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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5·16은 혁명" 비육사의 독주와 '육사 배제' 원칙…국방장관의 조건은?

[취재파일] "5·16은 혁명" 비육사의 독주와 '육사 배제' 원칙…국방장관의 조건은?
▲ 2017년 5월 국방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민구 국방장관, 김관진 안보실장, 이순진 합참의장과 함께 합참 청사로 이동하고 있다.

이르면 이번 주 내, 늦어도 이달 중에 국방장관 교체가 점쳐지고 있습니다. 차기 국방장관은 이번 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으로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국방개혁 2.0의 완수와 같은 중책을 맡게 됩니다. 이번 정부 국방 정책의 성패를 결정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순진 전 합참의장, 김운용 전 지상작전사령관,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 모종화 현 병무청장, 박삼득 현 보훈처장 등이 후보로 거론돼 왔습니다. 지난주부터는 청와대와 군의 입, 언론의 펜이 일제히 이순진 전 의장만 지목하고 있습니다. 3사관학교 출신으로 비육사입니다. 나머지 후보들은 이번 정부 출범에 기여를 했거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대장 계급장을 받은 이번 정부의 군인들인데 출신 학교가 모두 육사입니다.

사실 이순진 전 의장은 "5·16은 혁명"이라는 지론과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 사이버사 댓글 공작 정치 관여 재판 응원으로 이번 정부와는 상극(相剋)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육사 출신의 예비역 대장, 중장들을 압도하는 형국입니다.

이번 정부가 기회의 균등을 명분으로 군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육사 출신들을 멀리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국방장관은 해군 송영무, 공군 정경두로 이어졌고 합참의장도 공군 정경두, 학군 출신 박한기가 맡았습니다.

다음 국방장관은 육군 차례입니다. 5·16 혁명론과 김관진 정치 관여 재판 응원이라는 흠에도 3사 출신 이순진이 홀로 도드라지니 육사 출신 배제는 이번 정부의 확고한 군 인사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실력과 상관없이 들러리 서는 격이 되고 있습니다. 막중한 시기의 국방장관을 고르는데 실력, 자격은 따지지 않고 육사냐 비육사냐 출신만 본다는 비판이 군뿐 아니라 여권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 이순진 '5·16 혁명론'의 시작

이순진 전 의장은 석사 학위 논문 30페이지 각주에서 문헌 참고 없이 스스로 5ㆍ16을 군사혁명이라고 정의했다.

이순진 전 의장의 5·16 혁명론은 그의 2001년 충남대 행정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21세기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한국의 민군관계 발전방향'에서 시작됩니다. 이 전 의장은 한국의 민군 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며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또 1961년부터 1979년까지 3, 4공화국을 "5·16 군사혁명 세력에 의해 국가 발전이라는 국가 목표를 수행한 시기"로 규정했습니다.

논문은 "가장 근대화된 조직과 선진화된 기술 및 훈련된 인력을 바탕으로 군이 국가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5·16의 공(功)을 평가했습니다. "정부의 지나친 고도 성장과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집착은 경제 우선 논리에 의한 시민적 자유의 제한, 불균형적인 성장 전략으로 인한 도농 간 성장 격차, 선성장 후분배의 원칙에 따른 소득 불균형의 심화 등의 문제들을 야기하게 되었다"며 5·16 세력의 과(過)도 짚었습니다.

5·16의 공과 과를 각각 거론해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도 5·16이 군사정변 또는 쿠데타라는 주장으로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논문을 쓴 2001년은 김대중 정부 시기여서 현역이라면 눈치를 볼 만도 한데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 文과 '5·16 혁명' 설전

2015년 9월 그는 제39대 합참의장으로 내정됐습니다. 10월 5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인사청문회는 "5·16은 군사혁명"이라는 그의 논문으로 뜨거웠습니다. 특히 당시 야당 소속 국방위원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습니다.

2015년 10월 5일 인사청문회에서 이순진 의장 후보자가 문재인 국방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문재인 국방위원은 "5·16은 군사쿠데타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정립됐다",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혁명이라는 자세로 어떻게 군을 지휘하겠나"라며 이순진 후보자를 몰아붙였습니다. 이 후보자는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 건 부적절하다",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5·16 혁명론을 사실상 고수했습니다.

윤후덕 야당 국방위원이 "'5·16은 군사정변이라고 교과서에 표현됐고 저는 그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한 한민구 국방장관의 답변은 맞는 답변인가"라고 묻자 이 후보자는 "장관의 견해였던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5·16은 군사정변, 쿠데타"라는 데 도통 동의하지 않자 여당인 새누리당 위원들조차 "여러 가지 평가 중 국가기관이 내린 평가가 기준이어야 하지 않냐"고 다그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이 후보자는 "유념하겠다"고만 응수해 여야 위원들은 함께 실소했습니다.

