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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나 같은 직장인, AI 시대 이겨낼 수 있을까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오후 늦게 외출하면서 주식 차트를 봤다. 이런, 내가 보유한 종목이 또 떨어졌다. 팔지 말지 고민에 고민이 더해졌다.

'더 떨어질 것 같은데 팔자. 손절매 할 때는 과감하게 해야지. 음. 아니야. 흐름을 보니 올라갈 것 같기도 하네. 그래, 좀 더 기다려 보자. 내일 아침 출근해서 상황 보고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겠지.'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비보가 날아왔다. 당연히 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입찰에서 떨어진 것이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입찰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크게 낙심할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 건은 우리가 탈락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기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관계자들과 함께 그 원인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된 거죠? 조건상 우리가 더 적합하잖아요. 상대편 회사, 처음 듣는 회사인데?"

"위에서 찍어 누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참내, 그 회사도 걱정되는군요. 평가 점수가 확연히 차이가 났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를 선정하다니 말이에요. 답답하네요. 하지만 어떨 수 없죠. 아무리 평가항목을 객관화해도 사람이 하는 한 인간의 자의성은 언제나 들어갈 수 있으니."

"아이고 그러니까 이런 판정도 AI가 해야 해요. 그래야 우리 같은 피해자가 없어질 테니까요"

"하하, 이런 것도 AI가 판정해야 하나요?"

"그럼요. 재판도 머지않아 AI가 한대요. 빅데이터를 돌리면 바로 판정이 나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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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공지능 로봇 (사진=픽사베이)

입찰 탈락에 대한 논의는 이 정도로 마치고 다른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꾸 뭔가 빼먹은 느낌이었다. 뭐지? 뭐지? 하다가 결국 생각났다. 아뿔싸! 내 주식. 서둘러 주식가격을 확인해 봤다. 망했다. 어제 오후보다 더 빠졌다. 어제 팔 것을. 으….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회의에서 누군가 'AI 재판'에 대해 얘기한 것이 기억이 나 검색을 해보니 '주식도 AI가 하면 더 잘한다' 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다시 찾아봤다. <15만명이 AI 자산집사 고용…변동성 장에서 수익률 빛났다>, <토종 AI가 짠 투자종목 수익률 9.7%, 골드만 삭스 앞섰다> 류의 기사들 되게 많다. 연관 기사를 더 검색해 보니 모두 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머지않아 애널리스트는 물론 의사, 변호사, 예술가, 보험업자, 스포츠 심판, 요리사, 심지어 웨이터까지 우리가 아는 일자리 대부분이 AI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거 정말 경계해야 할 일이다. 기사를 본 뒤 '정말 앞으로 사람은 뭐 해먹고 살까'라는 걱정을 사서 하게 되었다.

미래학자들에 따르면 앞으로 인간의 직업 중 상당수는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왜냐고? 답은 심플하다. AI가 인간보다 일을 더 잘하니까. 그러나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일을 AI가 대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인간의 일들은 단순 반복적인 일도 있지만 대부분 의식과 함께 주관적 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의식과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입찰가격을 정하고, 주식을 사고팔며, 재판을 통해 잘잘못을 따지고 조직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단다. 이미 '의식과 경험'이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여겼던 바둑에서 AI는 독보적 존재가 되었고 '의식과 경험'이 필요한 운전도 AI가 사람보다 더 잘 한다. 이처럼 AI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비의식적 지능을 높임으로써 그러니까 의식의 기본이 되는 무한대의 패턴인식을 습득하고,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더 정교하게 개선시킴으로써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던 많은 일들을 인간보다 훨씬 더 잘해내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힘쓰는 것에서 인간은 기계에게 밀렸다. 그 후 100년 남짓 지난 지금 인간은 의식과 주관적 경험을 기초로 하는 인지 능력에서도 AI에게 뒤처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일부 전문가들은 인간이 비유기적 알고리즘보다 잘하는 것이 많다고 하고 특정 사안은 영원히 인간이 더 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최근 과학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그 '영원히'가, 고작 앞으로 10~20년에 불과할 수도 있다.

AI 인공지능 로봇 (사진=픽사베이)

이런 식으로 미래가 그려지니 나 또한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 같은 비대면 근무가 도입되면서 일부 회사의 근무 형태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와 같은 회사에서 나 같은 중간 관리자, 즉 진행 중인 업무를 체크 및 독려하고, 직원들 협력을 증대시키며, 과업에 대한 성과분석하고 그것에 맞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고안하는 일을 하는 인력이 과연 필요할까? 앞으로 짧게는 10년 내외에 나 같은 중간관리자보다 인지 능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초조, 편견, 자의성 같은 부정적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착오, 왜곡, 차별 없이 관리하고 판단하는 완벽에 가까운 AI가 나타난다면 회사는 나를 더 이상 고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자의성 때문에 입찰에 떨어지고, 인간의 불안정한 인지능력 덕에 주식 매도할 타임도 놓쳐서 생각해 봤던 AI, 그리고 그것으로 대체될 미래 시대에 대한 상상은 괜히 내 불안감만 키웠다. 또 내 자식은 앞으로 뭘 해야 먹고살지? 라는 걱정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할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머리가 아프고 암울해지기만 했다.

갑자기 책상 위의 컴퓨터, 내 손안의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네가 나중에 우리를 잡아먹을 놈이냐?' 하며 쏘아 보았는데 동시에 정반대 생각이 쑥 튀어 올랐다. '어, 그런데 네가 있어서 한편으론 지금 난 참 좋은데. 엔터 한 번이면 복잡한 계산도 바로 되고, 궁금한 것은 바로 알아볼 수 있으며, 굳이 일을 보러 나갈 필요도 없고, 심지어 나를 재미있게도 해 주잖아.'

앞으로의 세상,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우울한 전망도, 장미빛 전망도 모두 하나의 가능성일 뿐. 그러니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지금부터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면서 현재에 충실하게 살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자식들도 다 사는 방법이 생겨날 거다. 너무 낙천적인가?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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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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