 불명예스럽게 멘토를 그만둬야 했지요. 물론 난 절대 내 잘못을 인정하지 못했죠. '이 신입 직원은 성격상 문제가 있고 우리 회사와도 맞지 않아 금방 그만둘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관계가 파탄 난 것은 100% 그 친구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그 때를 돌이켜 보니 그도 문제가 있었지만 나 역시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의 지나친 열정, 책임감 혹은 그에 대한 집착이 우리 둘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망친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김 대리"

그는 "알겠다"고 하더니 이내 궁금하다는 듯이 "그런데 그 직원이 누구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해 줬다.

"퇴사했지요. 하지만 그 직원 생각보다 오래 근무했어요. 대리까지는 다녔던 것 같네요. 어쨌든 그 직원, 주변 평가는 갈렸지만 능력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뤄서 부서 내 수작업으로 했던 많은 업무를 전산화시켰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어느 회사 팀장으로 있다고 최근에 들은 것 같아요. 결국 내가 그토록 걱정할 정도로 엉망은 아니었다는 거죠. 하하"

일행이 나가고 나서 난 나와 관계가 틀어졌었던 그 신입 직원을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몇 년 전에 그 친구와의 파탄에서 얻은 교훈을 정리해놓은 글을 찾아 봤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배우자를 대하는 방법이 우리나라와 서양인들의 경우 좀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편한테 "술 먹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늦게 들어오지 마라' 등 평생 잔소리인데 서양인들은 그런 싫은 소리 한두 번 정도만 한다고 합니다. 대신에 어느 선을 넘으면 아주 칼같이 남편과 갈라선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라도 일단 자기 구성원이 되면 처음엔 좋은 의도로 그 사람을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바꾸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팀장은 팀원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며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행동 및 사고 방식에 변화를 주고자 합니다.

사실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잔소리로 가정이 화목해지고, 팀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후배 직원이 더 빨리 회사에 적응을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 그런데 심한 잔소리쟁이들은 상대의 독특한 개성, 습관 혹은 생각마저도 바꾸려고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특히 자기 것에 애착이 심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죠. (…) 자신의 말이 진리가 아님은, 자신이 제시하는 길이 옳은 길이 아닐 수도 있음은 절대적 진리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의 기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지 정말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본성, 신념 혹은 이미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몸에 밴 습관 등, 도저히 못 고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정말 특별한 문제가 안 되면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호 간 무의미한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발전을 꾀할 수 있습니다.』

아픈 기억의 소환으로 마음이 씁쓸해져 기분 전환하고자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저쪽 사무실에서 신입 직원이 혼자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속이 상했다. '내가 잔소리하지 말라고 했다고 일부러 저 직원을 그냥 방치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점장과 김 대리를 불러서 나무라고 싶었다. 그런데 그들을 부르려는 순간 입을 얼른 닫았다. 왜냐하면 이것도 잔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난 지점장과 김 대리에게 신입 직원 교육에 관련된 할 얘기를 다 했다.

지금부터는 멘토인 김 대리가 판단해서 엄하게 하든, 친절하게 하든 신입사원을 잘 교육하여 회사에 적응시키면 된다. 그 신입 직원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것만 아니라면 굳이 내가 또 "왜 내가 말한 대로 하지 않아요?"라고 싫은 소리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것 역시 관계를 망치는 군더더기 말, 쓸데없는 말이다.

그의 교육 방법을 믿자.
분명히 김 대리에겐 지금 시대에 걸맞은 자기 나름대로의 교육 방법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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