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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외과, 산부인과는 열심히 일 할수록 적자예요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의사들이 부족한 건 사실이잖아? 대학병원에 가면 항상 대기시간은 길고 짧은 진료만 보고. 드라마에서도 다큐에서도 격무에 시달리는 이야기만 나오면서…' 최근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부족한지 아닌지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 속에 자주 보이는 반응이다.

그렇다. 의사들의 노동 시간이 지나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의사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며, 돈독이 올랐기 때문도 아니다. 대학병원에서 정해진 월급을 받는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그렇게 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걸까? 야근 수당도 없는데.

10년 전 흉부외과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서울 강남의 대학병원 흉부외과에는 교수님이 여럿 계셨고, 인턴은 둘, 레지던트는 딱 한 분이 있었다. 심혈관 파트에는 교수님들을 제외한 의사가 나 혼자였다. 그 한 달 동안 집에 두 번 갈 수 있었다. 야간응급수술이 정말 자주 있었는데, 죽음 직전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왔다. 그 분야 최고 명의인 교수님께서 병원 바로 옆에 거주하시면서 24시간 응급 환자들을 다 받아냈기 때문이다. 수술 준비를 마치고 수술실 앞까지 환자를 모셔드리고 나면 내게 잘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찾아왔다. 물론 시간을 가리지 않고 병동에서 걸려오는 전화들에 수면 유지가 잘 될 턱이 없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새벽, 평상시처럼 수술실까지 모셔드리던 한 분이 수술실 문 바로 앞에서 죽음의 강을 건넜다. CPR과 복부대동맥 수술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교체 인력 없이 혼자서 심장압박을 하던 내가 졸기 시작했고, 화가 난 교수님은 내게 당장 나가라고 했다. 당연히 정신차리라는 의미의 그 말을 만성 수면 부족 상태이던 내 뇌는 잘못 해석했고, 좀비처럼 걸어 나가 수술실 밖 탈의실 바닥에 쓰러져 잤다. 너무도 다행히 수술은 별 탈 없이 잘 끝났지만, 난 꽤 오랫동안 자괴감을 느꼈다. 의사로서 책임감이 부족한 걸까? 그런데 분명 내 탓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남극의 추위 속에서 잠들며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사람의 약함을 탓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의 의지력이 아닌, 살인적인 날씨이니까.

지금 이 순간 '그 봐! 역시 의사가 부족하니까 환자가 위험에 처하잖아! 의사를 확 늘려야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또는 '얼마나 사명감이 없으면 그 상황에 잠이 드는거냐!'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께 부탁드린다. 제발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아니라 근본 원인에 대해 한 번만 생각해 보시길.

내가 그토록 지쳤던 이유는 레지던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흉부외과에 안 갈까? 의사들이 모두 돈만 밝히고 사명감이 부족해서?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뒤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안 가는 곳에 살신성인의 자세로 들어가 4년 동안 병원에 살며 많은 생명을 구하고 나면, 그 뒤엔 흉부외과 의사로서 수술할 곳이 없다. 10년 전 큰 병원을 홀로 지키던 그 레지던트 선생님도 지금은 수술하지 않으신다. 흉부외과, 산부인과, 감염내과 등 몇몇 기피과 의사들이 부족하다고 한다. 아니다. 해당 분야 전문의들이 있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이는 기피과 의사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병원에 적자를 안기기 때문이고, 결국 터무니 없이 낮게 책정된 진료비 때문이다. 이른 바 '원가 이하의 수가'이다. 흉부외과 수술을 하면 할수록, 분만 수술을 하면 할수록, 재활치료를 하면 할수록 병원엔 금전적 손해가 따라온다. 그래서 그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몇몇 대형병원들에서만 기피과 진료가 가능하며, 전국의 환자 분들이 그곳으로 몰려들게 된다. 안 그래도 적자인 과에 많은 전문의들을 고용할 수 없기에, 소수의 전문의와 전공의들이 전국에서 오는 환자들을 진료하며 살인적 노동을 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은 너무도 뻔하다. 돈을 들이면 된다. 적자를 감당할 공공병원을 정부가 운영하며 기피과 의사들을 고용하든, 기피과들의 수가를 현실화하면 된다. 의사들 월급을 늘리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돈을 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 어찌 돈을 이야기하냐며 바로 속물 취급해버리는 이들이 많다. 나도 당연히 생명과 돈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생명을 잘 지키기 위해 돈 따위는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되어 있으니 모든 곳에 충분히 쓸 수 없는 사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과연 필요한 곳부터 돈이 쓰이고 있는가? 당장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항생제와 항암제들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못 쓰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현대의학의 범주를 벗어난 곳에까지 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것을 보면, 재정 투입의 우선 순위가 의학적 필요성이 아닌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말로는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며 이렇게 앞뒤 다른 정책에 의사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정치적 잣대로 의사들의 파업을 바라보며 비난한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전 정권의 일방적 정책 진행에 맞서 2014년에도 파업을 진행했었다. 당시 나도 참여했었고, 이후 바뀐 정권에 기대를 했었다.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현업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헛된 기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6년 전과 다른 부분이 있다. 2014년의 파업은 단 하루로 끝났다. 이번 파업이 더 길어지고 있는 것은 이번 전공의들이 6년 전 전공의들에 비해 더 사명감 없고 더 이기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이번 정부가 더 불통이기 때문이다. 불통을 넘어 상대방을 적폐로 몰아가는 자연스럽고 능숙한 모습에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양심이 있다면 이제는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자. 3분 진료, 기피과 의사 인력난, 열악한 공공의료, 이 모든 것이 정부가 돈을 써야 할 곳에 안 쓰기 때문이라고. 포퓰리즘으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엉뚱한 곳에 새고 있다고. 생명보다 표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인잇 필진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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