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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고 맞아도 내 탓" 세뇌…한국형 엘리트 체육 실체

<앵커>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을 통해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교육부가 전국의 모든 초·중·고 학생 선수를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폭력이 어떻게 대물림되어왔는지, 끊을 방법은 무엇인지, 한지연, 안상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지연 기자>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A양의 일기장, 세계 무대를 꿈꾸며 스스로 채찍질해왔지만 견뎌야 했던 것은 자신과의 싸움만이 아니었습니다.

매일같이 이어진 코치의 욕설과 폭행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A 선수 : 벽 끝까지 구석까지 가듯이 계속 밟으면서 쓰러질 때까지… 머리를 봉 자체가 부서질 때까지 맞은 적도 있고, 두더지 잡듯이 머리를 쳤거든요. 의자로.]

공황장애까지 겪자 극단적 선택까지 떠올리게 됐습니다.

[A 선수 : 약이 있는 걸 다 털어 넣어서…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운동을 그만뒀어요.]

학생 선수 가운데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경험한 수는 약 2만 명, 셋 중 한 명은 욕먹고 맞으면서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B 선수 : 대회를 나갈 때 상대를 무서워하지 말고 나(코치)를 무서워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체벌하는 거다.]

문제는 폭행을 당한 학생들의 상당수가 이를 자기 탓으로 돌린다는 점입니다.

[A 선수 : 세뇌를 당한 거예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열심히 해야지. 메달 따서 우리 코치님 기쁘게 해 드려야지.]

폭행을 당한 학생 선수 10명 가운데 8명은 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 하는데 결국 폭력을 성장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 이를 모방하면서 대물림한다는 것입니다.

[정용철/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 : '(코치가) 경기력을 위해서 저렇게 고생하시는구나'라는 일종의 동조심리가 발동하고요. 어린 학생들을 그런 방식으로 계속 길들여 온 거죠.]

<안상우 기자>

폭행당한 학생 선수 가운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2%, 때리지 말라고 요구한 학생도 5%를 넘지 않았습니다.

신고자의 신원이 가해 지도자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고,

[현직 지도자 : (체육 단체는) 실제 폭력 사건이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까 신고가 들어오면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해당자에게.]

이후에는 더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직 지도자 : (신고자가) 진학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끔 흠집 내기라든지 아니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한다든지, 많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있는 걸로 알아요.]

솜방망이 징계 처분도 문제입니다.

지난해 선수를 상대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한 고등학교 코치에게 내려진 처분은 출전정지 3개월뿐 이 코치는 현재 지역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체부는 지난 2016년부터 모든 폭행 지도자의 자격을 1년 이상 박탈하겠다고 했지만 엄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피해 선수 학부모 : 터무니없는 징계로 계속 아이들을 지도하고 그렇게 되면 이런 피해를 계속 줄 수밖에 없잖아요. 폭행과 폭언에 대해서 체육회는 (선수들을) 전혀 지켜줄 마음이 없는 거죠.]

2014년 이후 대한체육회는 신고받은 지도자 폭행 사건 등 91건 가운데 3건만 직접 조사를 벌였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회원단체나 지역체육회로 넘겼습니다.

[원민경 변호사/前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원 : (가해자들이) 권력구조의 상층부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시도체육회나 종목 단체로 (사건이) 내려가서 조사가 제대로 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체육계는)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해결하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거죠.)]

폭행 근절을 위해서는 '봐주기 징계'만 반복해온 대한체육회 등 상급 단체에게도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영상취재 : 김흥식·김성일·박대영·김남성·박승원, 영상편집 : 김준희·하성원, VJ : 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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