야당 위원들은 청문회를 계속할 수 없다며 반발했고 이순진 후보자는 오후에 속개된 청문회에서 마지못해 "(5·16을 군사정변이라고 한) 대법원 판결을 인정한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당시 합참의장 청문회 TF팀에 정통한 한 현역 장교는 "이순진 대장은 5·16 혁명 논문으로 박근혜 정부의 합참의장으로 발탁됐고 청문회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아 박근혜 정부의 큰 신임을 얻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 文의 '이임식 사면'과 정치 관여 재판 응원의 이중성

2017년 7월 문재인과 이순진 두 사람은 대통령과 이임하는 합참의장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청와대에서 열린 군 지휘부 오찬에서 이순진 의장은 "(대통령이) 전역을 앞둔 군인을 초청해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 주시고 격려해주신 것은 처음 있는 일로 감동적이고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군 생활 42년간 45번 이사했고 동생 결혼식에 한 번도 못 가봤다"며 전역의 소회를 털어놨습니다.

한 달 뒤인 8월 21일 문 대통령은 이순진 의장 이임식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함께 해외여행 가본 적 없는 이순진 의장 부부에게 캐나다 왕복 항공권을 깜짝 선물했습니다. 부하와 후배들을 아끼는 소탈한 성품과 여러 미담들이 크게 부각되면서 이순진의 5·16 혁명론은 정치적으로 사면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20일 이순진 의장 이임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이 의장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3년 뒤인 지난 6월 25일 이순진 전 의장이 뜻밖의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312호 법정,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의 사이버사 댓글 공작 지시 및 정치 관여 혐의 결심공판이었습니다. 단순히 군 선배 김관진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응원하러 갔을 수도 있지만 김관진 전 실장의 혐의가 다름 아닌 사이버사 댓글 공작 지시 및 정치 관여입니다.

이번 정부의 기준으로는 적폐 인물의 적폐 사건 재판에서 공개적으로 적폐의 편에 선 상황이 되다 보니 여권의 안보 전문가들도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육군의 한 장교는 "대통령의 이임식 참석으로 이순진의 5·16 혁명론을 사면했다면 정치 관여 혐의 재판 응원은 그 사면을 거부한 행위"라고 촌평했습니다.

● 은인자중(隱忍自重) 육사 출신들, 들러리 서고 퇴장?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 김운용 전 지상작전사령관, 박삼득 현 보훈처장, 모종화 현 병무청장 등 후보들은 드러내지 않고 신중하게 기다리는 분위기입니다. 한때 김유근 전 안보실 차장이 1순위 장관 후보로 꼽혔는데 일신상의 이유로 후보군에서 내려섰습니다.

모종화 청장과 박삼득 처장은 예비역 중장입니다. 지난 대선 문재인 안보 캠프의 핵심 멤버들로서 이번 정부의 안보 정책 밑그림을 그렸다는 게 강점입니다. 김용우 전 총장과 김운용 전 사령관은 예비역 대장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장 계급장을 직접 달아준 이번 정부의 군인들입니다. 작전, 군 개혁, 4차 산업혁명 대비 등의 면에서 실력이 인정됩니다.

하지만 자격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모두 육사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시절 국회 국방위 회의에서 "지금까지 비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 수방사령관은 한 명도 없었다", "그동안 육군의 인사가 육사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왔던 게 사실이고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이번 정부 국방장관, 합참의장 인사에서 100% 적용돼 육사 출신들은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이번 정부 마지막 국방장관 자리는 민간인에게 맡기지 않는다면 육군 몫입니다. 해군, 공군이 번갈아 한 번씩 했으니 이번은 육군 차례가 되는 겁니다. 육사 출신 배제라는 원칙 아닌 원칙을 따르면 이순진 전 의장뿐이고 실력, 자격 등을 고루 따지면 유능한 후보들이 여럿 나와 선택의 폭이 확연히 넓어집니다. 현재로서는 완전한 전자의 상황입니다.

"육사 출신들은 이번 정부 들어서 충분히 차별 대우를 받았다", "국가가 애써 투자해 키운 안보 인재들을 육사 출신이라는 굴레를 씌워 고사시키고 있다", "초대부터 21대 육군총장까지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 토벌하던 자들이라는 광복회장의 연설 원고까지 터져 나와 젊은 육사 출신들조차 좌절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육해공군 장교들 사이에서 두루 나오는 실정입니다.

여당, 여권의 안보 전문가들도 "과거 육사 출신들이 자리 독식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의 육사 출신 지휘관들은 혜택은 커녕 역차별만 당한다는 지적도 사실이다", "육사 출신은 배제하고 인재를 찾다 보니까 일찍부터 밑천이 드러났다", "'육사 연좌제'를 언제까지 계속할 지도 이제는 고민해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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