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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작은 화단이 만들어 낸 큰 변화

김종대|건축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광주광역시 외곽에 있는 작은마을, 여느 마을처럼 평범해 보이는 마을이지만 이곳은 주민들의 민원이 그치지 않는 곳이었다. 민원의 내용은 마을 입구에 있는 술집의 취객들에 관한 것이었다. 취객들이 마을의 후미진 곳을 찾아 들어가 소변을 보는가 하면 먹은 것을 토해 놓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붙이기도 하고 구청에 민원을 넣어 보기도 했지만, 취객들을 쫓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자구책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취객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장소를 근본적으로 없애자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취객들이 전신주와 담장 사이의 후미진 곳을 실례(?)의 장소로 이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해당 공간에 화단을 만들어 막아보기로 결정했다. 주민들이 실천에 옮기면서 마을 안에 작은 화단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꽃을 채운 화단이 전신주와 후미진 담장 사이에 자리를 잡자 거짓말처럼 취객들의 볼썽사나운 행동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왼) 전봇대와 담장 사이의 화단이 골목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br><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오) 버린 변기가 예술품이 되었다. " data-captionyn="Y" id="i201468088"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904/201468088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마을 주민들은 이 신기한 결과에 신이나 화단 가꾸기에 더 많은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다. 화단 뒤로 쪼개진 타일을 사용해 벽화를 만들기도 하고 수리하고 버려야 할 양변기를 화분처럼 사용하는 예술창작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평범했던 작은마을이 녹색의 마을로 변화하자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생태도시로 알려진 쿠바에서 미국의 금수조치로 먹거리가 부족해진 시민들이 궁여지책으로 상자에 야채를 키우기 시작한 것처럼 자신이 사는 마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마을 화단이 이제는 마을을 상징하는 그린디자인 요소로 인정받고 있다.

(왼) '빗물 저금통'은 기능과 함께 조형도 흥미롭다. <br><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오) 우아한 방법으로 불법주차를 막고 있다" data-captionyn="Y" id="i201468089"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904/201468089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수원 행궁동의 어느 집 앞에는 낡아서 사용할 수 없게 된 카트를 이용해 이동식 화단을 만든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화단은 보기도 좋지만 차고 입구에 주차하는 얌체족들을 근절하는 효과가 있다. 주차를 막기 위해 타이어를 쌓아놓거나 낡은 의자를 두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근사한 방법인가? 이 동네의 다른 곳에는 하늘색 말굽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텃밭을 가꾸는데 필요한 조경용수로 사용하는 일종의 '빗물 저금통'이다. 비가 많이 오면 배수가 잘되지 않았던 지역이, 건물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담아두는 '빗물 저금통'을 통해서 배수량을 줄이는 동시에 천연자원도 활용하게 돼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게 되었다.

경기도 하남시의 석바대 상가는 젊은이들이 잘 찾지 않는 오래된 상가였지만 상인들이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환경개선의 노력으로 상가 골목에 색색의 우산을 걸었다. 하늘에 떠 있는 우산은 보기에도 좋고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며 밤에는 환하게 빛나는 우산이 거리를 밝혀주고 있다.

동네에 화단을 만들고 텃밭을 가꾸고 조형물을 세우는 일은 단순히 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역할만을 하는 게 아니다. 주민들이 공을 들여 가꾸는 마을은 크고 작은 범죄를 막는 효과도 있다. 이를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라 부르는데 길거리에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세워 두었더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깨진 유리창 사이로 차 안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차 문을 파손하거나 차 안의 비품을 훔쳐 가는 일이 발생해 결국 폐차가 되어버린다는 이론이다. 방치한 주변 환경이 취객들의 잘못된 행동을 유발하고 아무 데나 차를 세우는 얌체족을 끌어들인다는 이야기다. 거꾸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주변의 환경을 깨끗하고 보기 좋게 만들면 그만큼 범죄가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두웠던 밤하늘을 밝히는 우산이 상가를 찾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마을을 꾸미는 일이 일회성이고 효과를 얻을 수 없는 예산 낭비라고 지적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마을을 꾸미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겉치레의 사업을 했다면 예산 낭비이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선 사례처럼 동네에 화단을 만들고 말굽 조형물을 세우고 우산을 매단 것은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시작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 편집자 주 : 김종대 건축가의 '건축 뒤 담화(談話)' 시리즈는 도시 · 건축 · 시장 세 가지 주제로 건축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습니다. 격주 토요일 '인-잇'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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