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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문체부 'KOC 분리' vs 체육회 '결사반대'

[취재파일] 문체부 'KOC 분리' vs 체육회 '결사반대'
한국 스포츠의 해묵은 이슈였던 'KOC 분리' 논쟁이 다시 시작될 전망입니다. 대한체육회 대의원들은 어제(8월 31일) 대한체육회(KSO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를 반대하는 총회 결의문을 주요 스포츠 전문지에 광고로 실었습니다.

체육회 대의원들은 전문 체육과 생활 체육의 갈등 해소를 위해 2016년 통합 체육회가 출범해 이제 4년이 지난 시점에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기능 분리를 논하는 것은 또 다른 체육 단체 이원화라며 애초 체육 단체 통합 취지에 배치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국가 체육 정책의 불안감과 불신감을 증폭하고 체육인들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덧붙였습니다.

체육회 대의원들은 체육계 내부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강제로 체육회와 올림픽위원회를 분리하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독선적이라며 2024년 동계청소년올림픽 개최와 2032년 남북 하계올림픽 공동 유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2016년 통합체육회 출범 이후 잠잠하던 'KOC 분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1월 초 '조재범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성폭력 의혹 파문'이 터지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성폭력 근절 등 스포츠계 비리 척결 대책을 발표하면서 KOC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이로부터 7개월이 지난 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주도하는 스포츠혁신위원회(위원장 문경란)가 결국 '뇌관'을 건드렸습니다. 혁신위는 지난해 8월 22일 7차 권고안 발표를 통해 대한체육회에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임무를 수행하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혁신위는 "대한체육회는 연간 4천억 원에 가까운 예산 대부분을 정부와 공공기금을 통해 지원받고 있으면서 중대한 인권침해와 각종 비리 및 부조리에 책임 있는 역할을 못했다. 또한 2016년 국민생활체육회와 통합한 뒤에도 올림픽과 엘리트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혁신위는 이어 "대한체육회는 국가올림픽위원회로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내세워 국내 스포츠계의 대표 단체이자 공공기관으로서 요구되는 공적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마저 보였다"고 꼬집으면서 "대한올림픽위원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 헌장에 따른 독립성과 자율성에 기반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대한체육회는 스포츠 복지 사회의 실현과 엘리트 스포츠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올림픽위원회와 대한체육회 분리안을 권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권종오 리사이지징

스포츠혁신위원회의 '폭탄성' 7차 권고안이 나오자 대한체육회는 당일 오후 입장문을 낼만큼 신속하게 반응하면서 자율성을 침해하는 혁신위의 권고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명시된 대로 체육회는 정치적·법적 자율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내부 구성원(대의원)의 충분한 논의와 자발적 의사 없이 법 개정으로 KOC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비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혁신위 권고안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난 뒤 'KOC 분리' 논쟁은 다시 불붙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KOC를 분리하려면 국민체육진흥법을 고쳐야 합니다. 내년이면 사실상 현 정권의 임기 마지막 해여서 정부의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말까지 KOC 분리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체육계의 중론입니다. 대한체육회 대의원들이 올해 정기국회 개원일(9월 1일) 하루 전에 결의문을 발표한 것은 KOC 분리를 사전에 막겠다는 일종의 '선수'로 풀이됩니다.

그럼 문체부와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왜 'KOC'를 분리하려고 할까요? 반대로 대한체육회는 한사코 분리에 반대하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1. KOC는 '눈엣가시'

문체부로서는 KOC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대한체육회가 연간 4천억 원 정도의 예산을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는데도 지금까지 무슨 잘못이 있을 경우 <IOC 헌장>에 따른 KOC의 자율성을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며 'IOC 우산' 아래로 숨었다는 게 문체부의 시각입니다. 만약 KOC가 떨어져 나갈 경우 대한체육회는 IOC와는 어떤 관계도 없는 단체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문체부는 대한체육회를 사실상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IOC가 대한체육회 문제에는 개입하거나 간섭할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KOC가 분리될 경우 대한체육회장은 정부(문체부)가 선호하는 사람을 앉힐 수도 있습니다.

2. 이기흥 회장 '힘 빼기'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은 대한올림픽위원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또 현직 IOC 위원이기도 합니다. 이기흥 회장을 싫어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한 사람에게 체육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체육행정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내년 1월 중순에 열리는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이기흥 회장의 재선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도 하고 있습니다. KOC 분리가 되지 않으면 대통령도 체육회장을 해임할 수 없습니다. 체육회장이 KOC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해임할 수도 없고 강제로 해임할 경우 IOC 헌장에 위배될 소지가 큽니다. 반대로 KOC가 분리될 경우에는 한 사람이 대한체육회장과 KOC 위원장을 겸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스포츠 권력이 분산된다는 게 KOC 분리 추진론자들의 주장입니다.

3. KOC 분리는 '따로국밥'?

KOC가 보유할 수 있는 핵심 권한은 국가대표 육성-선발 권한과 국제대회 파견 권한입니다. KOC가 분리될 경우 2가지 권한을 모두 부여하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국가대표 육성-선발 권한은 쉽게 말해 충북 진천선수촌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결부됩니다. 문체부의 생각은 KOC에는 파견 권한만 부여하고 육성-선발 권한, 즉 선수촌 통제권은 대한체육회에 그대로 남겨 정부의 지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KOC는 사실상 2~3개 부서에 인원 20명 정도로 구성된 '힘없는'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관련해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체육회 예산의 대부분을 진천선수촌에서 쓰고 있다. 문체부가 '선수 육성 따로, 파견 따로'를 내세우며 KOC에 진천선수촌을 넘기지 않겠다는 것은 쉽게 말해 '알짜배기'는 자기들 발아래 두면서 KOC를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의도"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4. KOC 분리, 꼭 해야 하나?

다른 나라의 스포츠 행정 구조를 보면 미국의 경우 'USOC'가 독립된 단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JOC'로 독립돼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우리나라처럼 통합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자 그 나라의 상황에 맞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KOC를 분리할 경우 원칙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USOC'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본 'JOC'의 경우 전체 비용의 약 절반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KOC가 분리될 경우 자체 예산 마련이 쉽지 않아 결국 거의 대부분의 비용을 국가가 지급해야 합니다. KOC가 분리되더라도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실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반드시 KOC를 분리할 필요가 없고 분리하더라도 그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게 상당수 체육인들의 견해입니다.

한국 스포츠는 2019년 1월 이른바 '조재범 코치 사건' 이후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숱한 대책이 나왔지만 지난 6월 고 최숙현 선수의 비극을 막지 못했습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급선무는 폭력, 성폭력, 입시 비리, 음주, 도박 등 온갖 고질적인 문제점을 일소하고 새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런 산적한 과제는 제쳐놓은 채 KOC 분리 싸움으로 날을 샐 시간적 여유는 없습니다.

대한체육회와 체육인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이를 급히 강행해야 할 명분과 타당성도 아직까지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합의가 되지 않는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KOC 분리를 밀어붙일 경우 소모적인 갈등과 분열만이 끊임없이 생길 것은 자명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를 비롯한 우리 체육인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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