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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어딜 가든 이상한 상사는 꼭 있다 (ft. 직장인 일기)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드디어 인사발령이 떴다. 소문만 무성했던 누가 어디를 가고 누구는 보직자가 되고 누가 해임이 되는지가 공지된 것이다. 이 공지를 보고 잠시 일을 멈춘 후 나는 축하, 위로 같은 내용을 담은 전화를 했다.

"축하해. 다시 본사로 가네."

"축하받은 일을 아닌 것 같은데. 이제 고생길 열렸다. 그분이 거기 계시잖아. 능력은 모르겠지만 성품은 확실히 좋지 않은 분 말이야."

"지방으로 가네. 괜찮아?"

"아니 오히려 좋다. 거기서는 숨을 쉴 수 있겠지. 그곳 수장이 능력도 있고 성품도 좋으신 분이라고 소문이 났잖아."

여러 명과 통화를 하다 보니 자기보다 윗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직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 하루의 대부분을 마주해야 하는 상사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케미가 맞는지에 따라 만족도나 회사 생활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에 내가 모셨던 여러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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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스쳐간 상사를 한 명 한 명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1. 산전수전 다 겪은 '하드코어' 상사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 시절의 첫 팀장. 학벌 없이, '백' 없이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성장해서인지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충만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 합리적이거나 다소 유약한 팀원은 버틸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해야 했으니 종종 원칙적이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기도, 수시로 말을 바꾸기도, 자존심도 헌신짝처럼 팔아야 했다. 난 이 자 덕분에 상사의 웬만한 질책, 압력을 감내할 수 있는 내공을 키울 수 있었다.

2. 여유로운 미소의 젠틀맨 상사

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은 '귀족형'이었다. 좋은 집안, 좋은 학벌의 소유자로 젠틀하면서 여유를 가지며 일하는 임원이었다. 시시콜콜한 일은 신경도 안 썼고 큰 그림을 그리며 전략을 강구하는 것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의전을 중요시했고 예의범절에 어긋난 언행은 용서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위치 및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고 제시해야만 해서 피곤하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업무는 다소 편하게 한 것 같다. 이 자에게는 의전과 예의를 배웠다.

3.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네 탓" 뒤통수 때리는 상사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다 했다'형이다. 자신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팀원들이 서로 협력하여 세운 공을 다 빼앗았다. 큰 거래가 성사가 될 무렵 갑자기 실무자에게 무리한 조건을 관철시키라고 실무자에게 들이밀었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이때 직접 협상에 나서더니 최종 미팅 자리에서 그동안 절대 양보 말라던 조건을 자신이 직접 철회하고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후 그 자는 실무자들이 못나게 협상했다며 자신이 이 계약을 따냈다고 말하고 다녔다. 정말 기가 찼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사람에게 자신을 적극 어필해야 한다는 점과 때로는 나를 죽이고 상사에게 모든 공을 넘겨야 내가 살 수 있음을 배웠다.

아, 또 하나 더 배웠다. 이 사람은 잘못한 것은 다 남의 탓으로 몰았다. 실제로 일이 어그러졌을 때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 도사였다. 덕분에 난 '독박' 쓰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자기방어를 위해 항상 근거를 남겼고 상사를 내 업무에 끌어들여서 나중에 내 뒤통수를 못 치게 했다. 물론 아무리 철저히 대처를 해도 상사의 막무가내 '네 탓이요'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팀원이 작은 실수만 해도 죽일 듯이 달려드는 상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거리를 가져와 팀원에게 안기는 상사, 덕을 갖고 조직을 운영하는 상사, 협박 및 공포로 팀원을 닦달하는 상사 등. 돌이켜 보면 여러 유형을 모셨지만 좋든 싫든 호흡을 맞추면서 조직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이 긍정적인 생각은 그들과의 관계가 다 끝난 후에야 생겼다.)

어느 날 사직하겠다는 젊은 직원과 면담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그만두려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상사와의 갈등이 극에 달해서 그랬다. 난 그에게 과거 내가 그만두려고 했을 때 선배에게 들었던 얘기를 그대로 해줬다.

"사람이 싫어서 관두지 마세요. 아무리 죽이고 싶은 사람도 통상 3년이 지나면 다 굿바이 합니다. 더 좋은 곳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왜 금방 헤어질 사람 때문에 이 소중한 직장을 박차고 나가려고 하나요?"

그리고 내가 경험으로 체득한 얘기도 한마디 더 해 줬다.

"'돌+아이 보존의 법칙'* 아나요? 어디를 가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여기서 못 버티면 다른 데서도 못 견뎌요. 좋은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땐 아마 당신도 과거를 회상하며 모두 다 자신에게 도움이 됐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

사실 이 조언은 직원으로는 더 올라갈 수 없는 자리까지 왔고 또 별의별 유형의 상사를 다 겪었던 지금 나에게도 아직까지 도움이 되는 말이다. 잊지 말아야겠다. 상사는 바뀌며 잘 버티면 좋은 날이 옴을 말이다.

* 돌+아이 보존의 법칙 : '어느 조직에나 이상한 사람이 있다. 왜 이번 조직에는 이상한 사람이 없을까 싶으면 그것은 당신이 그렇기 때문이다'라는 인터넷 유행 밈.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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