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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최숙현 사건' 거짓 보고…사망 뒤에도 계속 은폐

<앵커>

체육계 폭력 사건 피해자들에게는 육체적인 고통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서로 알면서 쉬쉬하고 그래서 사건을 덮으려는 고질적인 관행이 더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고 최숙현 선수도 생전 여러 차례 진정서와 고소장을 냈지만 경주시청이 거짓 보고서로 대응해온 걸로 확인됐습니다. 

정명원 기자입니다.

<기자>

고 최숙현 선수가 첫 진정서를 낸 후인 지난 3월 경주시청이 작성한 민원조사 결과보고서입니다.

최 선수를 비롯해 경주시청팀을 거친 선수 5명과 통화한 결과 '폭행은 크게 없었고, 왕따 정도만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경주시청 관계자(보고서 작성) : 제가 이제 전화통화한 진술서의 내용을 작성하고, 그걸 요약해 서 거기에다 작성을 한 거죠.]

이 보고서는 경주시는 물론 철인 3종 협회와 대한체육회 등이 사안을 판단하는 데 기초자료 역할도 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에서는 최 선수의 피해 사실을 일관 되게 증언해 온 선수 2명이 감독의 폭언, 폭행은 없었고 주장 선수의 폭행도 1년에 3차례뿐이라고 말한 걸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고 당시 경주시청과 통화한 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 경주시청 팀 선수 A씨 : 제가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전 경주시청 팀 선수 B씨 : 저는 경주시청이랑 통화한 기억이 없어요. (이건 맞아요? 1년에 3차례?) 하루에 3차례가 아니고요? 가슴을 때리거나 머리를 때리거나 그냥 자기 기분이 안 좋으면 운동 핑계로 때리거나 항상 그렇게 맞으며 생활했어요. (이때 이런 식으로 통화한 적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네. (내용도 안 맞고?) 네.]

최 선수가 숨진 뒤에도 경주시청이나 협회 등은 계속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습니다.

지난달 2일 열린 경주시청 운영위 회의록입니다.

가해자들을 불러놓고선 폭행 사실은 캐묻지도 않고 최 선수의 심리 상태를 문제 삼습니다.

심지어 경주시체육회장은 평소 최 선수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었고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한 걸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강희창/전 철인3종 선수 : 연맹 관계자들과 이제 감독들끼리는 이해관계가 전부 다 있어요. 불편해하고, 더 외면하는 것 같고, 더 은폐하려는 것 같아요.]

지난해 1월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이후 대통령 지시로 민관 합동 스포츠혁신위가 구성됐습니다.

혁신위는 폭력 사건 발생 시 미국처럼 관련 체육단체를 배제하는 배타적 조사권과 징계권을 조사기관에 줄 것을 권고했습니다.

오랜 관행인 체육계 침묵의 카르텔을 깨라는 주문이었지만 이 권고는 무시됐습니다.

[문경란/전 스포츠혁신위원장 : 그 카르텔 사슬을 끊지 않고서는 저는 진상규명도 안 되거니와 앞으로도 어떤 또 제2, 제3의 사건을 예방할 수 없다.]

폭력의 근본 원인이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이라며 범정부 대책이 나온 지 1년 반.

그러나 이후 체육계 반발로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고 진로에 절대 권력을 가진 지도자의 폭력에 여전히 선수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정용철/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 여전히 꼬리 자르기를 해서 그냥 몇몇 사람 자리를 잃는 정도로 끝난다면 사실 선수들한테 주는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다. (신고)해도 안 되고 앞으로도 이런 거 안 하겠다. 그게 더 무서운 거죠.]

(영상취재 :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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