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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근데 상사랑 왜 싸울까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이유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직장인들은 정신적인 갈등을 겪게 마련인데 대체로 자기 스스로를 버리고 회사 방침을 따른다. 진실을 알아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까닭에 목숨을 거는 것보다 차라리 그냥 회사 방침을 따르는 게 더 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억누르고 조직의 명령을 따르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자괴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의 펀치는 굉장히 강한 '핵 펀치'이다. 일단 맞으면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한두 번 버티다가 결국 휘청거리며 쓰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랏일도 아니고 회사 일을 하면서 직장인들이 신념의 충돌에서 오는 자괴감의 핵 펀치를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말 특별한 경우 아니고서야 본인과 회사 간 신념의 차이는 오십보백 보이니까. 하지만 나처럼 고집이 센 사람은 이 오십보백보 차이에도 공개적으로 반발을 한다든지, 분에 못 이겨 혼자 가슴을 쾅쾅 치든지 하는 격한 반응을 한다. 사실 멍청한 행동이다. 그래 봤자 돌아오는 것은 결국 손해밖에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 처할 경우 나는 종종 '왜 직장 생활을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곤 했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나는 왜 직장생활을 하는가.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이라는 것이 있다. 알만한 사람은 아는 행정학의 고전 이론으로 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내재적 필요에 의해 5가지로 나누어 구분했다. 욕구 피라미드의 맨 밑에는 1단계인 생리적 욕구, 그다음 2층에는 안전 욕구, 3층에는 소속과 애정의 욕구, 4층에는 존중(자존)의 욕구, 마지막 5층(5단계)에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자리 잡는다. 이 욕구들은 밑단의 욕구가 채워지면 다음 단계의 욕구로 발전되어 가는 것이 기본이나 사람에 따라서는 1단계에서 3단계로 바로 급상승하기도 한다. 각 단계별로 욕구의 내용을 간단히 보면 아래와 같다.
 

1. 생리적 욕구
숨 쉬고, 먹고, 자고, 입는 등 우리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이 포함된 단계이다.

2. 안전 욕구
신체적, 감정적,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이다. 각종 위험, 사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있기를 바란다.

3. 소속과 애정의 욕구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 어느 한 곳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친구들과 교제하고 싶은 욕구, 가족을 이루고 싶은 욕구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4. 존경(자존) 욕구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명예욕, 권력욕 등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그런데 존경 욕구 중에서 더 높은 욕구는 역량, 통달, 자신감, 독립심, 자유 같은 자존감이다.

5. 자아실현 욕구
최고 수준의 욕구. 모든 단계들이 기본적으로 충족돼야만 이뤄질 수 있는 마지막 단계로 자기
발전을 이루고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극대화할 수 있는 단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왜 직장생활을 하는가'에 대한 답변 대부분은 이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맞춰서 범주화 할 수 있다.

1. 생리적 욕구
기본적으로 먹고 입고 잠자기 위해서 일한다. 가족이 생겨 아이가 태어나면 이것에 더해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일한다. 돈이 필요해서 일하는 격. (목구멍이 포도청)

2. 안전 욕구
상사의 폭언, 폭설 및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한다. 더러워서 일하는 격.

3. 소속과 애정의 욕구
잘리지 않기 위해 일한다. 특히나 지금 같은 불경기 시대에 회사에서 나가면 어디 갈 곳이 없다. 나가면 고생하고 무시당하니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격.

4. 존경(자존) 욕구
"잘 나간다"는 말을 듣기 위해 일한다. 일차 진급, 최우수 직원 표창, 엄청난 성과급 등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우러러보게 하는데 이런 명예 및 권력에 한번 맛 들이면 자기 파괴를 무릅쓰더라도 열심히 일을 한다. 칭찬 혹은 인정받기 위해 일하는 격.

5. 자아실현 욕구
자신이 가슴에 품고 있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을 한다. 혁신적인 상품 개발, 획기적인 업무 개선, 직장 내 정의를 실현 등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일한다. 너무 즐겁고 흥분되어 자발적으로 일하는 격.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몇 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을 하는 걸까?

현실적으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나이 먹고 욕먹기 싫어서, 잘리면 안 되니까' 등의 항목이 나를 일하게 만드는 모멘텀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런 하위 단계의 욕구 충족을 위해 일한다면 왜 특정한 명령에 대해서는 회사와의 생각의 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사와 언쟁을 벌일까? 또 왜 부당한 지시에는 대놓고 반발은 못할지언정 소극적이라도 저항을 할까? 가늘고 길게 가려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데 말이다. 혹시 이런 행동의 기저에는 매슬로우의 4단계 욕구 중 더 높은 단계인 역량, 통달, 자신감, 독립심, 자유 같은 자존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내가 가슴에 품고 있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나만 이런 것은 단연코 아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겉으로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고 투덜거리지만 다 마음속으로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또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일을 한다. 행동이 요란한 사람은 직원들 앞에 서서 시끄럽게, 행동이 조용한 사람은 뒤에서 본연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간혹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피치 못하게 현실에 굴복했더라도 자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말아야겠다. 어쨌든 그 속상한 경험마저도 앞으로 높은 단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거쳐가는 하나의 통로일 테니.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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